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해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죠. 사실 제가 먼저 나서서 사람을 만나는 성격이 못 돼요. 그런데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들려주면 말을 거는 것보다 가까워지는 계기가 돼요. 노래는 말로 하기 힘든 속마음이 드러나는 거니까 내 마음에 들어갔다 나가는 거잖아요.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잊지 마라/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인 것은 없다/ …다행히 어떤 계절이든 지나간단다/ 다시 돌아온다/ 모두가 알고 있다.” 이번 음반에 실린 노래 <당부>에서 그녀는 그렇게 당부한다. 모두 사라지는 것을 알지만 지나온 시간이 의미가 없지도 않다는 깨달음, 그녀의 말은 피아노 반주에 실려 듣는 우리를 위로한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예술은 이처럼 너에게 보내는 당부다.
마침 건너야 할 겨울을 앞둔 계절에, 하프 선율에 실린 그녀의 <겨울을 건너>는 이렇게 당부한다. “매일매일 겨울을 건너 새 계절로 간다…/ 그림자 없는 가벼운 옷을 찾아/ 차가운 공기 얼음의 강을 건너.” 힘겨운 하루를 보낸 친구에게 보낸 저녁 편지처럼, 그녀는 노래한다. 지친 어깨에 건네는 말은 흔한 유행가 가사가 아니다. “돌아서서 가보려 해도 길은/ 이미 한가운데”라는 처연한 현실을 그녀는 우리와 같이 본다. 굳이 힘내란 말을 하지 않아도 멀리서 그녀도 나와 같이 겨울을 건너고 있다는 위로가 된다.
=예전엔 어떤 내용으로 노래할까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어떤 방식으로 전할까를 고민했어요. 제가 기타도 치지 않고 편곡도 잘하시는 분들께 부탁했어요.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노래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갈증도 있었고요. 작곡은 순간의 영감으로 가능하지만, 편곡은 시인들이 시어를 조탁하듯이 오랜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더라고요.
시와는 “노래하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공연이 즐겁지만, 이번 공연은 판을 크게 벌여 은근히 부담된다”며 웃었다. 칠리뮤직 제공
-시와의 ‘새 계절’에 돌입한 셈이네요.
=네. 이번에 한번 던져봤어요. 음반에 실린 노래들이 제가 그렇게 하도록 한 것 같아요. 이런 변화가 앞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제게도 미지수예요.
-언젠가 ‘노래는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살면서 겪은 일이 가사에 담기니까요. 그렇게 노래로 드러내는 생각이 저에게 하는 당부이기도 하고요. 진짜 제가 다 안다기보다는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드는 거죠. 솔직히 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도 담겼으면 했어요. 마지막 트랙인 <나무의 말>에 “내게 편하게 기대, 나의 그림자에 누워”라는 가사가 있거든요. 누군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나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죠.
시와의 나무 같은 노래를 좋아하는 나무 같은 이들이 있다. 몇 해 전에 병역거부자들의 모임인 ‘전쟁 없는 세상’의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녀를 본 적이 있다.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자 주변에 있던 병역거부자들이 조용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를 모르는 이들에게 “정말 좋지 않냐?”며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직설법으로 평화와 생명을 노래하지 않아도, 지구의 미래와 안녕을 걱정하는 이들은 그녀의 노래에 깊이 공감하고 오래 사랑했다. 환경단체 행사에 가장 자주 초대받는 가수도 그녀일 것이다. 그래서 녹색당 당가를 그녀가 부른 것은 예상 밖의 일이 아니다. <시와 커피> 음반은 지구의 미래를 걱정해 생분해 CD로 제작됐다.
-병역거부자 친구들이 좋아하던 모습이 오래 잊혀지지 않아요.
=언젠가 마로니에공원에서 공연을 했는데, 저를 소개하던 사회자의 말이 기억에 남아요. “흐르는 물소리 떨어지는 꽃잎 발소리 내는 것도 조심스럽게”라는 가사를 말하면서 “평화가 다른 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 그곳의 상황을 배려해서 발소리 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것 아닐까요?” 하더라고요. 그렇게 제 노래를 풍성하게 해석해주시는 분들이 고맙죠.
-시와의 노래를 들으면 혼자 있는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라요. 근데 오히려 가사는 관계에 대한 얘기로 가득해요.
