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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항해는 이제 시작되었다네!

2집 정규 앨범 <보물섬>을 낸 ‘9와 숫자들’…차가운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더 따뜻한 희망을 품고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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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31 15:30 수정 : 2015-01-0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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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을 올려요 노를 저어요 높은 파도, 거센 암초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 – <보물섬>]

그렇게 항해가 시작됐다. ‘9’(송재경·보컬·기타)와 ‘0’(유정목·기타), ‘4’(이용·베이스), ‘3’(유병덕·드럼)으로 이뤄진 모던록 밴드 ‘9와 숫자들’이 최근 2집 정규앨범 <보물섬>을 냈다. 2009년 말 1집을 냈고 2013년 11월 미니앨범 <유예>를 낸 뒤 1년여 만이다. 평단의 호평에 굵직한 상들도 받았고, 묵묵하게 곁을 지켜주는 팬들의 사랑도 받았다. 데뷔 뒤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흔들림이 없다. 적어도 음악은 그렇다. 12월27일, 28일 앙코르 단독공연 ‘금을 찾아서, 금을 넘어서’를 준비하느라 바쁜 9와 숫자들을 2014년 12월22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여전히 겨울, 조금은 따뜻한 겨울


[봄 여름 가을 없고 겨울뿐이던 짓궂은 계절의 농담에도 넌 괜찮겠지 해와 달이 몇 바퀴를 돌도록 그냥 그렇게 너는 있었네 – <겨울 독수리>

찬 겨울바람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듣고 싶어지는 음악들이 있다. 9와 숫자들은 우연히도 매번 앨범을 한겨울이나, 겨울을 앞두고 냈다. 앨범 속 곡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겨울에 잘 어울리는 밴드라는 옷이 꽤 잘 어울린다. 멤버들도 부정하지 않는다. “일단 우리 앨범 감성이 여름은 아닌 것 같아요. 5~6월에 낼 거면 멤버들끼리 기다렸다가 겨울에 내자고 해요.”(9) 0도 거든다. “노래를 만드는 9 형의 감성이 불타오르는 감성은 진짜 아닌 것 같아요. 대부분의 노래가.(웃음)” 시린 봄과 져가는 가을에도 꽤 잘 어울린다고 3은 말했다.

박승화 기자
여전히 겨울이다. 그런데 조금은 따뜻한 겨울이다. 이상고온까지는 아니고, 바람은 차지만 노란 햇볕은 따사로운 그런 겨울날. 앨범 색깔도 샛노랗다. 봄의 전령사 개나리처럼. “저번 앨범이 워낙 어두워서 상대적으로 그런 것 같은데 죽 들어보면 어두운 노래도 곳곳에 있어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흐름상 따뜻하고 밝은 정서가 강해졌죠.” 모든 노래를 작곡·작사하는 9는 설명한다. “지난 앨범 제목인 <유예>에서 보듯 부정이 심했어요. 유예라는 말 자체도 너무 싫은데 선택하지 않는 정서를 표현하잖아요. 달려들지 못하고 섣불리 좋아했다가 상처를 주거나 받지 않을까? 이런 회의가 담겼죠.”

[내가 언제 나를 사랑해달랬나요 니 맘대로 왔다 갔잖아 한땐 내가 울었는지 몰라도 지금 우는 것은 너잖아 – <커튼콜>]

사랑 또는 이별의 말을 어떻게 꺼낼까 애꿎은 신발 끝으로 흙을 툭툭 차며 망설였던 이 전 노래 속 화자는 좀더 직설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이제는 조금 인정해야 하는 건 인정하고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현재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느끼자, 그런 마음이 음악에 반영됐던 것 같아요.”(9)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고 저절로 박수를 부르는 멜로디는 조금은 짓궂은 표현과 궁합이 잘 맞는다. 머뭇거렸던 마음이 조금 개운해진다.

도무지 따뜻한 소식을 찾기 어려운 세밑, 모두들 희망을 찾고 싶다. 이번 앨범 <보물섬>은 그런 희망의 조각을 군데군데 흩뿌려놓았다. 다만, ‘여기 희망이 있어!’ ‘다 잘될 거야!’ 식의 위로와 응원은 아니다. 저마다 꿈을 향해 가는 동안의 어려움을 숨기지 않는다. 보물섬은 그렇게 쉽게 찾아지는 것이 아니니까, 꿈은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니까.

