쌀보다 옥수수가 맛나네
풋강냉이 기정. 베풀기 잘하는 완식이 할머니네 칠순에 석이 어머니가 갖고 온 떡, “누가 이렇게 재미난 떡을 해왔나”라는 말에 석이는 기가 살았네
등록 : 2015-08-19 18:39 수정 : 2015-08-22 20:35
평소 베풀기를 좋아하던 완식이 할머니의 칠순 잔치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완식이 할머니는 베풀기를 좋아하여 부자로 잘살고 장수한다고들 합니다.
석이 어머니도 장날이면 완식이네 집 앞을 지나다닙니다. 완식이 할머니가 보기만 하면 언나 어머이 밥 먹고 가, 해서 신세를 졌습니다. 자기 칠순 잔치에 꼭 놀러오라는 초대도 받았습니다. 석이 어머니는 그냥 있기가 섭섭하여 풋강냉이를 맷돌에 갈아 칡이파리에 붙여 앉은콩 드문드문 놓고 풋강냉이 기정을 쪘습니다. 밤새워 만들 적에는 괜찮다 생각했는데 막상 잔치에 가져와 보니 왠지 주눅이 들어 구석진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남들은 쌀로 예쁜 송편도 빚어오고 쌀기정에 맨드라미꽃을 예쁘게 장식하여 왔습니다. 강냉이떡이라고 해온 것이 촌스럽고 가난이 흐르는 것 같아 기가 죽었습니다.
어미가 쭈뼛거리니 석이도 어미 치마폭 뒤에 숨어 나오질 않습니다. 다행히도 사람들이 칡잎에 붙은 강냉이떡을 떼어 먹는 것을 재미있어합니다. 언나들은 칡잎을 제가 뜯겠다고 야단이고 앉은콩을 쏙 빼 먹기도 합니다. 뭐로 만들었길래 베리~한 맛이 아주 특별한 맛이라고 좋아들 합니다. 모두 쌀떡을 내어놓고 먹습니다. 사람들이 누가 이렇게 맛있고 재미난 떡을 해왔느냐고 합니다. 그제야 석이가 기가 살아서 얼른 상에 가서 강냉이 기정을 하나 집어다 칡잎을 뜯으면서 우리 어머이가 한 떡은 마시워~(맛있어) 하며 자랑스럽게 먹습니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에는 누구네 큰일이 생기면 떡 부조를 했습니다. 완식이 할머니 칠순 전날, 논농사를 짓지 않는 석이네 어머니는 빈손 들고 갈 수도 없고, 안 가자니 섭섭하여 종일 고민을 했습니다. 해가 질 무렵에야 친정어머니가 해주던 풋강냉이 기정이 생각났습니다.
석이 아부지 석이 아부지, 어디 있소. 좋은 생각이 났소. 빨리 강냉이를 좀 꺾어다줘유! 풋강냉이 기정을 해서 완식이네 가면 되겠소. 난 또 뭐라구. 누가 큰일 집에 그런 걸 뭔 떡이라구 해가나. 아니유, 그전에 우리 친정어머니가 해주었는데 엄청 맛있었어유. 어머니가 해준 것 먹어보기나 한 주제에 어떻게 만들겠나, 그것도 큰일 집에 가져갈 떡을 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말만 많이 하지 말구 얼른 강냉이나 꺾어다줘유.
4살 난 석이랑 세 식구가 강냉이를 꺾는데 벌써 어둑어둑해집니다. 어두워지는 순간에 날파리나 모기 같은 날것들도 한순간에 나왔습니다. 날것들을 잡아먹느라고 박쥐들도 설칩니다. 땅을 스쳐 올라갔다 내려갔다 정신이 없습니다. 강냉이를 꺾는 석이 아버지 얼굴에 탁 부딪치고 지나갑니다. 이놈의 박쥐가 미쳤나. 아이 재수 없어. 침을 퉤퉤 뱉습니다. 박쥐가 어미 치마꼬리를 잡고 따라다니는 석이 뒤통수를 스치고 지나가 기절할 뻔했습니다. 석이가 으앙 아앙앙 한참을 울었습니다.
덜 여문 풋강냉이를 찰강냉이와 반반 섞어서 꺾어다 밤새 장만합니다. 덜 여문 강냉이는 바수(알을 따내는 것)는 것부터가 어렵습니다. 작은 창칼을 강냉이 알 골 따라 깊숙이 길게 집어넣어 오른쪽으로 제치면 강냉이 알이 길게 붙어 떨어집니다. 석이는 길게 붙은 강냉이를 엿이라고 잠도 안 자고 좋아합니다.
덜 여문 풋강냉이를 맷돌에 아주 되직하게 갈아야 합니다. 자칫 묽으면 칡잎에서 흘러내리고 맛이 없습니다. 풋강냉이 간 데다 소금만 약간 넣어 준비해둡니다. 큰 가마솥에 채반을 올리고 그 위에 큰 보자기 깔고, 약하게 불을 때 김이 약간만 오르게 합니다. 칡잎에 붙인 풋강냉이 기정은 미리 빚어서 옮길 수 없어, 모양을 만들면서 즉시 가마솥에 돌려 안쳐 찝니다. 김이 안 오르면 보자기에 들러붙고 너무 세게 오르면 손도 뜨겁고 익는 시간이 달라서 맛없게 쪄집니다.
칡이파리 하나에 풋강냉이 간 것 두 수저씩 올려 두껍지 않게 떡 모양을 만들고 앉은콩 서너 알씩 올려 찝니다. 석이 아버지와 어머니 둘이 손이 맞아서 부지런히 만들어 세 가마솥을 쪘습니다. 두 말들이 함지로 수북하게 담고도 남았습니다. 석이 아버지도 먹어보니 맛도 있고 모양도 아주 훌륭하네, 하며 좋아했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