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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장어는 우리가 다 잡아먹었다

이제는 보기 힘들게 된 값싸고 좋은 생선, 붕장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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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19 18:35 수정 : 2015-08-2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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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꾼들에게는 어종에 대해 호불호가 있다. 참돔 낚시만 고집하는 사람이 있고 벵에돔 사랑이 깊은 이도 있고 돌돔 낚시에다가 목숨 거는 꾼들도 있다. 물론 감성돔도 그렇다. 전갱이나 고등어처럼 많이 낚을 수 있는 걸 좋아하는 이도 많다. 다 저 맘이지만 낚는 방법과 채비는 서로 다르다. 이 채비에 저 고기가 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맛있는데다 먹고 나면 기운도 나니까

나는 감성돔만 포기하면 낚시는 즐겁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생각해보니 돌돔도 그렇다. 두 가지 모두 준비하는 데 돈 많이 드는데다 한 마리 노리고 종일 앉아 있는 방식이니까. 간혹 하기는 한다. 암튼 선호도로 따지면 이 네 가지 유명한 어종보다 더 높게 치는 게 나에게 따로 있다. 장어이다.

맛있는데다 먹고 나면 기운도 나니까.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 오랜 추억 속에 이 장어가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장어가 흔했다(횟집 가면 일명 아나고회가 가장 쌌던 기억들 있으실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싹 사라졌다. 장어가 귀해졌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낚시에 장어가 물면 아나고이다. 우리말로는 붕장어. 그런데 우리 섬에서는 대형 장어만 따로 붕장어라고 부른다. 최소한 8킬로그램 이상은 나가야 한다.

어른들은 이른 저녁을 먹고 밤낚시를 나갔다. 장어는 밤에 문다. 배라고 해봤자 통통배라고 부르던, 소구기관 엔진의 작고 낡은 거였다. 별을 헤다가 다리가 길게 늘어나거나, 하늘을 나는 것은 쉬운데 달리기는 굉장히 어려운, 그런 희한한 꿈을 꾸면서 뒤척이고 오줌 마려워 요강 앞에 무릎을 꿇었다가 다시 잠드는, 제법 긴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침이었다. 그러면 그들이 돌아왔고 두 명이 맞잡은 바구니에는 내 허벅지만 한 붕장어가 한두 마리씩 들어 있었다. 어떤 때는 20킬로그램 넘는 것도 있어 이게 물고기인지, 이무기인지, 이미 용이 되는 중인지 혼동될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어른 사내란 이런 거구나, 생각에 잠기곤 했다. 원양어선이나 무역선 타고 지구 반대편을 돌아다니다가 2년에 한 번씩 돌아오거나 아니면 밤바다 나가 이런 크기의 장어를 잡아오는 존재. 그러나 내 고민과는 상관없이 낚시 다녀온 어른들은 쓸개를 터뜨려 소주에 그 즙을 타서 마시고 잠이 들었다. 그러면 아낙이 식칼로 해체를 하는데 한 덩어리 잘라놓은 것만도 들고 있기 버거웠다. 뼈 굵기도 대단해서 그걸 끓이려면 가마솥이 필요했다. 이런저런 채소도 들어갔는데 말려놓은 고사리와 토란대는 꼭 있었다. 저녁에 먹을 거여서 그걸 기다리는 나에게 낮은 지난밤만큼이나 길었다.

이른 저녁이 되면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모였다. 몇 시간 곤 장어탕은 수프처럼 걸쭉하게 변해 있었다. 생선살이란 게 오래 삶으면 딱딱해지고 맛도 떨어지는데 장어는 부드럽게 풀어졌고 뼈 국물까지 어우러져 아주 진했다. 아, 그 맛. 이빨이 쩍쩍 달라붙는 양질의 단백질과 기름기의 조화. 어른·아이 빙 둘러앉아 한 그릇씩 받아서 어허, 어허,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며 퍼먹는 장면. 그 기운찬 풍경들. 어떤 생선도 이것을 대신할 수 없다. 그렇게 먹고 나면 아직 어렸던 나도 힘이 뻗쳐 시멘트벽을 공연히 발로 차곤 했다.


