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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궁궐을 일으키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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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1-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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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복원공사 대목장 신응수, 다음엔 광화문을 벼른다

사진/ 경복궁 복원공사에서 그는 도편수를 맡았다. 전체 건축과정을 감독하는 직책이다.
가을 오후 아름다운 햇살이 흥례문 지붕 안을 끝까지 비치고 있었다. 견학 나온 초등학교 아이들의 목소리가 궁 안에 넘쳐나고 있었다. 야외촬영 나온 신부는 드레스를 행여 밟을라 두둥실 쳐들고 꽃다운 문 앞을 지나고 있었다. 이곳이 정녕 한때 서러운 역사의 비바람이 휩쓸었던 자리였나. 오만하고 차디찬 돌 건물이 밀려난 자리에 다시 선 목조건축물은 자랑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도편수 신응수(60)씨를 만났다. 궁궐 건축 대목장인 그는 경복궁 공사를 총괄하는 게 자랑스러울 것이다.

불국사, 창경궁, 수원성, 하회마을…

“허허, 그렇지요.” 그는 늘 해오는 일인 듯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궁궐 짓기가 어언 40년이다. “저 광화문도 어서 다시 해야 합니다. 콘크리트로 지어놓은 것이 여간 보기 싫지가 않아요.” 그가 안쓰럽게 광화문을 가리킨다. 퇴색한 단청 빛이며 시커먼 콘크리트 벽이 애잔해 보인다. “광화문의 방향을 다시 잡아놓아야지요.” 그가 힘주어 말한다. 일제가 총독부를 지으면서 관악산을 향해 일직선(근정전-흥례문-광화문)을 이루고 있던 왕실의 시선을 틀어버렸기 때문이다. “왕의 침전과 각각의 궁을 하나씩 세울 때마다 옛날 왕의 권위가 살아나오는 듯합니다. 당시 고종이 기울어가는 왕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싶기도 하고…. 총독부건물이 있을 당시 우리나라는 권위가 안 섰지요. 지금 이렇게 해놓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신응수씨의 역사성은 그의 손에서 우러난 것이다. 그는 역사를 손으로 만져온 사람이다. 불국사, 창경궁, 수원성, 안압지, 상춘재, 한국의 집, 오대산 월정사, 단양 구인사, 무량사, 안동 하회마을 전통가옥…. 그의 손을 거친 궁궐과 사찰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그나마 남은 공사는 또 얼마나 많은가. 현재 창덕궁 공사도 함께 진행중이다. 경복궁 공사도 앞으로 10년은 더 공을 들여야 할 만큼 귀하고 값진 일이다.

그는 대목장이다. 궁궐이나 사찰, 가옥을 짓는 목수를 일컫는 말이다. 나라에서는 이 기능을 높이 사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준다. 조선 초기 남대문을 건설한 대목장 중에는 정5품 벼슬을 받은 이도 있을 정도였다.

이번 경복궁 복원공사에서도 그는 도편수를 맡았다. 전체 건축과정을 감독하는 직책이다. 그는 10년 전에 대목장으로 선정되었고 도편수가 된 지는 이미 훨씬 전의 일이다. 그의 궁궐목수로서의 맥은 조선시대 최고의 목수로부터 전수돼오는 것이다. 흥선대원군 당시 경복궁 중건을 맡았던 도편수 최원식, 그의 수제자 조원재, 그리고 대목 이광규, 그 다음이 신응수씨이다.

그는 옛 시대의 장인들에 대한 존경을 감추지 않는다. “궁궐은 정말 궁궐다워요. 궁궐은 어느 곳 하나 흠이 없어요. 역시 최고의 장인들 솜씨답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한 손이 얼마나 세심한지…. 근정전 공사중에 보면 그 큰 나무를 옛날이니 손으로 켜서 했는데 말이지요. 대충대충한 게 하나도 없어요. 사찰도 그에 못 미쳐요. 제가 해체해본 어느 지방의 사찰은 아주 오래고 귀한 건물인데도 실수투성이인데다가 함부로 손을 본 데가 많았어요. 이런 것도 제겐 또다른 배움이지요. 해체작업을 하면서 지금도 많이 배웁니다. 이런 기회를 가진다는 게 큰 행운이지요.”

집 짓기보다 어려운 나무 구하기

사진/ 역사의 칼날에 베이고 쓰러진 궁궐들이 그의 손을 빌려 일어서고 있다. 흥례문을 배경으로 선 그가 나무를 닮아 있다.
그의 눈길은 부드러운 듯 날카롭다. 나무의 안을 들여다보는 시선이지만 한치의 어림수도 허용되지 않을 성싶다. 그에게 흥례문 옆으로 길게 지어진 회랑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달라고 했다. “회랑은 뭐….” 혼잣말 삼아 하면서도 벌써 그의 발길은 회랑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냥 서서 바라볼 뿐 말이 없다. 말은 목수의 몫이 아니라는 표정이다. 목수는 건물로 이야기 하나보다. 고즈넉한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굳건한 회랑의 나무기둥이 그 옛날 이 자리에 섰을 만조백관처럼 열을 지어 서 있다.