[여기가 바로 나의 나약함의 무덤 한 걸음만 더 가면 완전히 새로운 세상 – <실버 라인>]

전개, 위기, 절정, 결말까지 없는 이야기

꿈을 좇아가더라도, 그 끝이 찬란하리란 확신에 찬 결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득 가사를 되뇌다가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느낌이 그래서 든다. 9는 설명했다. “제가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그래요. <커튼콜>에 ‘전개 위기 절정 간데없고’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대부분의 노래는 결말마저 없어요. 당장 즐겁고 깔깔거리는 게 행복일 수 있지만 저는 ‘진짜 행복하고 좋은 것이 뭐지?’라는 질문이 먼저 필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답을 찾아가는 거죠. 제가 상상하는 결말은 항상 따뜻하지만 이런 열린 결말 때문에 저희 음악을 듣고 회의나 냉소, 염세를 느낀다고 하시는 것 같아요. 그게 절대 아닌데.(웃음)” 이 설명을 듣던 0은 묻는다. “<보물섬>에서 열린 결말이 느껴지나? 난 모든 노래에 확실한 메시지가 담겼다고 생각하는데?” “넌 내 마음을 아니까 그런 거지.”(9) 그렇게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듣는 이에게 행복이 뭐냐고, 희망이 뭐냐고, 사랑이 무엇이냐고. 때로는 포근하지만 때로는 차가운 느낌이 드는 이유다.

2014년 12월22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9와 숫자 들’(왼쪽). 왼쪽부터 ‘3’(유병덕·드럼), ‘0’(유정목·기타), ‘9’(송재경·보컬·기타), ‘4’(이용·베이스). 2집 정규앨범 의 재킷 이미지. 류우종 기자, 오름엔터테인먼트 제공
앨범은 다양한 전개와 멜로디로 이뤄졌다. 전체를 관통하는 뉘앙스는 옅어졌지만 그만큼 곡 하나하나의 개성이 뚜렷해진 느낌이다. 이번 앨범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예전에는 9가 작사·작곡한 노래를 멤버들이 각자 듣고 각자 편곡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2집에서는 자주 모여 머리를 맞대고 연주를 직접 해보는 방식으로 편곡을 진행했다고 한다. 저마다 달라진 방식에 대한 의견은 다르다. 베이스기타를 치는 4는 “비슷했던 것 같아요. 달랐던 것은 좀 많이 했다는 것. 전보다 훨씬 많이 만나고 고민을 되게 많이 했어요. 전에도 고민 안 한 것은 아니어도 금방 끝났어요. 녹음 딱 해서 만들기까지 몇 번 만지고, 그 상태로 나오고. 이번에는 두 배, 세 배로 시간을 들였어요. 버전도 여러 가지로 하고, 많이 만졌죠”라고 말했다. 0은 곡 자체를 더 깊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큰 장점이 됐단다.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0은 “제 마음대로 했을 때 거기서 생각지도 못한 것이 나올 때가 있었는데 그것을 의논해가며 하나를 만드니까 같이 가면서 번외편으로 튀어나올 수 있는 맛이 없어지는 게 있어서 그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드럼을 치는 3은 “이번이 진짜 편했다. 따로 하면 일일이 컴퓨터로 작업이 필요했는데 모여서 한번에 연주하면서 하니까 훨씬 작업을 자연스럽고 편하게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9는 이번 작업이 꽤나 만족스러워 보였다. “결과적으로 1집하고 <유예> 때는 최종 결과물에 아쉬운 것이 있었는데 곡 하나하나를 잘 만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듭 만나서 고민하고 할수록 못 보던 것을 보게 되니까. 이번 앨범은 너무 오래 작업해서 잘 듣지 않지만요.(웃음)”

또 하나의 데뷔 앨범, 2집

[내 말이 얄미웁다고 해요 정말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그래도 괜찮아요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내 진심을 알아준다면 – <숨바꼭질>]