=해가 비추는 쪽이 있으면 뒷면에 그림자도 지잖아요. 제 노래 속에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혼자 있는 사람이지만, 고립된 사람은 아니에요. 관계를 원하고 잘 풀어보고 싶은 사람이 혼자 있는 방 안에서 떠올리는 생각이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노래 <길상사에서> <랄랄라> <화양연화> 등은 아는 사람은 정말 사랑하는 노래가 됐다. 5월 광주를 다룬 영화 <오월애>의 김태일 감독은 그녀의 팬으로 그녀에게 영화음악을 맡겼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둘 조용히 늘어난 것에는 공연이 한몫을 했다. 그녀는 <시와 커피> 음반을 내고 전국의 카페를 다니며 공연을 했다. 마이크 없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기도 했다.
작은 변화가 아름답다
-한 해에 공연을 몇 번 하세요?
=세지 못하는 정도인 것 같은데요. 제가 노래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공연하면 힘이 나요.
-마이크 없이 노래하면 어때요?
=더 긴장될 수도 있는데… 그만큼 확실하게 노래에 대한 반응을 느낄 수 있어요.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나요?
=아는 분이 작업 공간을 내줘서 어느 건물 6층 원룸에서 노래한 적이 있어요. 책상과 소파만 있는 공간이었어요. 스무 명쯤 되는 관객은 바닥에 앉고 저는 소파에 앉아서 노래를 했죠. 주변에 빛을 가리는 건물이 없었어요. 지금 같은 계절에 오후 5시쯤에 공연을 시작했는데, 관객이 노래하는 제 뒤로 해가 지는 걸 보면서 공연을 본 거예요. 저도 빛이 관객들 사이로 움직이는 것을 봤고요. 시간의 흐름을 같이 느꼈던 거죠.
이렇게 그녀는 꾸준히 팬들과 소통하면서 그녀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에세이집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를 내기도 했던 그녀는 음반 작업 일지, 공연 소식 등을 ‘위드시와닷컴(withsiwa.com)을 통해 꾸준히 알린다. 때로 마을에서 노랫말을 쓰는 강좌의 강사가 되기도 한다. 가수가 되기 전에 그녀는 10년 동안 특수학교 교사로 일했다. 그녀는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온전히 매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2010년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특수학교에서 많이 배웠을 것 같아요.
=거기선 아이들이 단기간에 빨리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쉽지 않아요. 오늘 이름 쓰기를 가르쳐줘도 내일이면 잊을 수 있죠. 그래서 아이가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는 변화조차 아주 중요한 성장의 지표예요. 이렇게 작은 변화에도 주목하는 것을 배우지 않았나 싶어요.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라도 누군가에겐 중요한 변화라는 걸요.
11월21~22일 음반 발매 공연 열려
-언젠가 ‘노래하는 할머니’가 됐으면 좋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할머니가 돼도 노래하고 싶다는 거죠. 2012년 제주도에 <시와 커피> 음반을 녹음하러 갔어요. 그때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 언니가 기타를 가지고 왔으니 노래를 하라고 부추겨서 공연을 하게 됐어요. 큰 방에 마을 사람들이 모였는데, 공연이 끝나고 노래가 마음에 드시면 제 음반을 가지고 가셔도 좋다고 했어요. 크리스마스 즈음이라 물물교환을 하자고 했는데, 어떤 분은 “오늘 딴 귤이에요” 하면서 주고 가시고, 어떤 분은 입던 니트를 벗어 주시고, 어떤 분은 꼭 안아주셨어요. 그 순간, ‘이렇게 살아도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노래와 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바꿔가면서, 언젠가는 그렇게 지내고 싶은 꿈이 있죠.
그렇게 작은 기척에서 의미를 찾는 감각이 있어서 그녀의 노래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간다. 그녀의 노래는 “무서운 꿈 꾸다/ 깨어나 그대로 울어버린/ 밤처럼 막막한 시간 그 슬픔을”(<어젯밤에서야>) 견디는 사람들 옆에 나무처럼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만 떠나보내야 할 시간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지”(<어젯밤에서야)>라는 당부도 잊지 않을 것이다. 3집 음반에 담긴 그녀의 당부를 전하는 공연은 11월21~22일 홍익대 앞 폼텍 웍스홀에서 열린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