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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모른 척’과 타협하다

한나 아렌트 이전에 ‘악의 평범성’을 드러낸 밀턴 마이어의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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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5 15:33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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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정확해야 맞는 답을 얻을 수 있다. 반세기가 지나면서 우리는 나치는, 파시즘은, 독재는,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얻어냈을까 의아해지곤 한다.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광기에 휘말리는 원인이 따로 있다는 착각을 버리면 이렇게 묻게 된다. 왜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은 독재정권의 탄생을 모른 척할까?

잠깐 망설이다 침묵했을 뿐

스스로를 ‘작은 자’라고 부른 이들은 실제 나치당 강령을 읽어본 일도 없고 유대인들이 어디로 끌려갔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밀턴 마이어는 이 선량한 친구들이 “충분히 생각 하지 않았”기에 유죄라고 말한다. 나치 전범 재판 장면. 사람과사람 출판사 제공
책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밀턴 마이어 지음, 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는 독일 크로넨베르크라는 작은 마을에 살았던 전직 나치당원 10명의 이야기를 적은 책이다. 재단사, 빵집 주인, 소방대원, 교사 등 평범한 직업을 가진 주민들은 스스로를 ‘작은 자’라고 부른다. 전체주의 치하에서도 작은 삶을 지속했던 이들은 버젓하고 근면하고 보통 정도의 지능과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나치즘 강령과 실천 중엔 민주적인 구석도 있음을 알 수 있고, 만약 나치즘이 지나치다면 자신이 막거나 거리를 둘 수도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실제 당 강령을 한 번도 읽어본 일이 없으며 유대인들이 어디로 끌려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정말 몰랐다고 진술한다. 어떻게 모를 수 있었을까? 처음엔 거리에서 유대인 친구를 못 본 척하는 정도로 동네 분위기를 거스르지 않았다. 나중엔 동네 유대교 회당이 불탈 때 대부분 모른 척하는 쪽을 택했다. 이미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모른 척’과 타협했다는 걸 알았을 땐 불평이나 항의를 입에 올려 러시아 전선에 끌려가거나 적극 가담할 정도의 자유밖엔 없었다.

책은 “제3제국에 진정한 광신자가 있었다고 한들 그 숫자는 절대 100만 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나머지 7천만 명의 독일인들은, 전체주의라는 그 기계에서는 톱니바퀴조차 되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저 안전한 공동체 속에서 소문만을 들었고 잠깐 망설이다 침묵했을 뿐이다. “나치가 공산주의를 공격했을 때 약간 불편하기는 했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고, 학교·언론·유대인을 공격할 때마다 더 불편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니묄러 목사의 말 그대로다. “그들이 내게 왔을 때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마르틴 니묄러, <그들이 처음 왔을 때>)는 것이다.

책의 ‘작은 자’들은 “워낙 많은 일이 벌어져서 생각할 시간이 없었노라”고 돌아본다. 미국에서 태어난 유대인 작가 밀턴 마이어는 이들을 1년 동안 인터뷰하며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선량한 친구들이 “국가라는 바퀴 속에서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유죄라고 믿는다. 한나 아렌트가 1963년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생각하지 않는 죄’를 물었던 바로 그 맥락이다.

“내가 그때 충성 맹세를 거부했더라면”


니묄러의 시를 소개함은 물론,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나오기 10년 전에 이미 평범한 악인들의 속살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고전이다. “내가 그때 충성 맹세를 거부했더라면….” 책에서 전쟁이 끝난 뒤 한 지식인은 뒤늦은 부끄러움에 짓눌리며 이렇게 한탄한다. “내가 저항할 채비가 되어 있었다면 나와 같은 사람 수천~수만 명도 그랬을 거고 독재정권은 전복되거나 아예 권력을 장악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는 고전의 가르침은 지금도 되새길 만하다.

남은주 <한겨레>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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