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연구자들
80년대 근대적 사유체계로부터의 탈주를 주장하는 현장비평가 고미숙씨
현장비평가 혹은 문학연구자로서 ‘반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이 있다. 고전문학연구가 고미숙씨는 리얼리즘, 민족문학 등 근대의 패러다임을 모두 폐기처분해야 한다며 문학의 경계를 넘어 인문학·역사학 등을 폭넓게 겨냥한 주장을 전면적으로 펼치고 있고, 문학평론가 권성우씨는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문학동네 등 이른바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작업을 세차게 벌이고 있다. 귀 기울일 만한 이들의 작업실을 각각 찾아가본다. 편집자
제도권 안에 갇힌 상아탑이 아닌 대안 대학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를 이끄는 고미숙(41)씨가 민족문학의 폐기를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리얼리즘, 근대, 전형성 등과 고립되어 존재하는 민족문학이란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새로운 담론의 창출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 가운데 어떤 건 버리고, 어떤 건 잘 살리는 식으로 해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 리얼리즘이나 민족문학이라는 표상들은 ‘도’로 승격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놓아두고 가야 할 ‘뗏목’이 아닐지.” 근대·민족·문학의 삼위일체 최근 나온 <사회와 철학2―한국사회와 모더니티>(사회와 철학 연구회 지음, 이학사 펴냄, 1만5천원)에 실은 논문 ‘근대 계몽기, 그 이중적 역설의 공간’의 프롤로그 부분이다. 왜 민족문학을 폐기해야 하나? “90년대 이후 민족주의 비판이 많이 나왔으나 민족주의의 보완 차원일 뿐 성과가 없어요.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려면 부분적으로 손보는 게 아니라 심층에서의 전복이 필요한 거지요.” 리얼리즘은 무슨 죄가 있을까? “전형적 현실의 전형적 재현, 그래서 민중성 혹은 계급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개념은 모더니티의 동일성의 논리와 똑같습니다. 이건 외부를 배제하고 늘 논의를 처음으로 되돌리고 말아요. 리얼리즘론에 입각해 고전문학을 연구하면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걸 절감하게 됩니다. 아주 적나라한 게 원시시대부터 동일한 척도를 적용하는 북한의 문학사일 겁니다. 근대를 지향하는 시각, 근대의 요소를 이곳저곳에서 찾아내려는 태도는 이쪽도 마찬가지예요. 예컨대 연암 박지원의 글은 문학도, 철학도, 역사도 아닌데 문학으로, 근대주의로 절단해 들어가면 다른 게 모두 사장되면서 텍스트가 아주 앙상해져요. 그래서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죠. 민족문학이나 리얼리즘이 일시적 척도였는데 어느 순간 역사 전체를 재단하는 기준이 되어 다른 것들을 배제하고 봉쇄해온 게 아닐까, 하고.” 결국 논의는 근대로 귀착된다. 그는 “근대/민족/문학의 삼위일체가 모든 개별 연구들을 통어해왔다”며 이른바 80년대적 사유방식 전체를 버려야 할 것들로 규정짓는다. 그 자신 역시 ‘80년대의 자식’이라 할 만큼 마르크스주의 세례를 듬뿍 받은 연구자임에도 이런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연암 박지원에 대한 연구가 그렇듯 근대의 사유체계가 사상과 상상력의 부자유를 일방적으로 강요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완의 근대라는 구호 아래 모든 역사와 글쓰기와 사상을 근대로 향하게 만들고, 이를 위해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억지춘향식 논리를 만들어내고…. 논문에서 그는 단언한다. “근대는 전적으로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번개처럼’ 느닷없이 도래한 것일 뿐, 내적 준비, 연속성 따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근대의 바깥에서 사유하기
고씨가 이런 주장의 논거들을 찾아낸 곳이 19세기 말에서 1910년 한·일 병탄에 이르는 불과 15년 정도의 짧은 시기인 근대계몽기다. 리얼리즘, 민족문학 등의 표상을 버려야 새로운 사유가 가능하다는 주장과 그 근거를 하필 근대계몽기에서 찾는 이유,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조선 후기와 근대가 이어진다는 내재적 발전론을 비판해야 하는 이유 등의 논의를 좀더 일관되게 이해하려면 논문보다 조금 앞서 나온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민족·섹슈얼리티·병리학>(책세상 펴냄, 4900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근대 계몽기를 푸코처럼 계보학적으로 따져본다. 그 결과 이 시기가 “다양한 차원에서 근대성을 전복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자체 안에 내장하고 있는 연대”임을 드러내준다. 예컨대 그는 실학파라는 명명이 가능한지에 회의적이다. 조선 후기 지식인 그룹을 실학파라는 유형으로 절단함과 동시에 그들의 텍스트 속에서 민족의식의 맹아들을 다양하게 채취하려고 하지만,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근대적 민족주의와는 아주 다른 진경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소중화주의에서 탈피하려는 연암 박지원, 지식의 경계를 우주 곧 천지만물로 삼았던 최한기 등을 근대계몽기 민족 담론과 비교해보면 연속성보다 불연속적 간극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민족 담론의 폐악은, 20세기 이후의 파행적인 현상을 모두 식민지로 인한 왜곡·굴절이라는 식의 편의적 논법으로 바라보는 데서 찾아지기도 한다. 민비·고종·대원군 등 19세기 조선 지배층에 대한 미화,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과잉해석 등의 문제가 그렇다. 또 ‘한’을 20세기 초 느닷없이 역사 전체로 증폭시킨 탯줄 역시 민족 담론이다. 고전 문학을 지배하는 미적 특이성은 ‘한’이라기보다는 유머와 낙천성임을 여러 문헌으로 보여준 뒤 “상처에 대한 과장, 우연과 비약을 통한 만남과 관계의 어긋남, 별리와 부재를 통해서만이 사랑의 강렬도를 확인하는 방식은, 민족이라는 ‘텅 빈’ 기호를 ‘한’이라는 과잉 정서를 통해 메우려는 오래된 습속과 동형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이런 연구를 통해 고씨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미완의 근대가 아니라 근대의 바깥에서 사유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다. “어떤 사람도 무중력 상태에서 사유하고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주체들은 이미 견고하게 짜여진 틀 위에서 사유하고 기억하도록 ‘코드화’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시도해야 할 것들은 이러한 기억들의 배치를 변환하는 것. 그리하여 상상의 가능성을 최대한 증식하는 것이다.”
