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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리는 (일회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맥도날드 알바생 신민씨, 수집한 쓰레기로 비정규 노동자의 쓰디쓴 삶을 표현한 작품으로 전시회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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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21 13:33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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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작가의 전시 ‘We’re all made of__’의 대표 작품인 〈견상(犬狀)자세하는 알바생〉이다. 이번 전시는 맥도날드에서 나오는 쓰레기로 만든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한 사람이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다. 세상에선 이 자세를 ‘견상(犬狀)자세’라고 말한다. 개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처럼 보이는 이 요가 자세는 좌골 신경통 치료에 탁월하단다. 여기에 반기를 드는 청년이 있다. ‘원치 않는 견상자세는 엎드려뻗쳐 아니야?’ 좌골 신경통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다. 청춘은 생존을 앓고 있다.

작품 <견상자세하는 알바생>은 자취방 월세를 내기 위해 시작한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 아르바이트 경력이 1년 된 신민(29)씨의 개인전시회 대표 작품이다. 어른들은 청춘의 고생을 ‘견상자세’라고 한다. 잠깐 견디고 나면 꽃이 핀다고. 몸에 좋은 요가 자세니까. 비정규 노동도 모자라 시간제까지 생겨 일자리 선택이 넓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노동자의 삶은 더 힘들어졌다. 신씨는 몸에 좋다는 견상자세에서 오히려 노동의 고통스러운 ‘엎드려뻗쳐’를 보았다.

해롭다는 걸 알아도 헤어나올 수 없는

대학생 시절, 좋은 사장님이 하는 반찬가게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하다 지난해 여름 맥도날드에서 일하며 그는 처음 대기업의 쓴맛을 보았다. 빨리빨리 일하라는 지시에 따르다 얼음을 밟고 넘어졌는데 걱정은커녕 눈살을 찌푸리던 상사는 바쁜 점심시간이 끝나자 예정된 아르바이트 시간보다 신씨를 먼저 퇴근시켰다. 몸은 아프고 돈도 적게 벌었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부품으로 쓰고 버려지는 비정규직 알바생이 일회용 맥도날드 쓰레기와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작품을 만드는 것이어서 올해 초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아침에 서울 합정동 맥도날드 가게로 출근해서 오후 2~3시까지 일하는 신씨는 퇴근 지문을 찍고 냉장고로 향한다. 텅 빈 냉동감자 봉지를 모조리 챙기고 맥도날드 폐휴지도 한 아름 챙긴다. 자신의 처지 같은 폐휴지지만 소진되는 자신과 달리 이것들은 곧 새로운 작품으로 변신할 수 있다. 어린 동료들은 신씨를 ‘쓰레기 수집가’라고 놀린다. 신씨는 그때마다 작품에 쓸 거라며 조용히 답했다. 가끔 삼촌뻘 되는 알바생은 미소를 짓기도 한다. 무언가 안다는 미소다. 상사들은 매일 신씨가 폐휴지를 모아 가는 것을 보고 작가 활동을 하는 것도 알았지만 별 의심이 없었다. 아예 알바생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맥도날드 복장 작품을 신씨는 <잉여 슈트>라고 이름 붙였다.

폐휴지가 재료였기 때문에 돈 없는 신인 작가에게 재료비 부담은 적었다. 폐휴지를 덧붙이면 단단해져 사람 모형이 되고 여기에 색연필로 알바생임을 표현했다. 신씨가 출근하면 아침마다 맞이해주는 감자를 담던 상자 위에 작품들을 올려놓았다. ‘서울시 창작공간’에 선정돼 작업실을 저렴하게 이용했고,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운 좋게 지원금도 받았다. 전시는 갤러리 ‘플레이스 막’에서 하기로 했다. 여기서 2011년 ‘나영이 사건’ 전시를 했던 인연이 도움이 됐다. 유디렉(39) ‘플레이스 막’ 대표는 “작품이 좋아서 이미 반년 전에 전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전시회 홍보물도 신씨가 직접 만들었다.


혼자서 능숙하게 전시 준비를 해온 신씨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트러스트 무용단’이란 곳에서 무용단원으로도 활동했고, 홍익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한 공학도다. 그저 미술로 표현하는 게 좋았다. 일회용 종이로 작업을 하면서 그는 “이 폐지도 사실 누군가의 생업인데…”라며 폐지 줍는 분들에 대한 미안함을 버리지 못했다. 이렇게 정규 미술교육에서 강조되지 않는 예민한 감수성과 남다른 상상력이 그에겐 있다.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헤어나올 수 없다.’ 알바생이 만드는 프렌치프라이와 자신들의 공통점이다. 값싼 노동력인 알바생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촌철살인 홍보 멘트다. 빠져나올 수 없으면 적응해야 할까. ‘사람이 잉여인 것은 자기계발이 부족해서’라고 사회와 기업이 강요하면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기꺼이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사람이 많아 주문이 밀린 것도, 일손이 부족해 서두르다 화상을 입은 것도 모두 알바생 개인의 책임이다. (부작용)라는 작품으로 이런 감정노동에 의기소침해진 자신의 모습을 표현했다.

“맥도날드 한국지사장도 초대하고 싶다”

“여유를 비싸게 즐길 필요가 있나요.” 신씨는 이 맥도날드 광고를 싫어한다. 소비자가 스마트한 소비를 할수록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는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회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의 이번 전시회 ‘We’re all made of____’는 8월8~30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플레이스 막’에서 진행된다. 신씨는 전시회가 끝나고도 계속 맥도날드에서 일하며 견상자세 작품을 만들 계획이다. “(맥도날드에서) 잘리지만 않는다면 (견상자세 작품을) 6개 정도 더 만들어 더 큰 장소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고, 조 엘린저 맥도날드 한국지사장도 초대하고 싶다”고 밝힌 신씨는 오늘도 맥도날드로 출근한다.

장슬기 인턴기자 kingka87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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