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돼 있습니다.
뭐든지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 부정과 비리로 뉴스에 나오는 유명인사 보도를 들을 때 종종 놀라는 이유는 그 액수가 너무 작아서다. 3천만원? 그거 받고도 이렇게 공격을 당해? 그게 그럴 만한 액수였나? 하긴 원래 한 푼도 받으면 안 되는 거지? 근데 저런 거물에게 고작 그거 주고도 통해? 정말 그게 전부야? 그 바닥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지만 주워들은 풍문들만 가지고도 기껏 기천만원의 액수는 너무나 작게 들린다. 그런데도 언론의 어조는 단호하다. 마치 오간 돈이 한 30억원은 되는 듯이 매섭다. 작심하고 문제 삼기 시작하면 3천만원이 아니라 300만원이라도 큰 문제가 되고도 남는 것이다.
반대로, 그 무엇도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꽃이라고 이름 불러주기 전에는 꽃이 아닌 것처럼 비리라고 불러주기 전에는 그저 관행이고 인사고 정이다. 사람이 수없이 죽고 다쳐도 밖에 알려지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멀리 광주의 예까지 갈 것도 없이, 고발성 TV 프로그램만 봐도, 밖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짐승처럼 평생 부려먹으면서도 이게 노멀이라고 당당한 경우가 많다. 노예주는 자기 이해관계가 있으니 그렇게 뻔뻔하다 쳐도, 제3자인 이웃들에게도 그냥 있을 수 있는 일, 받아들여야 할 일로 통해왔다는 것이 놀랍다. 즉, 밖에 알려지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사건’이라고 이름 붙여지고 널리 알려져야 비로소 문제로서 다뤄지는 것이다.
이렇게 문제를 문제로 삼아줄 능력이 있는 소수 집단, 아주 한정된 대단히 특별한 능력의 담지자, 그것이 바로 권력이고 미디어다. 미디어가 바로 권력이다. 권력이란 결국 어떤 매개로든 언로를 지배하는 힘이다. 따라서 언로를 사용할 수 있는 힘 못잖게 치명적인 것은 바로, 언로를 틀어막을 수 있는 능력이다. 언론의 역할이란 그래서 귀하디귀하고, 한때 기자가 곧 지사였던 시절도 있었던 것이다.
영화 <베테랑>에서 가장 통쾌하게 느껴진 장면은 샤넬 가방에 가득한 5만원권을 돌려주는 장면도, 최 상무(유해진) 밥그릇에 장어가 가득 담기는 장면도, 조태오(유아인)가 결국 흠씬 두들겨맞는 장면도 아니었다. 나에게 가장 짜릿한 장면은 바로 혈투 중인 서도철(황정민)과 조태오를 둘러싼 구경꾼들의 시선이었고, 그것을 기록하는 수많은 스마트폰이었으며, 이로써 이제 이 사건은 누구도 덮을 수 없는 사실로 자리 매겨지는 순간이었다. 수없는 사람들이 일제히 집어든 휴대전화의 렌즈는 마치 적을 동일하게 겨눈 총구 같았고 그 총구에서는 진실과 정의를 향한 열망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그 기세에 힘입어 인근 아트박스 아저씨도 용감하게 나설 수 있었고 추후 당도한 수사대 일행도 자신 있게 조태오를 제압할 수 있었으며 이제 조태오가 개자식이란 사실은 아무도 감히 가릴 수 없는 공론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 무엇도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뭐든지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고 문제를 삼는 순간에야 비로소 문제가 된다. 이것이 문제다, 라고 선언하고 돌이켜 덮어버릴 수 없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디어다. 그 미디어를 이제 극소수의 선민들끼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나눠 소유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신기하고 고마운가. 애들이 밥 먹을 때도 가족여행 가서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아 꼴 보기 싫다가도, 저것(스마트폰)이 또한 민주주의를 얼마나 발전시키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참으로 갸륵한 녀석이기도 한 것이다.
오은하 직장인·영화진흥위원회 <코리안 시네마 투데이> 필자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오은하 직장인·영화진흥위원회 <코리안 시네마 투데이> 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