마릿수로는 기록을 세웠는데

이 정도 크기면 나이가 많다.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이젠 그런 크기는 구경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도 주민들이 한 번씩 나가는데 아주 어쩌다가 한 마리씩 잡아오는 정도이다.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종종 백도(白島)로 붕장어 낚으러 가는 후배가 있다. 백도는 거문도에 딸린 무인도로 문화재 명승 제7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륙은 못하고 배낚시도 거문도 주민들 중 ‘손낚시 허가증’을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다. 혼자 가기는 아까우니 경력 많은 이들 몇몇 함께 간다. 지난달 나도 한번 따라갔다. 그때는 목표가 검정볼락이라서 장어 낚시는 1시간밖에 못했다. 아무도 못 낚았다.

그 팀에서 기가 막힌 소문이 들려왔다. 일주일 전 예의 몇몇이 다시 백도에 가서 12kg짜리 하나 낚아왔단다. 보통 크기 몇 마리와 함께. 오랜만에 소원 푼 것이다. 이러면 돌아오는 발걸음이(물론 배 몰고 오지만) 얼마나 흐뭇하고 든든한지 모른다. 아침노을도 유난히 아름답고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도 음악처럼 들린다. 드디어 도착.

물간에서 녀석을 꺼냈다(어선에는 물고기를 살려놓을 물간이 있다). 이렇게 큰 것은 점잖다. 낚아올릴 때는 미친 듯 요동을 치지만 그 뒤로는 대부분 얌전하게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붙잡고 배에서 내리려는 순간 이 녀석이 용을 썼고 바다에 풍덩, 하고 말았다. 그 충격. 그 허탈.

“뭐한다고 백도 장어를 거문도 앞바다로 옮겨놔?”

내가 놀렸을 때 후배는 힘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 자리에 통발 넣어놨어요.”

그런다고 그게 그 통발에 들어가겠는가. 멀리멀리 가버리지. 단지 서운해서, 뭐라도 안 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했던 거다.

지금까지 내가 낚은 것 중 가장 큰 게 6.5kg이었으니 우리 동네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대신 나는 마릿수로 채운다. 기록을 세운 적도 있다. 한 3년 되었나. 동성호를 구입하고 얼마 있지 않았을 때였다.

이곳 거문도에 ‘외해 가두리’라는 게 있었다. 신개념 양식장으로 수심 25m 내외에서 물고기를 키우는 방식이다. 상황에 따라 내리기도 하고 올리기도 하는데 수면 근처에서 키우는 일반 양식장 물고기보다 병이 없고 튼튼했다. 몇 년간 이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끝내 실패를 하고 철수를 했다.

어느 날 저녁, 멤버들과 그곳엘 갔다. 그동안 계속 먹이를 준데다 구조물이 커서 그물이나 통발, 주낙 따위를 할 수 없었던 장소이니 장어가 있을 거란 예상. 예상은 적중했다. 채비를 내리는 순간, 장어가 물기 시작한 것이다. 3명이서 낚시를 했는데 비록 자그마한 물간이지만 두 개 모두 장어로 가득 찼다.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양식고기를 왜 우습게 보나

며칠 계속 그랬다. 깊은 밤 우리가 돌아오면 마을 사람들이 구경하러 몰려나오곤 했다. 어디서 낚았냐고 보는 사람마다 물어왔다. 이러면 포인트를 비밀에 부치고 싶은 게 사람 심정이다. 우리는 대충 ‘쩌어기’라고 하거나 ‘바다에서’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들통나는 건 금방이다. 배 몰고 나가면 우리 배가 낚시하고 있는 장면이 뻔히 보이니까. 그러면 배마다 우리 쪽을 지나면서 많이 잡으라고 인사를 하곤 했는데 그 순간 그들이 GPS에 위치 표시를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수심 50m에서 연거푸 릴 감아올리느라 어깨가 무너질 지경이었다(그 뒤 우리는 전동 릴을 사게 된다). 한 장소에서 낚시로 이렇게 많은 장어가 연거푸 집힌 적은 없다. 장어는 ‘나와바리’ 개념이 강해서 서로 일정 부분 떨어져 사니까.

