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란 근대 국민국가들의 투영물”… 재일동포 사학자 이성시의 <만들어진 고대>
잘 알려졌듯이 잔다르크는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때 프랑스를 구한 영웅이다. 그러나 18세기까지만 해도 잔다르크는 ‘국민적’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잔다르크가 위기에서 구해낸 오를레앙 지역이나 잔다르크가 태어난 동레미 마을 등 잔다르크와 직접적 관계가 있는 일부 지역에서만 그 이름이 알려졌을 뿐, 프랑스 사람 대부분은 잔다르크란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프랑스 각지에 세워진 동상들도 대부분 19세기에 세워진 것들이다.
잔다르크와 광개토대왕
잔다르크가 프랑스 최고의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나폴레옹의 작품이었다. 황제를 꿈꿨던 나폴레옹은 죽은 지 400년이 넘은 잔다르크를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 부각시켰다. 그리고 스스로를 잔다르크에 비유하면서 프랑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자극했고, 나폴레옹은 황제에 올랐다.
지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역사적 사실이 반드시 과거에도 중요한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은 후대 사람들의 입맛과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된 것들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잔다르크처럼. 그리고 이는 비단 프랑스와 서양만의 현상은 아니다. 동양,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사실이 후대의 필요성에 따라 갑자기 부각되는 사례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광개토대왕비다. 광개토대왕비는 1천여년을 역사적 관심 바깥에 있다가 갑자기 역사적 사실로 등장한 유물이다. 그리고 이 잊혀졌던 유물을 역사 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바로 일본이었다. 최근 출간된 재일동포 사학자 이성시 와세다대학 교수의 책 <만들어진 고대>(박경희 옮김/ 삼인 펴냄/ 1만5천원/ 문의 02-322-1845)는 바로 이 광개토대왕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일본은 광개토대왕비를 멋대로 해석해 고대에도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증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시각을 더 넓혀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도록 주문한다. 이 교수는 “고대의 역사란 근대 국민국가들이 만들어낸 투영물”이며,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고대사가 모두 ‘만들어진 전통’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개토대왕비 연구는 발견 당시 러일전쟁을 앞두고 있었던 일본군이 연구를 주도했고, 이들은 당시 상황을 역사의 해석에 투영시켰다는 것이다. 즉 일본이 당시에도 고구려, 즉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와 비슷한 북방세력과 대결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당시 상황과 고대사가 얼마나 비슷한지를 입증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물론 조선쪽에서는 정인보 등이 이에 맞서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았다. ‘일국사’의 사고틀을 넘어서라
이런 경향이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 지은이는 기본적으로 근대국가의 역사학이란 것이 출발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 역사학은 애초 일본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양을 의식하고 서양인들에게 비치게 될 일본 역사의 모습을 감안해 형성된 것이고, 한국의 역사학 역시 이러한 일본 역사학을 의식하면서 형성됐다는 점이다.
얼핏 우리가 너무나 당연한 실체로서 여기는 민족, 국가, 그리고 고대사가 모두 근대기에 각 나라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개념이란 점을 우리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이처럼 민족주의로 왜곡되기 십상인 ‘일국사’의 사고틀을 벗어나 주변 여러 나라를 동시에 다루는 광역 시각으로 역사를 파악하자고 제안한다.
결국 우리가 인식해야 할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도 과거의 일본처럼 집권자와 소수 지배층의 목적에 따라 재단된 역사관을 주입받아왔을 것이라는 점. 또 하나는 우리가 논박하는 일본의 역사관이 세월이 지났음에도 우리 의식의 깊은 곳에 강력한 지배체계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책은 이런 점을 깨닫고 역사를 바라볼 것을 권한다. 내용은 다소 어려워도 그것만으로도 책의 미덕은 분명해 보인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지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역사적 사실이 반드시 과거에도 중요한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은 후대 사람들의 입맛과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된 것들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잔다르크처럼. 그리고 이는 비단 프랑스와 서양만의 현상은 아니다. 동양,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사실이 후대의 필요성에 따라 갑자기 부각되는 사례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광개토대왕비다. 광개토대왕비는 1천여년을 역사적 관심 바깥에 있다가 갑자기 역사적 사실로 등장한 유물이다. 그리고 이 잊혀졌던 유물을 역사 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바로 일본이었다. 최근 출간된 재일동포 사학자 이성시 와세다대학 교수의 책 <만들어진 고대>(박경희 옮김/ 삼인 펴냄/ 1만5천원/ 문의 02-322-1845)는 바로 이 광개토대왕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일본은 광개토대왕비를 멋대로 해석해 고대에도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증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시각을 더 넓혀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도록 주문한다. 이 교수는 “고대의 역사란 근대 국민국가들이 만들어낸 투영물”이며,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고대사가 모두 ‘만들어진 전통’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개토대왕비 연구는 발견 당시 러일전쟁을 앞두고 있었던 일본군이 연구를 주도했고, 이들은 당시 상황을 역사의 해석에 투영시켰다는 것이다. 즉 일본이 당시에도 고구려, 즉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와 비슷한 북방세력과 대결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당시 상황과 고대사가 얼마나 비슷한지를 입증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물론 조선쪽에서는 정인보 등이 이에 맞서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았다. ‘일국사’의 사고틀을 넘어서라

사진/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비문을 둘러싼 남북한과 중국, 일본의 서로 다른 해석은 각기 근대 국민국가적 필요성을 반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