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은 영등포에 있는 학원에서 중학교 수학강사로 일한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통계학 대학원에 진학한 꽝은 연구실 조교를 하며 틈틈이 학원강사를 했다. 어느 날 지도교수의 연말정산을 처리해주다가 꽝은 문득 삶이 헛헛해졌다. 꽝은 몇 년간 연구실에서 지도교수가 룸살롱에 가서 쓴 수많은 영수증들을 모으는 일만 했다. 살아온 인생을 대충 통계 내보니 잘 되어봐야 학교 전산실 취업이다. 과에서 제일 잘나간 선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이다. 하지만 선배는 선거 때 출구조사 한번 실수한 것이 화근이 되어 현재 가리봉동에서 부동산중개소를 한다. 땅은 거짓말을 열심히 시키면 그대로 따라한다고 했다. 꽝은 어릴 적부터 부모님들이 시키는 대로 살았지만 간암으로 두 부모님을 잃은 뒤 생각이 달라졌다. 두 부모가 같은 해 나란히 간암 판정을 받으셨고, 두 손을 꼭 쥔 채 나란히 돌아가실 확률은 예상치 못했다. 부모의 지지율이 사라진 투표는 해봐야 허탕이다.
꽝은 대학원을 때려치우고 선배가 운영하는 입시학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수포자들(수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어 이쪽은 아직 요직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의 수학 점수가 오르면 보너스도 조금씩 정비례했다. 수학의 세계가 늘 오묘하다고 꽝은 생각한다. 수학은 상상력을 발휘해선 안 되니까. 결국 공식으로 돌아오는 정직한 세계가 수학이니까. 꽝은 학교를 마치고 피곤한 얼굴로 학원에 오는 아이들에게 인생이란 발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명언 따위는 가르치지 않는다. 미적분까지는 발전해야 인생이 충만해지고 원주율 속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꽝은 주말까지 열심히 일했다. 원장이 갑자기 업종을 바꿔 학원을 노래방으로 바꿔야겠다고 선언하기 전까진.
원장은 파트타임으로 손님을 접대할 아줌마들을 면접 보기 시작했다. 선배는 이제 노래방엔 다른 강사가 필요하다며 강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꽝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로또복권을 왕창 사왔다. 그리고 로또는 이제 꽝의 완전연소프로젝트가 되어버렸다. 로또를 분석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꽝은 방바닥에 앉아 홀짝 비율과 고정수와 제외수를 분석한다. 역전 경향에 대해 도표를 만들고 당선 수기를 열심히 읽으며 마인드맵을 작성한다. 신문에서 일주일 동안 판매된 로또가 2천억원을 육박한다는 기사를 보면 첫사랑을 보았을 때보다 가슴이 뛴다. “숫자만으로 이루어진 이보다 공평한 재분배가 어디 있겠는가?”
꽝은 거대한 당첨금을 상상하자 일주일의 일상이 즐거워졌다. 어떤 일을 해도 지금처럼 설레며 일주일을 보내본 적이 없었다. 꽝은 로또를 성실하게 분석하는 것만이 무산계층을 우습게 보지 않도록 하는 건강한 시민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불평등을 해결하고 자수성가할 수 있는 자발적 동기를 한탕주의로 몰고 가는 사람들의 생각은 꼬인 것이라고 꽝은 생각한다. 정부의 공공사업 중 로또만이 국민 모두에게 희망을 한시라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진정한 배분율에 걸맞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시민처럼 가진 자와 덜 가진 자가 저녁에 모여서 토요일 밤 로또 중계를 함께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꽝은 로또 숫자들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시간은 자신의 노동요에 가깝다고 믿는다. 로또에 당첨된 날을 상상하면 자기 전에 미소가 나온다. 매주 실패하더라도 꽝은 자신이 분석해서 고른 숫자들을 허수로 보지 않았다. 마지막 수학 수업 때 꽝은 확률을 가르쳤다. 학생들에게 이제 가치관이 바로 서야 스스로 주인이 되는 거라고 로또 명당자리를 권했다. 영장류는 짐승과 달리 숫자를 고를 수 있어야 한다는 함수관계를 설명한다. 사람들은 로또에 삶을 의존하는 것은 비참한 악순환이라고 비웃지만 꽝은 모를 소리라고 여긴다. 인생이 흐린 자들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인 무리수가 어디 있겠는가. 김경주 시인·극작가
표지이야기
로또 분석하는 수학선생 ‘꽝’
제 1052호
등록 : 2015-03-10 16:11 수정 : 2015-03-13 1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