“전부 우리 소나무로 만든 겁니다.” 그가 문득 쾌활하게 말을 시작한다. “우리 소나무가 참 좋아요. 소나무 숲에 들어가면 쭉쭉 곧은 나무가 얼마나 좋은지….” 나무얘기를 하는 모습이 마치 귀한 자식 얘기하듯 한다. 이제 11월부터 그는 나무 철을 맞아 더욱 바빠질 것이다. 여름 내내 수액을 빨아들이며 자랐을 나무가 가을이 되면서 성장을 멈추고 결을 단단하게 다지기 시작하니 목재로 쓸 나무 베기에 적기라는 것이다. 그는 주로 소나무를 구하러 강원도로 내려간다. “영동지방 나무가 좋아요. 영서지방에서는 나무가 잘 자라요. 땅이 좋아서 그런지 나무들이 빨리 컸어요. 그래서 오래 가는 데는 별로지요. 좋은 적송은 200년 혹은 250년 정도 되는 것들이 좋지요.” 그는 나무를 보기만 하여도 그 쓰임새가 머릿속에서 맞춰진다.

“나무를 구하러 다니는 게 집 짓기보다 어려운 일이에요. 누가 경복궁 짓는다고 산을 하나 내주는 것도 아니니 알아서 구해야지요.” 좋은 소나무를 찾아 깊고 높은 산에 들어가다보면 얽히고 설킨 산철쭉에 발이 걸리고 보이지 않은 바위에 정강이가 패기 일쑤다. 몇 시간씩 산을 타고 오르기도 한다. 소나무숲 근처에 아예 움막을 짓고 살기도 했다. 그가 구해서 다듬고 세워놓은 회랑의 기둥을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지금은 칠을 해서 그런데, 나무색을 그대로 보면 더 좋지요. 이렇게 큰 나무가 숲에 있을 땐 얼마나 크겠어요. 밑둥이며 가지까지 있으면 참 대단하지요. 그런 것을 베어내자면 마음이 좀 안됐어요. 수령이 몇 백살인 것도 있는데. 그나마 궁으로 가는 것이니 좀 위안이 되지요. 궁궐에 가면 영원히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갑자기 그의 앞으로 카메라가 들어왔다. “아, 잠깐이면 됩니다.” 모 방송의 프로그램 제작팀이었다. 경복궁 복원공사를 맡은 지 십여년 동안 그는 뉴스의 초점이 되어왔다. 이번 흥례문 낙성식 뒤에도 그는 여러 군데서 인터뷰 요청을 받고 있었다. 등 너머로 그들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그에 대한 공부를 다시 했다. 수원성 공사는 몇년에 하셨나요? “그게 1975년이지요.” 그가 처음으로 도편수에 올라 맡은 공사였다. 이번에는 그가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증서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현재 기능인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전국에 통틀어 2600여명 정도의 회원이 있다.

때마침 그 회원 중 한 사람이며 이번 경복궁 공사에서 기와부분을 맡은 와장 이근복(52)씨가 옆에 와 있었다. 그가 기와 일을 한 지는 25년. 어렸을 적에 동네에 있었던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살고 싶어서 기와 일을 하게 되었단다. “기와도 마찬가지로 몇 백년을 지탱해나가야 하는 거지요. 저도 경복궁 공사 이전에 남대문, 돈화문 등 궁궐공사를 많이 했지요. 제가 한 공사가 완벽하고 누구 것보다 오래 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일을 합니다.” 지붕에 올라서 해야 하는 기와 일은 비가 와도 못하고 날씨가 추워도 못하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공에서는 문명의 혜택을 별로 못 받는단다. 그는 신응수 회장을 필두로 궁궐공사의 모든 분야에서 최고수들이 모여 벌이는 이 역사에 참여한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죽을 때까지 배우는 자세로

신응수씨는 충북 청원군에서 중학을 마쳤다. 총명한 시골소년이 열일곱에 상경해 목수 일을 시작했을 때 그에게 궁궐목수로서의 운명에 대한 어떤 예감 같은 게 있었을까? “그런 거 없었어요. 하다보니까 이렇게 된 거지요. 사실 제가 운을 잘 타고난 거지요. 이 일이야 내가 없었어도 누군가 꼭 해야 했을 일인데 제가 하게 되었으니….” 그러나 그의 평생다짐은 매섭기조차 하다. “내가 여기까지 올라왔으니까 이만하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으로 끝이지요.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가르쳐주는 것만 알려고 하지 말고 지나가면서도 보고, 자기가 응용해서 앞서가도록 해야 발전하는 것이지요.”

궁궐은 물론 전국의 중요문화재와 사찰을 손수 다듬고 지어온 그는 과연 어디에 사는가? “허허,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그는 부인이 ‘도마 하나 안 갖다주는 남편’이라고 한다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나라 궁궐 짓느라 그는 아직 자신의 집 짓기에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흥례문을 배경으로 선 그가 나무를 닮아 있다. 끄떡없이 한결같은 나무. 역사의 칼날에 베이고 쓰러진 궁궐들이 그의 손을 빌려 일어서고 있다. 신응수, 그는 역사를 일으키는 사람이다.

글·사진 - 권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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