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연구자들
문단권력의 폐쇄성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권성우 교수의 험난한 여정
지난해부터 문단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문학권력 논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문학평론가 권성우(38·동덕여대 인문학부) 교수다. 그는 몇년 전부터 다양한 지면을 통해 우리 문단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문학과 사회>의 폐쇄성과 내부비판 부재를 비판해왔다. 올 가을에는 진보의 성역으로 여겨져오던 <창작과 비평>의 최근 행보를 진보권위주의라 이름붙이며 매섭게 비판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문단권력으로 부상한 <문학동네> 역시 그의 비판을 비껴가지 못했다.
<비평의 희망>이 나오기까지
최근 권씨는 비평집 <비평의 희망>(문학동네 펴냄)을 상재했다. 저자에 의하면 이 책은 <비평의 매혹>과 <비평과 권력>(소명출판 펴냄, 2001)에 이은 삼부작의 완결편이다. “비평에 대한 순정한 매혹에서 출발했던” 그의 글쓰기가 <비평의 매혹>이었다면 “비평과 권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인식을 통해 비평의 위기와 정면으로 대결”한 그의 궤적은 <비평과 권력>에 녹아 있다. 그리고 “이제 비평의 절망을, 비평의 위기를 통과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새로운 비평의 희망을 얘기하고자”는 <비평의 희망>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주로 해온 메타비평(비평에 대한 비평)과 함께, 현장 리뷰, 비평적 에세이 등을 고루 담고 있는 이 책은 문학의 본질이나 운명, 진로에 대한 그의 사유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 보인다. <비평의 희망>은 그와 ‘어색한’ 사이인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6년 전에 문학동네와 비평집을 내기로 약속이 돼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동안 벌어진 거리 때문에, 그리고 사실 미묘한 시점이라 출간이 부담스럽기도 했죠. 그러나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면서 책을 내게 된 이번 작업은 제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적과의 동침’을 연상케 하는 이번 출간과 “비판적 글쓰기나 문학 논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글쓰기를 좀더 다양화하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매혹으로의 회귀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 수록된 두개의 글 ‘4·19세대 비평이 마주한 어떤 풍경’과 ‘신세대문학에 대한 비평가의 대화’는 현재진행형으로서의 문학권력 비판에 대한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 가운데 후자는 그가 비판적 글쓰기의 전위에 나서게 된 구체적 계기가 된 글이다. 97년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수록됐던 이 대담에서 그는 문학과 지성사가 주목하는 작가들을 비판했다. <문학과 사회>는 바로 다음호에 해당작가들을 재인터뷰해 실었다. “사실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죠. 이 과정을 보면서 자사출판물에 대한 긍정일변도의 비판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 다음호에는 권오룡 교수의 익명비판글이 실렸는데 명백히 저를 겨냥한 것이었죠. ‘자객의 글쓰기’라는 인신공격적 표현까지 쓰면서 내부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문지의 폐쇄성이 정말 심각한 수준이구나 느끼면서 논쟁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흥미로운 것은 권씨가 첫 비평집을 문학과 지성사에서 발간하면서 이른바 ‘문지3세대’로 촉망받던 비평가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문지에 주는 상처만큼 그 역시 작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은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지요. 비판이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렇지만 상처의 체험 역시 저를 단련시키는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강준만씨와의 기이한 연대?
‘4·19세대 비평이 마주한 어떤 풍경’은 지난해 열렸던 김현 10주기 심포지엄에서 그가 발표했던 내용으로 ‘세대론적 인정투쟁’이라는 잣대를 통해 4·19세대 비평의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4·19세대의 비평은 지금까지 칭찬과 호평 일색의 지지를 받아왔죠. 이를테면 반세기 동안 영향력을 행사한 문학권력인 셈이죠. 저 역시 그들의 업적을 인정하지만 이제는 공과 과를 한번 짚어봐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심포지엄 자리에서 많은 선배와 동료들로부터 감정섞인 질문을 “당황스러울 만큼” 많이 받아야 했다. 그는 심포지엄이 끝난 뒤 진행된 ‘김현 추모의 밤’에서 막막한 심정으로 자리를 나와야 했던 당시의 씁쓸한 경험을 글에서 고백하기도 했다.