9와 숫자들의 그간 앨범을 보면 충격적인 도발은 없지만 우직한 도전은 꾸준하다. 그래서 더욱 깊고 넓어진다. 그치지 않는 성실함 같은 게 묻어난다. 그 성실함과 변치 않음을 무책임하게 “이전 앨범이랑 똑같네?”라고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평가를 하는 사람에게 9는 말한다. “정규 1집은 풋풋함 하나로 밀어붙였다면 이번에는 작정하고 한번 만들어보자는 심정으로 만들었어요. 또 하나의 데뷔 앨범이라고 생각했죠. 무작정 새로움보다는 프로 뮤지션으로서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서 만들어보자 했어요. 새로움을 보여달라면 보여줄 수 있지만, 지금 그것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더 탄탄함을 보여줘야 할 시기죠.” 여기에 덧붙여 4는 “음악이라는 게 새로운 것은 크게 중요한 기준은 아닌 것 같아요. 계속 똑같아도 그게 계속 좋으면 계속 하면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따뜻한 낙관을 품고 있지만 현실은 차갑다는 말, 홍익대 앞 인디신에도 적용된다. 연말 공연에 사람이 북적일 법한데 한가한 모습을 보고 홍대 앞 인디 음악 관계자들은 한숨을 내쉰다. 10여 년간 홍대 앞에서 음악을 해온 9와 숫자들도 체감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피하지 않는다. 모든 홍대 앞 인디밴드들이 그렇겠지만. 9는 “송라이터로서는 음악이 더 좋아야 한다, 더 빈틈없어야 한다 생각해요. ‘네가 몰라서 그래’라고 하는 음악이 아니라, 반론의 여지가 없이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더 노력을 많이 하게 되고. 그래서 타이틀곡을 만들 때 항상 어려워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가적인 고민을 하면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것 같고요. 그러면서 저희들의 활동 기반이 조금씩 넓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에 음악적으로 한 단계씩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죠”라고 말했다. 어떤 엄격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번 타이틀곡인 <숨바꼭질>도 애를 먹었단다. 듣기엔 참 편한 노래인데. 그만큼 온갖 고민을 했을 테다. 에피소드 없는 노래가 드물다. <북극성>은 만든 지 오래되고 공연에서도 자주 불렀던 노래지만 앨범 수록 탈락의 고비를 넘겼다. 9의 회고. “심플하고 록적인 요소가 많은 노래인데 앨범에 넣으니 재미가 없었어요. 별짓을 다 했거든요. 디스코로도 해보고 (웃음) 편안하게 가보자 해서 어쿠스틱으로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나온 거죠.” 3이 덧붙인다. “<북극성>은 이런 노래죠. 산에서 산적이 내려왔는데, 그 산적을 면도시키고 씻겨서 정장을 입혔더니 댄디보이가 됐더라.(웃음)”

[나도 정말 너의 친구가 되고 싶었어 나도 정말 니 옆자리에 앉고 싶었어 – <북극성>]

이번 <커튼콜> 뮤직비디오에는 팬들이 등장한다. 함께 불꽃놀이를 하는 장면이다. 팬들에 대한 애정 공세(?),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기로 유명하다. 3은 “저희가 팬들과 함께하는 공연 등을 기획하는 것을 보고 너무 많은 노고를 들인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9는 고마움을 이렇게 표시했다. “저희한테 관심을 주는 몇백, 몇십 명의 사람들이 다른 가수 팬 1만 명의 몫을 해주세요. 그게 큰 동력이 되죠.” 0은 “제가 팬 입장이라면 공연은 즐길거리가 어우러진 문화잖아요. 청각적인 만족뿐 아니라 뭔가 새로운 어울릴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라고 말했다.

팬들에 ‘대한’ 대단한 애정 공세(?)

조금은 곤란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2집 앨범의 13곡 중 가장 좋다고 여기는 곡이 무엇인지 물었다. 4는 <한강의 기적>과 <창세기>.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을 듣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작업한 곡이 아니기도 하고.(웃음)” 3은 이 노래다. “<톱니바퀴>요. 이런 질문에 고민이 진짜 많이 되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그 노래가 가장 소외되기 쉬운 트랙인 것 같아요. 라이브에서 어느 타임에 끼워넣어야 할지 애매한 노래라 연주하기 어려워요. 정말 열심히 만들었는데. 공연에 오셔서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0은 <보물섬>을 꼽았다. “9와 숫자들 작업에서 가장 완벽한 트랙인 것 같아요. 타협 같은 게 없었던 곡 같기도 하고.” 9는 당당하게 타이틀곡 <숨바꼭질>을 꼽았다. “그게 오히려 묻히고 있어요. 그게 노총각·노처녀를 위한 노래거든요. 노래 가사에 ‘서른, 마흔 넘어도’가 그 뜻인데.(웃음)”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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