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메이션은 어디까지?
등록 : 2001-11-28 00:00 수정 :
국내에서는 제작중인 3D 애니메이션 가운데 각별한 주목을 끄는 작품이 <마리 이야기>와 <원더풀 데이즈>다. 컴퓨터그래픽의 3차원 이미지를 쓴다는 점에서는 다른 3D 애니메이션과 같으나, 3D와 2D를 혼용해 색다른 질감의 변주를 보여준다.
내년 1월 개봉예정인 <마리 이야기>는 <연인> <덤불 속의 재> 등의 단편으로 이름을 높인 이성강 감독의 첫 장편애니메이션. 작은 어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어른이 된 남우의 성장에 대한 추억이 소소한 일상 속에 펼쳐진다. 특이한 건 신비한 소녀 마리를 만나면서 환상의 세계와 마주하는 장면들. 소년의 성장기와 이웃의 수수한 삶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면서, 일상의 틈새에서 동화적인 판타지와 그리움의 정조를 끌어낸다. 때로는 투명한 수채화처럼 때로는 인상파의 그림처럼 거친 터치로 묘사된 그림은 공간감을 지니면서도 차갑거나 인공적인 느낌이 거의 없다. 실제 풍경을 바탕으로 한 배경은 3D로 제작한 다음 일일이 2D로 재손질됐고, 배우들의 실제 연기는 컴퓨터에서 2D 캐릭터와 결합됐다. 기존 컴퓨터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던 푸근한 화면의 질감은 그래서 가능하다.
<원더풀 데이즈> 역시 눈에 익은 3D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이미지를 실험하는 작품이다. 셀과 미니어처, 3D 컴퓨터그래픽 등 다양한 질감을 합성하는 어려운 작업을 진행중이다. 인류의 유일한 터전으로 남은 남태평양의 시실섬을 무대로, 인공 돔 안의 도시 에코반과 그 외곽의 황폐한 땅 마르의 젊은이들의 갈등과 사랑을 다룬 SF물이다. 암울한 미래의 지구에서 더이상 보기 힘든 청명한 하늘처럼 아름다운 날들을 꿈꾸는 인물들은 컴퓨터가 아니라 셀에 그려진 2D 캐릭터. 오토바이나 무기 등 소품은 3D 컴퓨터그래픽이며, 초현대적인 도시와 원시적인 자연이 공존하는 배경은 모션컨트롤 카메라로 촬영한 미니어처 세트와 매트페인팅, 실사영상의 합성이다. 합쳐보면 실사로 찍어서 컴퓨터로 덧칠한 하늘 아래, 3D 오토바이를 탄 2D 셀 캐릭터가 미니어처로 만든 인공도시를 향해 달리는 식이다. <원더풀 데이즈>로 장편 애니메이션에 데뷔하는 김문생 감독은, 이미 15년간 260여편의 CF를 만들면서 이러한 복합적인 질감의 애니메이션을 실험해온 경력이 있다. 다양한 질감을 컴퓨터로 합성하는 기법은, 애니메이션의 분방함에 실사영화 같은 중량감을 더하기 위해서다. 첨단 테크놀로지가 동원된 <원더풀 데이즈>는 제작비 60억원 이상, 5년여의 제작기간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드문 질감의 영상실험으로 해외시장을 적극 겨냥하겠다는 게 제작진의 포석이다. 올해 나온 7분 남짓한 2번째 데모까지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의 음울한 풍광과 역동적인 카메라워크, 다양한 질감의 결합이 매력적이다. 현재 합성작업과 2D 셀 작업을 진행중인 <원더풀 데이즈>는 내년 여름에 개봉할 예정이다.
황혜림 기자/ 한겨레 씨네2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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