권씨가 해온 문단비판의 전방위성이나 그 강도에서 비견될 만한 인물은 <인물과 사상>의 강준만씨일 것이다. 이력이나 기질에서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그리고 아무런 인간적 관계도 없는 두 사람의 ‘기이한’ 연대는 자못 흥미롭다. 두 사람 사이에는 한 차례 논쟁이 있었다. 권성우씨의 문학권력 비판에 대해서 올 봄 강준만씨가 ‘비판지상주의’라는 비판으로 포문을 열자 권씨는 비판적 글쓰기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로 강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에 대해서 강씨는 다시 장문의 재반론을 폈고, 권씨는 이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이 논쟁은 문학권력을 둘러싼 공방이 인신공격성 발언을 동원한 ‘찍어누르기’식 반박이 아니라 생산적 대화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드문 예다. 권씨는 “강준만씨는 나를 성찰하도록 자극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라며 “논쟁을 통해 나의 한계도 많이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강씨로부터 비판당했던 많은 지식인들이 무시나 욕설에 가까운 비판으로 응대했던 것에 비하면 그의 태도는 놀라울 만큼 유연한 것이다. “강준만식 글쓰기에 장점은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비판해나가면서 자기갱신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문단권력 논쟁을 비롯해 한동안 지식인 논쟁이 밀물처럼 쓸고 지나간 요즘 그가 느끼는 것은 일종의 황폐함이다. “지식인사회가 비판에 너무 허약해요. 편가르기다, 폭력이다 하면서 조선일보가 제기했던 위기의 지식인사회도 결국 감정적 대응만 있을 뿐이지 소신있는 반론을 내놓지 못하는 지식인사회의 황폐함을 뒤집어 드러내준 꼴입니다.” 이전과 달리 논쟁이 오가면서도 함께 어울리던 문인들 사이 역시 이제 사적인 울타리로 금이 갈리는 요즘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착잡해진다. 그러나 “논쟁이 발전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진통 역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단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비판적 글쓰기는 언제나 열린 대화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로 마무리된다. 문자 그대로 해석했을 때 그의 작업은 눈에 보일 만한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가 비판했던 어떤 그룹도 자기성찰의 강고한 의지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논쟁을 통해 생산적 대화가 얼마나 힘든가를 절감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권씨를 비롯한 비평가들의 싸움이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최근 들어 자사 출판물에 이뤄지던 주례사식 비평의 관행에 대한 경계의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는 성과다. “비판적 글쓰기가 실명비판 중심이기 때문에 온건하게 대화가 진행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 문단의 문제점이 좀더 투명하게 드러난다면 그 자체로 생산적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논의의 초점을 문제에 대한 인식의 확산이라는 면에서 좀더 깊이 천착해들어갈 생각입니다.”
“당분간 휴전에 들어갑니다”
그는 당분간 글전쟁과의 휴전에 들어갈 생각이다. 문학비평에만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글쓰기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에세이 같은 변두리 장르의 좋은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단지 문학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깊이있는 사유를 보여주는 에세이를 썼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문학권력과의 싸움을 접겠다는 말은 아니다. 4·19세대 비평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심화된 연구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스물네살, 홍안의 나이로 그가 빠졌던 비평의 매혹과 그 이후 짊어져야 했던 문학권력의 비판,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공명할 비평의 희망을 모색하며 그는 이제 중년의 채비를 하고 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최근 권씨는 비평집 <비평의 희망>(문학동네 펴냄)을 상재했다. 저자에 의하면 이 책은 <비평의 매혹>과 <비평과 권력>(소명출판 펴냄, 2001)에 이은 삼부작의 완결편이다. “비평에 대한 순정한 매혹에서 출발했던” 그의 글쓰기가 <비평의 매혹>이었다면 “비평과 권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인식을 통해 비평의 위기와 정면으로 대결”한 그의 궤적은 <비평과 권력>에 녹아 있다. 그리고 “이제 비평의 절망을, 비평의 위기를 통과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새로운 비평의 희망을 얘기하고자”는 <비평의 희망>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주로 해온 메타비평(비평에 대한 비평)과 함께, 현장 리뷰, 비평적 에세이 등을 고루 담고 있는 이 책은 문학의 본질이나 운명, 진로에 대한 그의 사유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 보인다. <비평의 희망>은 그와 ‘어색한’ 사이인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6년 전에 문학동네와 비평집을 내기로 약속이 돼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동안 벌어진 거리 때문에, 그리고 사실 미묘한 시점이라 출간이 부담스럽기도 했죠. 그러나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면서 책을 내게 된 이번 작업은 제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적과의 동침’을 연상케 하는 이번 출간과 “비판적 글쓰기나 문학 논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글쓰기를 좀더 다양화하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매혹으로의 회귀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 수록된 두개의 글 ‘4·19세대 비평이 마주한 어떤 풍경’과 ‘신세대문학에 대한 비평가의 대화’는 현재진행형으로서의 문학권력 비판에 대한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 가운데 후자는 그가 비판적 글쓰기의 전위에 나서게 된 구체적 계기가 된 글이다. 97년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수록됐던 이 대담에서 그는 문학과 지성사가 주목하는 작가들을 비판했다. <문학과 사회>는 바로 다음호에 해당작가들을 재인터뷰해 실었다. “사실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죠. 이 과정을 보면서 자사출판물에 대한 긍정일변도의 비판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 다음호에는 권오룡 교수의 익명비판글이 실렸는데 명백히 저를 겨냥한 것이었죠. ‘자객의 글쓰기’라는 인신공격적 표현까지 쓰면서 내부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문지의 폐쇄성이 정말 심각한 수준이구나 느끼면서 논쟁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흥미로운 것은 권씨가 첫 비평집을 문학과 지성사에서 발간하면서 이른바 ‘문지3세대’로 촉망받던 비평가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문지에 주는 상처만큼 그 역시 작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은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지요. 비판이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렇지만 상처의 체험 역시 저를 단련시키는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강준만씨와의 기이한 연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