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말하고 우리는 듣습니다
볼프강 울리히의 <모든 것은 소비다>
등록 : 2014-09-05 14:17 수정 :
“상품은 스스로를 사용가치로 실현시킬 수 있기 이전에 자신을 가치로 실현시켜야만 한다. 한편 상품은 스스로를 가치로 실현시키기 이전에 자신의 사용가치를 입증해야만 한다.” 마르크스가 ‘판매’에 대해서 한 말은 <자본론>에서 이 말뿐이다. 상품에 내재한 가치는 판매라는 엄청난 ‘도약’을 통해서만이 실현된다.
볼프강 프리츠 하우크는 판매로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상품 미학’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하우크는 상품 미학이란 상품이 팔리도록 ‘조작’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1970년, <상품미학비판>)했다. 여전히 하우크의 영향력은 크다. 나오미 클라인은 <노 로고>에서 대량생산품이 인간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 판단력, 취미를 정복한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제품의 질보다 제품의 포장이 중요하다. 에바 일루즈는 소비품의 공급으로 생겨나는 감정은 허구적이다, 그것은 소설을 읽을 때 상상력이 작동하면서 생기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소비사회가 낭비를 부추기는 쓰레기를 생산하는 사회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소비다>(김정근·조이한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에서 볼프강 울리히는 ‘상품’이라는 일반적인 어휘를 벗어나 개별적인 상품으로 해석의 차원을 옮겼다. ‘소비자 교육’이라는 이력이 이론을 세우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된 듯하다. 상품이 만연한 세상에서 어린 시절부터 상품에 대한 미학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역설은, 격변하는 자본주의 생산 과정의 세부를 들여다보게 한다. 울리히가 좌파의 이론을 비판하면서 펼치는 이론은 <한겨레21>이 10여 년 전 패션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 일었던 논란이나, 문화평론가 허지웅이 무명 시절에 일으킨 ‘에어컨 좌파’ 논란 등을 연상시킨다. 자본주의 비판을 견지하는 좌파에게 미학적 소비는 무어란 말인가.
저자는 일루즈의 상품이 일으키는 감정이 소설을 읽을 때와 비슷하다는 말은 1698년 신학자 하이데거가 한 ‘소설은 속임수’라는 비난과 통한다고 말한다. 플라톤도 마찬가지로 이상적인 국가에서 시인과 예술가를 몰아내려고 했다. ‘시선을 바꾸어’ 19세기에 요구 수준이 높은 해방된 독자가 생겨나고 그 결과 소설이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처럼 소비자가 상품에 대한 수준 높은 비판을 해서 새로운 소비문화, 나아가 새로운 상품을 추동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옛날과 달리 영업은 최종 단계가 아니라 상품 개발에서 첫 번째 단계이기 때문이다. 최근 배철수가 내레이션을 하는 광고(“당신은 말하고 우리는 듣습니다”)와 비슷한 맥락이다. 저자는 깐깐한 교사 같다. “일상적인 생활을 할 때 기울이는 주의력이 사람들을 인식으로 이끌어야만 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