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9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전환도시-신촌: 해킹더시티’ 페스티벌 ‘전환장터’에서는 자전거 페달을 밟아 생산된 ‘친환경 전기’로 작동하는 믹서로 생과일 주스를 만들었다(위쪽). 연세대 학생 6명은 신촌의 한 술집을 낮 동안 ‘공유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하숙생 집밥 먹기 행사’ 등 콘텐츠를 고민 중이다. ‘전환도시-신촌’ 제공, 정용일 기자
‘전환도시-신촌’팀은 지난해 11월 청년 문화예술인들이 신촌 문화를 재생해보자고 발족한 ‘신촌재생포럼’에서 출발했다. 신촌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과 ‘차 없는 거리’라는 신촌의 환경 변화가 결합하면서 ‘전환’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안정배씨는 “휘발유를 사용하는 자동차가 없어진다는 것은 환경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슈다. 2000년에 네덜란드에서 처음 제기되고 영국의 토트네스에서 실천되고 있는 개념이 ‘전환’이다. 석유 가격 급상승, 상업자본의 들이닥침 같은 외적 요인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지역의 에너지 자립을 이루는 것이다. 토트네스의 전환을 참고하되,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전환을 다시 고민하는 프로젝트가 ‘전환도시-신촌’이다”라고 말했다.
‘전환도시-신촌’팀은 4월에 꾸려져 세미나, 워크숍, 전문가 특강을 진행했다. 9월24일엔 신촌 홍익문고 앞에서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북콘서트를 열었고, 신촌의 술집 쉬바펍에서 사진전도 열고 있다. 10월18일엔 캐나다·일본 등 외국 예술가들이 참가한 ‘자립의 기예’라는 포럼을 열었고 10월19일 축제가 끝난 뒤에도 쉬바펍을 ‘공유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공유공간 프로젝트는 정현희·정근혜씨 등 연세대생 6명과 쉬바펍 사장이 낮 동안 비어 있는 공간을 사람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유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다. 근처 하숙생들의 집밥 네트워크 등 콘텐츠를 고민 중이다. 안정배씨는 “신촌 차 없는 거리에 커다란 벤치 혹은 나무 조형물 등을 설치하고 태양광으로 발전한 전기로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는 ‘거대한 충전소’를 만들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그곳에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동생활스팟’ 등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이웃’으로
이들의 고민은 ‘에너지 자립(전환)’과 ‘공동체’를 결합해 신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연결성을 갖고 이야기와 삶을 공유할 수 있는 ‘흐르는 사람들을 위한 도심 마을’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전환도시-신촌’팀의 이태영씨는 ‘신촌 사람’이다. 신촌에서 대학을 다녔고, 졸업한 뒤에는 신촌 지역 공동체 복원을 위한 풀뿌리 회의체 ‘신촌민회’에서 활동하면서 동네 카페 ‘체화당’ 운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 서대문구의원 녹색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30살 이태영씨는 20살에 대학에 입학한 뒤 10년 동안 신촌에 살면서 특별히 신촌 ‘주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구의원 선거 준비를 하면서 이 지역만이 갖는 독특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도시에서는 자기 집이 없는 한 2년 전세 계약이 끝나면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 2년 뒤 떠나더라도 현재는 그곳의 주민이고, 살지 않지만 그곳에 학교와 직장이 있는 사람들도 그 지역의 주민이다. 구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흘러다니는 사람들도 행복하고 안전한 마을’을 만들어보자 생각했고, 신촌의 ‘재지역화’를 고민하는 지금도 흘러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마을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역시 신촌에서 대학을 다녔고 졸업 뒤에는 주로 홍익대 앞에서 공연을 하고 두리반 투쟁에 깊숙이 참여한 안정배씨는 “서른을 넘기면서 이제 나도 동네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동네는 다른 동네다. “마을 만들기가 만날 이웃, 이웃 하는데, 주로 주택지 마을에서 옆집 사람을 일컫는다. 30대 초·중반인 내 또래는 내 집이 없으니 주택에 대한 개념이 없다. 그럼 나는 이웃이 없는 사람들인가. 우리 또래에게는 단골 가게, 좋아하는 뮤지션이 이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신촌’을 동네로 그리고 마을로 만들어가자는 게 ‘전환도시-신촌’의 뜻이다.”
그런 만큼 이들이 생각하는 마을에는 ‘다양성’이 중요하다. 다양한 사람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 ‘전환도시-신촌: 해킹더시티’ 페스티벌에서 듣기 난해한 하드코어·패스트코어 밴드들이 대거 공연한 이유도 그래서다. “문화적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신촌이면 좋지 않겠나.”(안정배)
이런 시도는 일단 벽에 부딪혔다. 공연이 진행되는 낮 시간 동안 주변 상인과 행인들의 “시끄럽다”는 민원이 이어졌다. 저녁 8시20분. 마무리 프로그램으로 공연했던 팀들이 함께 연세로를 행진하는 ‘연세로 순례’ 역시 ‘시끄럽다’는 이유로 예정된 마무리 지점(신촌로터리)까지 가지 못했다. 마무리 행진에 참여한 음악가 단편선은 “행진의 출발점이 현재라면 행진의 도착점을 미래로 정하고 현재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로 전환하자는 의지를 담았다. 가로막혀서 씁쓸하긴 하지만, 새로운 예술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을 자체가 이미 정치다”
벽에 부딪힌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정치 행위. 애초 워크그룹으로 참여하려던 녹색당은 서대문구가 내부적으로 정한 ‘정치 행위 금지’ 규정에 따라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녹색당은 대신 이름을 ‘영 그린’(young greens)으로 바꿔 메인 광장 뒤쪽에 조그만 부스를 만들어 옹색하게 참가했다. 전형우 녹색당 운영위원은 “마을 자체가 이미 정치다. 사람이 모여 있으면 그건 이미 정치다. 누군가의 당선이 아니라 ‘녹색’이라는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도 막는다는 건 정치 행위를 너무 경직되게 해석하면서 마을 자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에너지 자립, 문화적 다양성, 커뮤니티. ‘전환도시-신촌’팀은 신촌 지역에 이 세 가지를 채워넣으려고 지금도 다양한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실험하는 중이다. 흐르는 사람들의 신촌 마을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