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방>과 <나의 즐거운 일기>가 보여주는 좌파감독 난니 모레티의 영화세계
프랑스 평단, 특히 칸영화제가 극진히 사랑하는 이탈리아 난니 모레티 감독의 두 작품 <아들의 방>(2001)과 <나의 즐거운 일기>(1994)가 지난 11월3일과 5일 잇따라 개봉했다. 유럽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는 난니 모레티이지만 그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요즘 전국에 크게 풀고 한번에 크게 먹는 ‘대박주의’ 배급전략이 워낙 기승을 부리는 탓에 작가주의 영화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같은 고품질 국산품도 극장과 관객으로부터 외면받는 지경이니 외국 작품의 처지는 오죽하랴. 이런 엄혹한 시절에 낯설기만한 난니 모레티의 두 작품이 동시에 개봉하는 건 좀 특별하다. 아무래도 <아들의 방>이 올해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은 후광 덕이 크다.
좌파에도 비판의 칼날
마침 작가주의 영화를 주로 상영해온 서울 동숭아트센터의 하이퍼텍 나다가 <아들의 방> 개봉을 전후해서 난니 모레티 특별전을 열려고 준비해왔다. 하지만 뜻밖의 난관에 부딪혀 <나의 즐거운 일기>를 개봉하는 데 그쳤다. 이탈리아 문화원으로부터 “난니 모레티의 작품 판권이 워낙 복잡해 필름을 들여오기가 아주 곤란하다”며 “그는 이탈리아 안에서 제작비를 지원받은 경우가 거의 없고 프랑스 등 이탈리아 밖에서 자금을 구해 대부분의 영화를 만들어온 특이한 경우”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건 난니 모레티를 설명해주는 작은 사례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좌파감독이면서 시나리오, 제작, 주연, 연출 등을 도맡은 1인 시스템으로 작품을 맘대로 요리해왔다. 정치적으로 좌파임을 분명히 하지만 그렇다고 거친 선동을 일삼지는 않는다. 잽을 툭툭 던지는 듯한 코믹적인 전개에다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풍자를 담는다. 또 우파뿐 아니라 자신의 동료들을 향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운다. 20대 초반이던 1976년 공산당원이던 그가 68혁명 세대의 분노를 담은 첫 장편영화 <나는 자급자족한다>를 만들더니, 2년 뒤에는 좌파 중산층을 비판하는 <에체 봄보>를 만든 ‘전력’이 그렇다. <…일기>의 초반부에서 ‘한때 혁명의 정열로 타올랐지만 이젠 절망뿐’이라는 투로 투항하고 체념하는 장면을 내보이는 영화를 보면서 그는 두눈을 부릅뜨고 외친다. “너희는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정의를 외치면서 빛나는 40대를 맞이했단 말이다!”
지난 봄 칸영화제에서 가진 기자회견 때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속한 정치적, 사회적 성향을 담아 작품을 만드는 게 나의 영화세계가 되었다. 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내 자신이 포함된 좌파를 풍자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내 영화를 통해 나 자신을 비판하는 건 아주 자연스럽다.” 그의 이런 작품세계를 잘 요약해주는 건 <아들의 방>보다는 <…일기>쪽이다.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일기>는 모레티가 감독 자신의 모습으로 직접 출연해 독백으로 풀어가는 ‘영상일기 3부작’이다. 1부 ‘베스파’에서 그는 하얀 헬멧을 쓰고 스쿠터에 올라타 로마 시내를 둘러보며 코믹스럽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풀어놓는다. 여기서는 영화인으로서 영화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장면들이 재밌다. 이탈리아 후일담 영화의 맥빠진 정열에 한탄하더니 <헨리:연쇄살인범의 초상>을 보면서는 어떻게 이렇게 끔찍스런 영화가 높이 평가받았는지 평론가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한다. 아예 평론가를 찾아가 그럴듯한 수식어구로 가득 찬 평론을 읽어주며 실컷 조롱하는 상상장면이 절정이다. 이탈리아의 우디 앨런?
또 정치색 짙은 다큐멘터리를 자꾸 만들게 되지만 실은 뮤지컬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플래시댄스>가 자기 인생을 바꾸어놓았다는 ‘고백’을 꺼내놓는다. 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거리에서 <플래시댄스>의 주인공 제니퍼 빌스를 실제로(!) 만난다. 제니퍼 빌스의 남편은 다짜고짜 이런저런 말을 해대는 난니 모레티를 미친 놈 취급하고, 제니퍼 빌스는 그를 괴짜로 여긴다. 아마도 모레티 자신도 스스로를 푼수어린 괴짜로 규정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모레티가 최종적으로 기억하는 이는 파시즘과 우파에 대한 고발을 아주 치열하게 전개하다 숨진 파졸리니다. 그의 스쿠터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파졸리니가 사드를 빌려 파시스트의 광적인 가학증을 그린 <살로 소돔 120일>을 만든 뒤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 곳이다. 로셀리니, 펠리니 등으로 대변되는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과 파졸리니의 저항의식을 잇는 좌파감독답다.
