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주무기는? 그들이 단명하는 이유는? 그들만이 누리는 환희의 순간은?
우리는 지금 정말 재미있는 대결을 보고 있다. 꿈의 무대라는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 한국인 투수 김병현(애리조나)이 진출하게 된 것은 첫 번째. 그러나 국위 선양, 나라 사랑의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야구 자체로만 본다면 이만큼 흥미로운 사건도 드물 것이다. 오클랜드의 데니스 애커슬리 이후 사실상 멸종이 선언됐던 잠수함 투수(통상 사이드암스로 투수와 언더핸드스로 투수를 모두 통칭하는 표현)가 99년부터 돌풍을 일으키더니 드디어 월드시리즈 무대에 선 것이다. 잠수함 투수의 월드시리즈 활약은 60년대 댄 퀴슨베리 이후 처음이다. 희귀종으로나 여겨졌던 사이드암스로 투수 김병현이 자신의 팀을 이끌고 미국 전역의 시청자들의 안방 TV 화면에 등장하고 있다.
빠른 공은 필수
또다른 볼거리는 현존 최고의 클로저(Closer- 마무리 투수)로 일컬어지는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와의 맞대결. 리베라가 누군가. 세이브 관련 포스트시즌 기록은 대부분 리베라가 갖고 있다. 20세기 최강의 팀 양키스에 속한 덕도 톡톡히 보고 있지만 리베라의 구위는 당대 최고라는 평가다. 올 디비전시리즈와 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2세이브를 추가, 플레이오프 통산 최다 세이브(월드시리즈 전까지 23세이브), 월드시리즈 통산 최다 세이브, 포스트시즌 22경기 연속 구원 성공 등 화려하기 그지없다. 리베라는 야구인들 말투로 하자면 ‘이쁜’ 선수다. 마무리가 갖고 있는 한계의 대부분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리베라 등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들에게서 발견되는 ‘그들만의 무엇’을 살펴보자.
마무리 투수는 일단 배짱이 두둑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공이 빨라야 가능하다. 배짱있고 공 느린 선수보다는 배짱없고 공 빠른 선수가 더 낫다는 평이다. 애리조나가 경험이 일천한 김병현을 데뷔 첫 경기(99년 5월30일 뉴욕 메츠전) 세이브 상황에 등판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병현은 직구 시속이 최고 147km까지 나온다.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잠수함 투수의 공이 150km에 가깝다면 직접 타석에 선 타자들에게 어떤 체감속도로 다가올지는 뻔한 얘기 아닌가. 마리아노 리베라는 직구 최고 구속이 99마일, 159km까지 나온다. 9회 한점 차에 무사 주자 1, 2루 상황이라도 양키스 덕아웃이 느긋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들은 빠른 공만으로 승부를 겨루지 않는다. 리베라의 주무기는 일명 커터로 불리는 컷 패스트볼(cut fastball). 슬라이더를 던질 때처럼 공을 비끄러 잡아 직구처럼 던지는 공이다. 느린 화면으로 보면 그려지는 공의 궤적이 마구에 가깝다. 리베라의 컷 패스트볼은 149km까지 나온다. 한국 투수 중에서 변화구가 150km에 가깝게 나오는 투수는 찾아보지 못했으니 그 위력이 대충 어느 정도인지는 타석에 서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김병현은 일명 업슛(up-shoot)이라 불리는 떠오르는 커브를 구사한다. 김병현이 업슛을 구사할 때마다 매스컴에서는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듯하다”(), “타자들에겐 악몽”(<베이스볼위클리>) 등의 표현을 쓰며 극찬을 아끼지 않은 바 있다. 앞서 열거한 예에서 보듯 빠른 공 이외에도 변화구 주무기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느린 마무리가 살아남는 법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쿡쿡 찔러대는 빠른 직구 하나만으로 살 수 없다는 얘기를 다소 억지를 부려 말해보면 빠른 볼 없어도 마무리 투수 할 수 있다는 궤변도 가능하다. 최근 마무리 투수들의 실제 경향이 그러하다. 리베라와 함께 클로저의 양대 산맥 격인 트레버 호프만(샌디에이고)의 올 시즌 피칭 패턴이 그랬다. 호프만은 지난 95년 어깨 회전근을 다쳐 벽에 글씨도 쓸 수 없을 정도였다. 회전근의 뼛조각 제거 수술을 한 뒤 그가 깨달은 게 바로 밸런스 피칭. 강성 일변도로 타자를 윽박지르기보다는 체인지업과 패스트볼을 적절히 구사해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투구법을 익히기 시작한 것이다. 호프만처럼 어깨 수술 경력이 있을 경우 스플리트 핑거 패스트볼(sf볼), 컷 패스트볼보다는 체인지업에 눈을 돌리는 케이스가 대다수다. 장수 마무리를 위한 선택인 셈이다.
가장 좋은 예로는 신시내티의 신예 마무리 투수 데니 그레이브스. 그의 투구를 지켜보면 정말 쉽게 쉽게 던진다는 감탄사까지 나올 지경이다. 미국 언론들은 김병현의 등장과 함께 데니 그레이브스의 출현에 대해 “마무리의 새 조류”라고 명명한 바 있다. 미국 야구는 이미 대학 때부터 선발-원포인트 릴리프-셋업 맨-마무리의 개념이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데 그레이브스는 대학 시절, 마이너리그를 거치면서 순전히 마무리 투수로만 줄곧 자리를 지켜왔다. 자신의 운명이 몇년 뒤에도 그 자리여야 한다면 ‘어떻게 오래 버틸 것인가’라는 궁리를 하게 마련이다. “내 스타일은 불같은 강속구를 던져서 타자를 압도하는 타입이 아니다. 대신 스피드를 변화하는 방법은 안다. (메이저리그)에서 통한다면 아마 그것 때문일 것이다. 모든 마무리 투수가 99마일을 던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데니스 그레이브스의 말(2000년 8월 <스포팅뉴스>)이다.
