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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책/ 번역으로 근대의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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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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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 일본의 저력, 밑바탕에는 서구문물을 창조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번역의 힘이

(사진/번역과 일본의 근대 마루야마 마사오, 가토 슈이치 지음·임성모 옮김 이산(02-334-2847) 펴냄, 1만원)
한자는 뜻글자다. 이 특징은 한자가 다른 나라 글자들과 가장 비교되는 성질이다. 적어도 이 뜻글자의 힘은 우리에게 아주 매력적이다. 가령 새로운 외국말 단어가 있을 때 이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과 한자로 옮기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영어 ‘새털라이트’를 인공위성이란 말로 번역하면 아주 간단하지만 사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쉽지가 않다. 이미 우리가 1천년 넘게 한자말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한자 번역이 훨씬 짧고 간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추상적인 어휘는 거의 대부분 한자어가 아니면 이제 표현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 한자어들은 현재 우리말 어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사실은 대부분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 만든 말들이 대부분이다. ‘사커’라는 영어를 중국은 ‘족구’(足球)라고 하지만 우리는 ‘축구’(蹴球)라고 한다. 물론 일본이 먼저 축구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가 기차(汽車)라고 부르는 영어 ‘트레인’의 한자말도 일본에서 만든 것을 우리가 받아들였다. 중국에서는 ‘화차’(火車)다.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개화하고 서구문물을 받아들임으로 해서 우리는 일본의 영향에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특히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이 언어부분에 있어서 일본의 영향은 극심하다. 대부분의 학술용어와 시사용어에서 일본은 중국보다도 훨씬 앞서서 외국어를 한자말로 번역해왔고, 일본산 한자어들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까지 지배하고 있다. 번역이 아닌 신조어 한자 역시 일본에서 만든 말들이 지금 동아시아로 계속 퍼지고 있다.

일본의 이런 번역능력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열강 일본의 저력을 만든 밑바탕이었다. 일본은 이미 1734년에 몽테스키외의 <로마 성쇠기>가 일본에서 번역됐을 정도로 일본은 다양한 서양의 책을 자국민들에게 소개하는 데 일찍부터 힘을 기울였다. 당시 중국이 중화사상에 사로잡혀 외국과의 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일본은 발빠른 대응으로 외국의 정보를 수집하고 나섰고, 그 가장 확실했던 방법이 서구의 책들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 가장 눈여겨볼 점은 외국의 문물을 좀더 정확하고 심도있게 체화하기 위해 일본 학자들이 주창했던 ‘번역주의’였다. 일본 학자들은 이 번역주의에 따라 가장 효과적으로 외국어를 옮기고 그 말을 정착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지금 일본의 1만엔권 지폐에 그려진 이 계몽사상가이자 일본의 명문사학 게이오의숙을 창설한 후쿠자와 유키치다. 이들 학자들이 중국 한자의 원래뜻에 근대적 의미를 덧붙여 만든 번역 한자어들은 일본사회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사진/고바야시 기요치카가 1883년경부터 산세이도 등에서 활판인쇄된 영일사전이 대중적으로 보급되던 세태를 그린 풍자화)
<번역과 일본의 근대>는 이처럼 번역을 외국어를 자국말로 만드는 재창조의 과정으로 여긴 일본의 번역역사를 일본의 대표적인 두 지성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가 문답식으로 고찰하는 이야기책이다. 도쿄대 마루야마 마사오 교수(1914~1996)는 전후 일본의 지성계를 이끌었던 대표적 학자다. 동서양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쾌한 분석으로 마루야마는 후배 학자인 가토 슈이치의 질문에 대답을 이어간다. 원래 외국어의 뜻을 한자로 옮기는 데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는지, 어떤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번역이란 딱딱해 보이는 주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동서양의 역사를 넘나들며 일본 근대화의 과정을 폭넓으면서도 간결하게 설명해준다. 특히 우리와 대비되는 일본의 근대화 시기의 다양한 읽을 거리들과 오늘날 일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물론 우리가 지금 쓰는 낱말들중 상당수가 우리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번역된 것이 아니라 옆나라 일본에서 수세기에 걸쳐 다듬은 말이라는 점은 사실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또 그런 일본의 ‘자랑’을 책으로 본다는 것이 기분좋을 구석은 별로 없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지금도 일본에서 번역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책들이 우리나라로 들어오고 있고,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은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은 우리 사회와 우리말의 현실에 대해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해보게 만든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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