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섬유로 미래형 ‘입는 컴퓨터’ 개발… 야전부대·산업현장 등에서 대중화 추세
미 항공우주국(NASA) 무중력 실험실에서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는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입는 컴퓨터는 우주 상태를 모방한 707 비행기 KC-135에서 마이크로 중력실험을 벌이기도 했다. 우주공간으로 나온 우주비행사들의 두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우주선의 지시를 받아 작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이 착용하고 있는 입는 컴퓨터는 자이버노트(Xybernaut)사의 ‘모빌 어시스턴트’(Mobile Assistant: MA). 이 장비의 디지털카메라가 달린 헬멧과 조끼에는 무선으로 컴퓨터에 연결되는 송수신 장치가 붙어 있다. 컴퓨터가 작동되면 윈도 포맷 15인치 스크린이 눈앞 60cm 지점에 나타난다. 소매에는 터치스크린과 키보드까지 달려 있어 실시간으로 본부의 지시를 받아 원격 작업을 벌인다.
우주공간에서 활용 가능성을 인정받은 입는 컴퓨터가 놀라운 기세로 일상 속에 파고들고 있다. 마치 1979년 소니의 ‘워크맨’이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이미 시판에 들어간 입는 컴퓨터의 대표적인 기종은 자이버노트의 MA Ⅴ이다. 개인휴대단말기(PDA) 같은 팝톱컴퓨터의 기능이 사용자 위주라면 입는 컴퓨터는 쌍방향의 무선 네트워크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원터치로 자료를 송수신하고, 핸드프리로 음성통신이 자유롭게 이뤄진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자료를 입출력하고 이메일을 보내는 등 논스톱 업무를 돕는다. PDA보다 활용폭이 넓은 만큼 메모리 용량도 개인용 컴퓨터에 버금갈 정도이다. MA Ⅴ의 CPU는 이전 버전의 233MHz보다 크게 향상된 인텔 셀러론 500MHz. 윈도 98/2000/NT/XP는 물론 리눅스와 유닉스 등 대부분의 PC 운영체체를 지원한다. IBM사는 2002년에 윈도 CE 기반의 팬티엄급 입는 컴퓨터 2만5천대를 출시할 예정이다.
소형·첨단화로 더욱 가볍게 만들어
그렇다면 입는 컴퓨터는 누구를 위해 개발되는 것일까. 그것은 우선 입는 컴퓨터가 90년대 초반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데서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당시 DARPA는 항공기 제작업체인 보잉사와 함께 병사용 전투조끼를 공동개발하면서 입는 컴퓨터에 관심을 기울였다. 당연히 군사적 목적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디지털 야전군인을 목표로 삼은 ‘랜드 워리어 프로그램’에 따르면 특수부대원들은 표준형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와 윈도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삼은 입는 컴퓨터를 착용할 예정이다. 입는 컴퓨터가 군사적으로 실용화된다면 야전군인이 입는 컴퓨터로 위성신호를 이용해 상대 거점을 추적하고, 태양열을 발생시키는 특수 기능을 가진 낙하산처럼 폭넓게 군사적으로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9·11 테러로 인해 보안시설이 입는 컴퓨터의 주요 고객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보안에 관련된 이동 근무자에게 입는 컴퓨터를 지급하면 감시망을 더욱 촘촘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항이나 관공서, 빌딩 등 주요 건물의 이동 근무자가 입는 컴퓨터를 착용한 상태에서 그냥 걷기만 해도 ‘요주의 인물’에게는 위협적이다. 이동 근무자가 자연스럽게 걸으면서 헤드폰처럼 머리에 쓴 장치에 있는 비디오카메라로 주변을 찍어 지휘소에 보내기 때문이다. 컴퓨터 모니터로 자료를 전송받은 지휘소에서는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자료와 동영상 필름 자료를 비교 검토한다. 그리고 곧바로 확인된 인물은 집중적인 감시를 받게 된다. 물론 터치스크린을 통해 직접 인물에 관한 정보를 얻거나 헤드셋을 이용해 컴퓨터에 작업지시를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기능은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매장에서 물건을 훔치려는 사람의 행동을 감시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입는 컴퓨터는 산업 현장을 누비고 다닐 태세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도의 정밀작업을 수행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입는 컴퓨터를 이용하면 대형 엔진 아래나 유조선 파이프라인 부근 등에서 터치스크린으로 매뉴얼을 살피며 수리작업을 할 수 있다. 소음에 강한 헤드셋은 새로운 인터페이스 기능을 하기도 있다. 현재 시판중인 입는 컴퓨터는 85db의 소음에서도 음성을 인식해 현장 작업에 유리하다. 이미 캐나다의 통신업체인 벨캐나다의 현장 기술자 18명이 입는 컴퓨터로 작업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화물 운송기업인 페더럴 익스프레스는 항공기 유지 요원들에게 100만달러 분량의 입는 컴퓨터를 지급했다. 일반 가정에서도 입는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다. 치매를 앓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있다면 일상의 불편함을 크게 덜 수 있다. 집 밖으로 나가서 해야 하는 일을 크게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 밖에서도 무선 네트워크를 이용해 하고자 하는 일을 원할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시판중인 입는 컴퓨터는 무게가 만만치 않다. CPU만 해도 1kg에 가까울 정도이다. 거기에다 각종 부속장치를 추가하면 소형 노트북보다도 더 무게감이 느껴진다. IBM사도 2002년에 윈도 CE 기반의 펜티엄급 입는 컴퓨터 2만5천대를 출시할 예정이지만 획기적으로 중량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입는 컴퓨터에 관심을 기울이는 업체들은 관련 부품의 소형화에 매달리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제품은 미국 마이크로옵티컬사가 개발한 액정디스플레이(LCD)가 내장된 안경이다. 이 안경의 투박한 안경테에는 미세부품이 내장돼 있다. 이 부품을 이용해 렌즈에 대각선으로 빛을 투사하면 LCD가 생성된다. 이때 해상도는 320X240dpi로 마치 일반 텔레비전을 보는 듯하다. 바이아 컴퓨터즈(Via Computers)사의 통신 기능을 갖춘 손목시계도 활용가능성이 높다. 이 제품은 소형이지만 첨단 기능으로 똘똘 뭉쳐 있다. 마이크 스피커는 물론 컬러 디스플레이도 갖추고 있다.
