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이 필요해
인터넷·SNS와 ‘자발적 거리두기’로 시간의 질, 집중력 향상시키는 디지털 디톡스
등록 : 2015-07-16 19:32 수정 :
캐나다의 예술인 사회운동 네트워크 ‘애드버스터스’(Adbusters)가 제안한 ‘디지털 디톡스 주간’ 포스터. 애드버스터스 누리집 화면 갈무리
3%. 스마트폰 배터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집까지 15분은 더 걸어야 했다. 평소라면 스마트폰으로 팟캐스트를 들으며 포털이나 트위터·페이스북을 살펴보며 걸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지루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고 버린다’는 초조함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스마트폰 충전은 내 몸에 밥을 넣는 것보다 더 열심히 챙기는 일이어서, 이런 상황은 무척 오랜만이었다.
스마트 세상과의 분리불안?
그리고 이상했다. 배터리가 0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빨리 뛰었다. 3…2…1%. 스마트폰이 꺼지면 내 존재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초조했다. ‘살려야 한다!’ 내 이성과 무관한 마음의 소리가 메아리쳤다. 스마트폰을 이어달리기 바통처럼 한 손에 꽉 움켜쥔 채 집으로 달음질쳐 왔다. 인공호흡하듯 황급히 충전기를 연결했다. 이건 무슨 증상이란 말인가. 당황스러웠다. ‘스마트 세상’과의 분리불안이 내 영혼까지 잠식하면 어쩌나.
다행히도 나 같은 사람이 지구에 많다(는 사실을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됐다). 이번 여름휴가의 테마를 ‘디지털 디톡스’로 정하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난 휴가를 돌이켜보니, 디지털 비만으로 망한 순간이 꽤 있었다. 노는 게 노는 게 아니고,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순간들. 어설픈 계획은 금물이었다.
앞서 디지털 단식에 도전한 선배들의 분투기를 통독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없이 40일 또는 6개월을 보낸 기자들, 18살·14살·15살 난 세 자녀와 함께 6개월간 TV·컴퓨터·스마트폰을 끊어버린 직장인 싱글맘(무려 집의 두꺼비집 전원을 차단했다) 등의 경험담이 생생했다. 주의사항과 보상으로 주어질 것들을 참조했다.
모두 초기 금단현상의 고통을 호소했다. ‘유령 진동’(실제 자극이 없는데도 있는 듯 느끼는 것)은 애교다. 지루함과 권태는 차라리 의연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이었다. 자존감 하락까지 버텨야 한단다. 전자우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은 느슨하게나마 나와 타인의 관계를 실시간 증명하는 통로다. 이것들을 스스로 끊었더라도, 문득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것 같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금단현상 버티면 보상 뒤따라
그래도 이들은 결국 시간의 질이 달라지고 집중력이 향상됐다고 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디지털 혐오자나 회의주의자는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영국 <가디언>의 홈페이지에 가면 그 어떤 콘텐츠를 클릭하더라도 반짝이는 황금으로 가득한 터널이 끝없이 열릴 것 같은, 금광 입구에 선 듯한 기분”(<달콤한 로그아웃>)을 느끼는 디지털 친화적 인물들이다.
이들이 인터넷·SNS와의 자발적 거리두기에 도전한 목적에는, 디지털의 단점을 직시하면서 강점을 살려 제대로 활용하기 위함이 있다. “전진하기 위해서는 다시 후퇴해야만 한다는 교훈”(<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이 언급되는 이유다. 디지털은 어디까지나 환경이고 수단이다.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 그러니 디지털이여, 잠시만 안녕.
*참고 도서: <아날로그로 살아보기>(크리스토프 코흐 지음, 김정민 옮김, 율리시즈), <달콤한 로그아웃>(알렉스 륄레 지음, 김태정 옮김, 나무위의책),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수잔 모샤트 지음, 안진환·박아람 옮김, 민음인), <디지털 단식>(엔도 이사오·야마모트 다카아키 지음, 김정환 옮김, 와이즈베리)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