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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고공이 지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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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09 13:35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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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아저씨가 ‘기차길옆작은학교’ 아이들에게 띄운다.

2015년 새해가 밝았네. 아저씨는 평택 쌍용자동차 70m 굴뚝 위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엄청 큰 공장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올해는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너희가 보내준 편지를 읽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쌍용차 회사에 답답하고 화가 난다는 얘기, 편지에 핫팩이라도 붙여 보내고 싶다는 마음, 일하는 사람을 쫓아내지 않는 것이 평화라는 글귀가 아저씨의 눈에 들어와 한참을 읽었다.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끝이겠지 했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해서 나라가 참 지랄맞다고 생각했다는 편지를 읽고는 ‘빵’ 터졌다.

너희의 걱정이 이곳까지 닿았는지, 처음엔 하루 한 끼 식사가 올라왔지만 지금은 끼니마다 가족·동료들이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따뜻한 밥이 올라온단다. 새해 첫날 강풍이 불어 굴뚝이 흔들거리고 춥지만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잘 버텨내고 있단다.

아저씨에게도 중학교 1학년 딸,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있다.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싸우느라 6년 동안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해주지 못해 마음이 늘 아프지만 씩씩하게 잘 자라주고 엄마도 도와주고 있어서 정말 고맙다. 굴뚝에서 내려가 자랑스런 쌍용차 작업복을 입고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출근하는 날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단다.

얘들아, 아저씨가 이렇게까지 높은 곳에서 외치는 소리가 무엇일 것 같니? 아저씨는 23살 때부터 쌍용차를 만들었다. 아저씨들이 만든 코란도와 무쏘, 렉스턴은 인기가 많았고 중동의 부자들이 타고 다니는 정말 괜찮은 차였는데, 회사를 운영하던 사람들이 회사를 중국 상하이차에 팔아버리고 상하이차는 쌍용차의 좋은 기술만 빼먹고 ‘먹튀’를 했단다. 또 회사를 운영하던 사람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 아저씨들을 3천 명이나 해고했다. 서로 양보해서 같이 살자고 외쳤는데 그들은 경찰을 앞세워 우리를 공장에서 쫓아냈다.

아저씨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다른 사람들도 아저씨들처럼 일하던 곳에서 함부로 쫓겨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었다. 너희에게 아저씨의 아이들이 겪은 것처럼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란다.

친구들끼리 싸우면 왜 싸움이 일어났는지, 누가 먼저 시비를 걸고 때렸는지를 알아야 서로 화해를 해도 정당한 화해가 되겠지? 쌍용차 아저씨들의 문제도 마찬가지란다. 회사와 정부, 노동자 중 누가 먼저 잘못을 했는지 밝히고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화해하고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 같이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우리 어른들이 너희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친구와 싸웠더라도 금방 화해하고 뛰어노는 것처럼. 6년 전에 회사와 우리가 싸웠지만 이제는 화해하고 함께 새 차를 만들고 같이 뛰어놀았으면 좋겠다.


굴뚝 위에서 언제 내려갈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공장에서 일하는 걸로 결정이 났을 때 땅을 밟을 것 같구나. 그런 날이 꼭 오겠지? 인천에서 이곳 굴뚝까지 찾아와 아저씨들을 응원해준 너희에게 정말 고맙다.

굴뚝 위에는 매일매일 고드름이 열린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춥다. 그러나 태양이 뜨면 조금씩 따뜻해진다.

아저씨가 너희에게 약속하고 싶구나. 자동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너희에게 꼭 보여주고 싶구나.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2015년 1월1일 새해 첫날에 쌍용차 70m 굴뚝 위에서 김정욱 아저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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