일본 세이코 인스트루먼츠가 개발한 손목시계형 PDA인 ‘러퓨터’도 입는 컴퓨터의 일종이다. 아직 16비트 CPU 수준이어서 정밀한 작업에는 사용하기 힘들지만 소형화에 성공을 거두어 활용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국내에서도 입는 컴퓨터 관련 시제품이 완성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로 삼성전자가 개발한 ‘스커리’는 반지 모양의 기구를 이용해 자판을 치듯 손가락을 움직이면 텍스트가 입력되는 신개념의 키보드이다. 이 제품은 미니 키보드마저 거추장스러운 부품으로 밀어낼 것으로 보인다. 머지않아 중량감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4시간 안팎이면 수명이 다하는 휴대용 배터리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이 사람의 발걸음에 따라 신체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발전기 내장 구두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소비전력이 낮은 라디오에나 사용할 수 있지만 수년 내에 입는 컴퓨터 전력원으로 쓰일 예정이다. MIT 미디어랩은 입는 컴퓨터를 위한 차세대 플랫폼 ‘미스릴’(MIThril)을 개발하고 있다. 미스릴은 간편한 의류에 경량의 RISC 프로세서를 설치해 광대역의 무선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입는 컴퓨터이다.
걸치는 컴퓨터는 가라, 이젠 입는다
이렇듯 입는 컴퓨터 관련 부품의 첨단화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입는 컴퓨터의 근본적인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다. 실제로 컴퓨터를 ‘입는’ 데 다가서지 못하고 ‘걸치는’ 착용감을 높이기 위해 개인용 컴퓨터 비슷한 기기의 소형화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개발되는 기기는 대부분 ‘착용 가능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시 말해 기존 컴퓨터를 소형화해 옷에 부착하는 정도라는 것이다. 입는 컴퓨터만의 고유한 시스템 구조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옷감에 회로를 입힌 ‘전자 섬유’가 개발되어야 한다. 이에 관한 가능성은 프랑스의 알카텔사가 지난 4월 독일 하노버 세빗2001에 선보인 ‘블루투수 재킷’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재킷은 옷감에 각종 컴퓨터 회로를 내장한 ‘스마트 옷감’ 구실을 했다. 옷이 첨단 정보기기로 거듭난 셈이다. 하지만 전자회로의 성능이 떨어져 실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이런 가운데 DARPA가 앞으로 5년 동안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해 전자섬유 개발에 나서기로 결정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입는 컴퓨터는 무선 인터넷 시대의 총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물론 거기엔 장애물이 수두룩하게 놓여 있다. 지금처럼 거추장스러운 기기들을 온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녀야 한다면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각각의 기기가 아무리 첨단으로 무장해 소형화된다 해도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효용성이 떨어진다. 무려 10억달러를 투자한 펜컴퓨터가 고객을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입는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보처리가 가능하고 데이터를 전송하는 옷감이 개발되어야 한다. 입는 컴퓨터 설계를 위해 섬유공학자와 컴퓨터공학자가 만나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렇게 된다면 사용자가 착용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컴퓨터를 간편하게 입게 될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의복을 친구삼아 대화를 나누는 것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지금 그런 시대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사진/ 입는 컴퓨터가 산업현장을 누비고 있다. 자이버노트사의 MA5를 이용해 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 지금의 입는 컴퓨터는 의복에 부착되는 수준이다.

사진/ 컴덱스2000에 출품된 안경 모니터는 3차원 입체 영상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