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은 큰 명절이기는 하지만 제사를 지내지 않아 아낙네들이 명절 준비하기가 훨씬 수월하고 친정이나 친척 어른들 집 찾아 인사를 다닐 여유가 생깁니다. 정월 열나흗날 밤은 일찍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여 아덜도 자지 않고 수선을 떨고 어른들은 나물 볶고 찰밥을 찌느라고 밤을 새웁니다. 특히 동네 아가씨들도 보름 하루는 모여 널도 뛰고 안방이 넓은 집에 모여 밤을 보낼 수 있어 설레는 마음으로 보름을 준비합니다.
정월 대보름에는 집집마다 찰밥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합니다. 적게 하든지 많이 하든지 시루에 쪄서 찰밥을 하고, 어떤 집은 평소에 밥하듯이 그냥 솥에 찰곡식으로 찰밥이라고 흉내만 내더라도 찰밥은 다 해먹습니다. 쌀이 귀하고 값이 비싸 집집마다 잡곡을 섞어 찰밥을 합니다. 잡곡 찰밥은 준비 과정이 찹쌀로만 하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일이 많고 여간 분주한 일이 아닙니다. 찰옥수수쌀은 하루 전에 담가 불리고 수수쌀은 보리쌀처럼 여러 번 응켜 씻어 살짝 삶아 건지고 차좁쌀과 찹쌀도 불립니다. 잘 갈무리해두었던 줄콩들을 삶고 팥도 삶아 준비합니다.
벅(부엌) 앞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두었던 밤을 꺼내 머리 부분에 칼집을 넣어 잿불에 부지깽이로 휘휘 지지면 겉껍질이 타면서 벌어질 때 까서 노랗게 속 버물을 벗겨놓고, 마른 대추는 씻어 건져 씨를 발라 준비합니다. 각종 준비한 찰잡곡 쌀들과 밤·대추·줄콩 삶은 것과 팥 삶은 것을 넣고 큰 시루에 안쳐 찝니다. 한번 김이 오르면 소금물을 약간 타서 아직 덜 쪄진 밥 위에 뿌립니다. 차진 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을 많이 뿌리고 고슬고슬한 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을 조금 뿌려 다시 푹 쪄서 뜸을 들인 다음 큰 함지박에 쏟아 떡메로 슬슬 문대어 다시 시루에 안쳐 푹 쪄냅니다. 아침에는 주걱으로 퍼서 밥처럼 먹지만 식으면 칼로 큼직큼직하게 떡덩이처럼 썰어 광주리에 담아 얼려놓고 이월 초하루까지 먹습니다.
논마지기나 부치는 집도 잡곡 찰밥을 하지만 유독 숙자네 집만은 찹쌀만 쪄서 차돌처럼 맛있는 찰밥을 해먹습니다. 숙자는 아침나절부터 친구들을 불러들여 마당에서 널도 뛰고 찰밥을 먹으며 놉니다. 딸이 많은 숙자네는 큰언니가 충북 제천에서 제일 큰 미곡상을 하는데 큰언니네 집에서 찹쌀을 한 가마니나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언니네서 왜간장을 가져와 무말랭이도 무치고 마른 고춧잎도 삶아서 실고추만 넣고 잘박잘박하게 무쳤습니다. 왜간장으로 간을 하면 달짝지근한 것이 무척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나물 반찬도 참기름으로 무쳐 엄청 맛있습니다. 숙자는 자기네 언니 집에는 큰 창고에 곡식이 억수로 쌓여 있다고 자랑합니다. 집간장과 들기름으로 반찬을 해먹다가 숙자네 집 반찬을 먹으니 살살 녹는 기분이 듭니다.
밤이 되자 안방에 등잔불을 밝히고 처녀애들이 모였습니다. 숙자는 제천에서 새로 배워온 노래를 부릅니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궂은 비 오는 밤 낙숫물 소리 오동동 오동동 그침이 없이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오~.”
여태껏은 학교에서 배운 나의 살던 고향 같은 만날 부르던 몇 가지 노래만 불러 별로 흥이 나지 않아 일찍 잠을 잤었는데 오동추야는 부르고 또 불러도 지치지 않고 재미있습니다. 그만 자라고 장닭이 꼬끼오오오 꼬끼오… 해도 여전히 오동추야를 부릅니다. 끼가 많은 숙자는 신이 나서 문에 그림자가 어른어른 비치지 않도록 등잔불을 문 앞에 놓고 모두 다 방 안쪽으로 모이라고 합니다.
여태껏 어른들이 추는 걸 따라 어깨춤을 추고 놀았었는데 숙자는 새로 배워온 춤을 춥니다. 두 팔을 가슴께까지 올리고 한쪽 다리를 들고 온몸을 얄랑거리며 흔들며 모두 다 따라하라고 합니다. 다들 우스워서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무엇이 그리 우스우냐고 그러다 배꼽 빠지겠다고 하며 여전히 얄랑거리며 양쪽 발을 번갈아 비비며 열심히 춤을 춥니다. 모두 웃다웃다 다 같이 숙자를 따라 춤을 춥니다.
장닭이 꼬끼오오오 꼬끼오~ 해도 여전히 “동동 뜨는 뱃놀이가 오동동이냐 사공의 뱃노래가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멋쟁이 기생들 장구 소리가 오동동 오동동 밤을 새우는 한량님들 밤 놀음이 오동동이오” 하고 계속합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
구둘래 기자
전순예 1945년생 주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