학문과 생활을 연결하는 공동체
이른바 들뢰즈적 사유방식인데 그는 이걸 글쓰기와 연구방식, 생활방식으로 넓혀가는 중이다. 한달 전쯤 서울 대학로에 자리잡은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에 식당, 뒤풀이 장소, 세미나실 등으로 쓸 수 있는 깔끔한 카페가 만들어졌다. 연구원, 회원들이 스스로 쌀과 반찬을 마련해 먹으며 공부하는 밥상 공동체를 자연스레 만들더니 일반인도 1천원이면 커피 한잔을, 2천원이면 맥주 한병을 마실 수 있는 공간 마련으로 이어졌다. 후원회 제도가 있는 아니고 특별히 수익사업을 벌이는 것도 아닌데 월 600만원이 넘는 유지비용을 ‘쉽게’ 충당하고도 이런 공간을 만들어내는 공동체를 지켜보면서 이제 고씨는 상쾌한 도시 외곽에서 연구와 집필과 휴식을 함께 취할 수 있는 또다른 네트워크 공간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도시와 절연되지 않으면서 지식뿐 아니라 삶을 재조직화할 수 있는” 공동체 공간!
“근대 이후가 우리에게 남겨준 건 돈밖에 없지 않나요? 정신의 거처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삶뿐이잖아요. (근대 바깥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면 많은 것들이 가능해질 수 있어요.”
그는 근대가 정신과 지식뿐 아니라 신체에 새겨놓은 특정한 배치를 모조리 바꾸려 ‘혁명’중이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리얼리즘, 근대, 전형성 등과 고립되어 존재하는 민족문학이란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새로운 담론의 창출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 가운데 어떤 건 버리고, 어떤 건 잘 살리는 식으로 해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 리얼리즘이나 민족문학이라는 표상들은 ‘도’로 승격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놓아두고 가야 할 ‘뗏목’이 아닐지.” 근대·민족·문학의 삼위일체 최근 나온 <사회와 철학2―한국사회와 모더니티>(사회와 철학 연구회 지음, 이학사 펴냄, 1만5천원)에 실은 논문 ‘근대 계몽기, 그 이중적 역설의 공간’의 프롤로그 부분이다. 왜 민족문학을 폐기해야 하나? “90년대 이후 민족주의 비판이 많이 나왔으나 민족주의의 보완 차원일 뿐 성과가 없어요.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려면 부분적으로 손보는 게 아니라 심층에서의 전복이 필요한 거지요.” 리얼리즘은 무슨 죄가 있을까? “전형적 현실의 전형적 재현, 그래서 민중성 혹은 계급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개념은 모더니티의 동일성의 논리와 똑같습니다. 이건 외부를 배제하고 늘 논의를 처음으로 되돌리고 말아요. 리얼리즘론에 입각해 고전문학을 연구하면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걸 절감하게 됩니다. 아주 적나라한 게 원시시대부터 동일한 척도를 적용하는 북한의 문학사일 겁니다. 근대를 지향하는 시각, 근대의 요소를 이곳저곳에서 찾아내려는 태도는 이쪽도 마찬가지예요. 예컨대 연암 박지원의 글은 문학도, 철학도, 역사도 아닌데 문학으로, 근대주의로 절단해 들어가면 다른 게 모두 사장되면서 텍스트가 아주 앙상해져요. 그래서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죠. 민족문학이나 리얼리즘이 일시적 척도였는데 어느 순간 역사 전체를 재단하는 기준이 되어 다른 것들을 배제하고 봉쇄해온 게 아닐까, 하고.” 결국 논의는 근대로 귀착된다. 그는 “근대/민족/문학의 삼위일체가 모든 개별 연구들을 통어해왔다”며 이른바 80년대적 사유방식 전체를 버려야 할 것들로 규정짓는다. 그 자신 역시 ‘80년대의 자식’이라 할 만큼 마르크스주의 세례를 듬뿍 받은 연구자임에도 이런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연암 박지원에 대한 연구가 그렇듯 근대의 사유체계가 사상과 상상력의 부자유를 일방적으로 강요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완의 근대라는 구호 아래 모든 역사와 글쓰기와 사상을 근대로 향하게 만들고, 이를 위해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억지춘향식 논리를 만들어내고…. 논문에서 그는 단언한다. “근대는 전적으로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번개처럼’ 느닷없이 도래한 것일 뿐, 내적 준비, 연속성 따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근대의 바깥에서 사유하기

사진/ (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