2부 ‘섬들’은 텔레비전을 혐오하는 철학 교수인 친구와 동행해 여러 섬을 여행하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건 이 철학자가 텔레비전 중독증에 빠지게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94년에는 방송사를 소유한 언론재벌 베를루스코니의 우파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교수의 모순에 찬 우스꽝스러움으로 뭘 말하려는지 짚이는 대목이다.
3부 ‘의사들’에서는 실제로 임파선암에 걸린 모레티의 경험담이다. 처음 가려움 증세 때문에 고생하던 그는 유명하다는 피부과 의사들을 잇따라 찾아가지만 도무지 효험을 볼 수도 없고 먹는 약의 종류만 자꾸 늘어난다. 한의사까지 찾아간 끝에 힌트를 얻고 가려움증의 진짜 이유가 암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아, 의사들이여! 엉뚱하고 무책임한 처방으로 돈만 버는구나’라고 한탄하는 모레티의 음성을 듣는 듯하다.
지적이고 경쾌한 <…일기>의 매력이 어려운 건 아니다. 이탈리아의 우디 앨런이란 별칭이 적절해보이지만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볼 때보다 부담을 줄이고 주욱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아들의 방>은 더욱 쉬워 보인다. 내용부터가 아예 신파조다. 화목하기 그지없는 한 중산층 가정이 사랑스런 아들의 사고사로 위기를 맞지만 가까스로 기운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다. 따뜻한 감성이 잔잔히 흐르는 가족물이자 코믹스런 사회풍자와는 거리가 먼 비극이라는 점에서 이전 영화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나의 영화는 내 삶의 조각들”
역시 주연을 맡은 모레티는 정신상담의로 출연한다. 아들과 조깅 약속을 한 날에 환자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고 나간 사이 아들이 사고를 당한다. 당연히 자책이 든다. 환자의 고통과 정서에 공감하고 깊은 애정을 보이더니 점차 슬픔과 고통에 시달리며 환자 치료가 불가능한 처지에 빠져든다. 아내는 아내대로, 딸은 딸대로 고통스러워하지만 이들 셋의 사이는 예전처럼 다정스레 소통하는 사이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의 영화는 내 삶의 조각들이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보다 내 삶의 경험을 가장 많이 담고 있어 소중하다. 뜻하지 않은 슬픔이 사람들의 사이를 어떻게 멀어지게 만드는지를 알아보는 작업이다.”
상실감,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소통의 부재를 그린 이 영화에 대해 난니 모레티가 너무 빨리 늙는 게 아니냐는 우려어린 비판도 있지만, 상당수는 더욱 넉넉해진 그의 품을 반가워했다. 쉽고 단순하게 가는 연출은 더욱 도드라졌다. 프랑스의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최대한 단순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단순성은 그냥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절대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상당한 연구를 필요로 한다. 단순성은 자연스러움이나 즉흥성, 평범함과는 다른 것이다.”
단순성이 모레티의 후퇴인지 완숙함의 산물인지 두 영화를 비교해보면서 판단해보는 것도 유쾌한 일일 것 같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작품연보|나는 자급자족한다(1976년), 에체 봄보(1978년), 좋은 꿈 꿔(1981년), 비앙카(1983년), 미사는 끝났다(1985년), 팔롬벨라 로사(1989년), 나의 즐거운 일기(1994년), 4월(1998년), 아들의 방(2001년)
지난 봄 칸영화제에서 가진 기자회견 때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속한 정치적, 사회적 성향을 담아 작품을 만드는 게 나의 영화세계가 되었다. 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내 자신이 포함된 좌파를 풍자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내 영화를 통해 나 자신을 비판하는 건 아주 자연스럽다.” 그의 이런 작품세계를 잘 요약해주는 건 <아들의 방>보다는 <…일기>쪽이다.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일기>는 모레티가 감독 자신의 모습으로 직접 출연해 독백으로 풀어가는 ‘영상일기 3부작’이다. 1부 ‘베스파’에서 그는 하얀 헬멧을 쓰고 스쿠터에 올라타 로마 시내를 둘러보며 코믹스럽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풀어놓는다. 여기서는 영화인으로서 영화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장면들이 재밌다. 이탈리아 후일담 영화의 맥빠진 정열에 한탄하더니 <헨리:연쇄살인범의 초상>을 보면서는 어떻게 이렇게 끔찍스런 영화가 높이 평가받았는지 평론가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한다. 아예 평론가를 찾아가 그럴듯한 수식어구로 가득 찬 평론을 읽어주며 실컷 조롱하는 상상장면이 절정이다. 이탈리아의 우디 앨런?

사진/ <아들의 방>

사진/ <나의 즐거운 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