덕분에 날마다 구워먹고 끓여먹고 선물할 곳에 선물하고 팔아달라고 하는 이에게는 팔아주었다. 훔쳐간 사람도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누군가 훔치는 것을 보기는 했는데 프라이버시 때문에 누구라고 말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하지 말라고 나도 말했다. 많이 잡아놨으니 까짓것 그거 한 마리 못 주겠느냐는 심정이었으니까.

지금은 어떨까, 궁금하실 것이다. 한 마리도 없다. 한번 소문이 나니까 온갖 주낙 통발 배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초토화해버린 것이다(구조물을 철수한 다음이니까). 나는 오랫동안 우아하게 낚시로 한 마리씩 잡아올리고 싶었는데 말이다. ‘우리자리’라고 이름 붙인 그곳엘 지금도 간혹 가보긴 하는데 단 한 번 입질을 받지 못했다. 뭐가 어떻다면 우르르 달려들어 몰살시켜버린 것, 이거 요즘 참 익숙한 풍경이다(그들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다 잡아먹었을 테지만).

여기서 잠깐 한마디. 양식고기면 우습게 보는 버릇이 우리에게 있다. 소·돼지·양·닭 모두 기른 것 먹는 주제에 물고기만은 자연산을 높이 친다. 이거 별 의미 없는 짓이다. 한 가지 예로, 우리는 자연산 도미를 잘 안 먹는다. 농어도 마찬가지. 이왕이면 양식 먹는다. 훨씬 맛있고 고소하다. 자연산은 지나치게 담백하다. 심심하다, 에 가깝다. 물론 거문도처럼 멀고 깊은, 그리고 물이 잘 흐르고 깨끗한 곳에서 키운 물고기여야 한다(동네 자랑 좀 했다).

장어가 안 잡히니 도리가 없다

다시 장어. 자연산 민물장어(뱀장어)는 만나기 상당히 어렵다. 이 녀석은 강이나 하천, 저수지에서 낚시로 낚거나 겨울철 기수역(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으로 여기서 뱀장어가 월동한다)에서 통발로 잡는데 마릿수가 많지 않다. 식당에서 파는 민물장어는 양식일 가능성이 아주아주 높다. 필리핀 근처 깊은 바다에서 태어난 이 녀석이 변태를 거치면서 우리나라까지 오면 손가락 길이의 실치 같은 모양이 된다. 그것을 잡아 키운 게 양식 뱀장어이다. 이거 아니면 맛보기 어려우니까 이래저래 그냥 양식 사먹는 게 낫다. 문제는 양식을 자연산으로 속이고 파는 행위이고 그것을 속고 사먹는 짓이다.

장어는 값싸고 좋은 생선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어디로 갔을까. 다 우리가 잡아먹었다. 그래도 난 장어 낚시를 나간다. 보통 세 번 나가면 한 번 정도 잡아온다. 낚시 시간도 길지 않다. 저녁 8시경부터 대략 10시까지만 한다. 내 멤버들이 슈퍼와 식당을 해서 밤늦게까지 할 수가 없다. 혼자서 간혹 더 오래 해보는데 보통 사이즈 한두 마리 더 낚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부패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분들이 있다. 각각의 현장에서, 학계에서, 언론에서, 정치판 언저리에서, 출판문화 쪽에서, 언더에서,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 아실 것이다. 이들은 개인 이익을 좇지 않고 공동의 가치 실현를 위해 애를 쓰니까. 원고량 늘리는 짓이라고 오해 살 게 뻔하고 혹시나 빠졌다고 삐칠 수도 있으니 일일이 호명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분들 불러다가 예전의 가마솥 붕장어탕 한 그릇씩 먹이고 싶은데 장어가 안 잡히니 도리가 없다.

마음이라도 알아주길 바란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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