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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상막소주 같던 촌놈의 매력

거친 맛 탓에 세련된 런던 사람에게 개무시당하던 싱글몰트위스키, 이젠 개성 강한 그 맛을 모르는 사람이 촌놈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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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19 17:19 수정 : 2015-03-2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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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사진가’ 카이(甲斐)씨. 중년에 접어들던 20여 년 전, 반은 부업 삼아, 반은 술친구들을 위한 아지트 삼아 조그만 술집을 열었다. 가게 이름을 놓고 고심하던 중, 술장 선반 위 술병들을 바라보다가 무릎을 쳤다. ‘팔문자옥’(八文字屋). 과연 그럴싸하다.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술병들이 서로 다른 색깔과 언어로 깊어가는 밤을 물들이고 있다. 지금 그 술병 앞에서 잔을 기울이는 술꾼들이 딱 그런 것처럼.

인생이 그렇듯 술에도 부침이 있다. 최근 떠오르는 것은 ‘싱글몰트스카치위스키’.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에서 세계의 술꾼들에게 내보내는 연간 11억9천만 병(2012년 기준) 중 얼추 12%인 1억5천만 병이 싱글몰트다. 불과 10년 사이에 2배 가까이 늘었다. 대세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확실한 추입마인 것만은 분명하다. 술과 떠나는 지구촌 방랑은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라는, 4개의 단어가 조합해 이루어진 이 술을 뜯어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싱글몰트를 최초로 병입 상품화한 글렌피딕 증류소. 자본에 휩쓸리지 않고 일가족 독립경영을 지키고 있다. 완고함과 개척정신. 글렌피딕 맛의 두 기둥이다. 김명렬
‘위스키’란, 곡물을 원료로 해서 맥아로 발효해 증류한 술을 가리킨다. 술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자연의 효모를 이용해 발효·숙성한 양조주(와인·맥주·청주 등), 그 양조주를 알코올이 물보다 낮은 온도에서 먼저 증발한다는 원리를 이용해 증류해서 도수 높은 알코올을 얻어낸 증류주(위스키·보드카·럼·진·소주 등), 그리고 그 증류주에 설탕·약초·향료 등을 넣어 독특한 향과 맛을 낸 혼성주다.

‘스카치위스키’는 산지에 따른 분류다. 스코틀랜드 의 스카치위스키, 아일랜드의 아이리시위스키, 아메리칸위스키, 캐나디안위스키, 재패니즈위스키 등으로 대별된다. 독일, 인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생산된다. 아주 작은 나라 부탄에서도 위스키를 만든다. 위스키 소비량 세계 10위권의 한국은?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스카치위스키로 불리기 위한 기준은 법령으로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그중 특징적인 것은, 증류와 저장(최소 3년)은 물론 최근 법 개정으로 이제는 병입까지 모두 스코틀랜드에서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위스키 원액을 수입해 상품화하면 ‘스카치위스키’라고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몰트위스키’는 위스키의 원료 곡물로 오직 보리만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몰트(Malt)는 발아된 보리의 싹이다. 옥수수·밀 등으로도 위스키를 만들지만 이 경우는 몰트위스키의 전통적 제조 방법에 따른 단식 증류기가 아닌, 19세기 초 발명된 연속식 증류기를 이용해서 위스키를 생산하며 따로 ‘그레인위스키’라고 부른다. 그레인위스키는 몰트위스키에 비해 풍미가 단순하고 담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끝으로 ‘싱글위스키’는 ‘더블’이 아닌 ‘블렌디드위스키’에 대응하는 말이다. 개별 증류소에서 생산된 위스키를 다른 증류소의 위스키와 섞지 않고 자체 상표를 달아 병입, 출시한 위스키를 가리킨다. 귀에 익숙한 시바스리갈, 조니워커, 커티삭, 밸런타인 등은 여러 위스키 원액을 섞어 만든 블렌디드위스키다.

스코틀랜드 위스키는 워낙 맛이 거칠고 개성이 지나치게 강해 오랫동안 그냥 마시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술로 여겨져왔다. 소주로 치자면 막소주 중에서도 ‘상막소주’라고나 할까. 거친 촌놈인 스코틀랜드 사람들이나 마시는 술이지, 세련된 영국 런던 사람들에게는 씨도 안 먹히는 술이었다. 거친 몰트위스키와 담백·단순한 그레인위스키를 적당히 배합하면 런던 술꾼들의 입맛에 어울리는 부드럽고 순한 위스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탄생한 것이 블렌디드위스키다. 그로부터 적어도 100년 이상은 위스키 하면 블렌디드위스키를 의미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거칠게만 느껴졌던 몰트위스키가 거꾸로 강력한 개성으로 느껴지는 인식의 전환이 찾아왔다. 상무지렁이 촌놈이 알고 보니 뚝심 있고 직정 있는 스타일리스트가 아닌가 하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아직 대세인 블렌디드위스키와 강력한 추세로 떠오른 싱글몰트위스키를 음악에 빗대자면 전자는 심포니고 후자는 약간 뻗대기를 좋아하는 솔리스트라고 할까. 맛의 우열을 비교는 할 수 없지만, 감상 기호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차이다. 그러나 역시 위스키 맛의 원형은 일체의 이종 교합을 거부하면서, 태어난 그대로의 맛을 고집하는 싱글몰트에 있지 않을까라고는 생각하고 있다.

자전거 여행가·‘바 상수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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