김병현은 최근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시즌 내내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더니 7∼8kg이 빠졌다. 며칠 휴식을 취하니 조금 불었다”고 말했다. 10kg에 가깝게 체중이 빠지는 것이 바로 메이저리거의 생활이다. 게다가 김병현은 매일 긴장을 늦추지 않고 불펜 대기를 해야 한다. 7, 8회가 되면 눈을 부릅떠야 하고 곧 이어 투수코치의 호출전화가 울린다. 162게임 중 70경기 가까이 이런 일이 반복된다. “광주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가 내 등판 모습을 편하게 지켜봤으면 한다”는 바람 탓에 선발로의 전환을 원하기도 하지만 22살의 나이에 매일 불펜 대기는 정말 힘든 노릇이다.
대개 이런 상황이 3년가량 지속되면 부상으로 이어진다. 마무리 투수의 수명은 3년이라는 메이저리그 속설도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의 톰 고든, 3년 전 혜성처럼 나타났던 애틀랜타의 케리 라이텐버그 등이 마무리의 숙명 공식대로 흘러간 케이스다. 모두가 팔꿈치 수술을 겪은 뒤 셋업 맨, 원포인트 릴리프로 떨어졌다. 애리조나의 확실한 마무리였던 매트 맨타이도 팔꿈치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내린 뒤 결국 김병현에게 마무리 자리를 내줬다. 김병현의 팔뚝에 물혹이 자꾸 솟아나는 것도 다소 심상치 않은 징조 아닐까.
마무리 투수는 길어야 3년?
앞서 예를 든 마리아노 리베라는 팔꿈치에 무리가 가지 않는, 체인지업의 구사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주무기인 직구와 컷 패스트볼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라운드에서 마무리 투수로 지낼 수밖에 없는 그로서는 어쩔 수 없이 한번 생각해야 할 문제다.
메이저리그에도 마무리 혹사는 있다. 클로저들의 수명이 자꾸 짧아지는 게 이를 방증한다. 뉴욕 양키스 감독 조 토레가 마치 유리공 다루듯 철저히 등판 이닝, 간격을 지켜주는 리베라는 어쩌면 행운아다. 브루스 보치(샌디에이고) 감독과의 특별한 ‘사부-제자’ 관계 덕분에 역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 있는 트레버 호프만도 마찬가지다. 투수난을 겪고 있는데다 쓸만한 마무리 투수들은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는 메이저리그에서 이들의 수명 연장은 어쩌면 요원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가장 긴박한 순간을 책임지고 손을 번쩍 들어 포효할 수 있는 절정은 오로지 마무리 투수에게만 주어진다. 메이저리그 선배인 박찬호(LA다저스)는 최근 “월드시리즈 7차전 마지막 이닝을 책임지고 내려올 수 있는 투수가 되길 바란다”며 후배 김병현을 격려했다. 영광의 순간에 대한, 경외와 부러움의 표현 아닌가. 수명이 3년이더라도, 팔꿈치가 고장나더라도, 다른 걸 모두 양보하더라도 마무리 투수가 절대 내줄 수 없는 최고의 시간이기도 하다.
김성원/ 스포츠투데이 야구부

사진/ 한국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는 김병현. 그의 '업슛'을 미언론들은 극찬했다.(AP 연합)
마무리 투수는 일단 배짱이 두둑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공이 빨라야 가능하다. 배짱있고 공 느린 선수보다는 배짱없고 공 빠른 선수가 더 낫다는 평이다. 애리조나가 경험이 일천한 김병현을 데뷔 첫 경기(99년 5월30일 뉴욕 메츠전) 세이브 상황에 등판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병현은 직구 시속이 최고 147km까지 나온다.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잠수함 투수의 공이 150km에 가깝다면 직접 타석에 선 타자들에게 어떤 체감속도로 다가올지는 뻔한 얘기 아닌가. 마리아노 리베라는 직구 최고 구속이 99마일, 159km까지 나온다. 9회 한점 차에 무사 주자 1, 2루 상황이라도 양키스 덕아웃이 느긋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들은 빠른 공만으로 승부를 겨루지 않는다. 리베라의 주무기는 일명 커터로 불리는 컷 패스트볼(cut fastball). 슬라이더를 던질 때처럼 공을 비끄러 잡아 직구처럼 던지는 공이다. 느린 화면으로 보면 그려지는 공의 궤적이 마구에 가깝다. 리베라의 컷 패스트볼은 149km까지 나온다. 한국 투수 중에서 변화구가 150km에 가깝게 나오는 투수는 찾아보지 못했으니 그 위력이 대충 어느 정도인지는 타석에 서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김병현은 일명 업슛(up-shoot)이라 불리는 떠오르는 커브를 구사한다. 김병현이 업슛을 구사할 때마다 매스컴에서는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듯하다”(

사진/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 중 하나인 뉴욕 양키스의 리베라. 최고 구속이 시속 159km 에 이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