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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유령선에서 내리려면

세월호 참사 이후 처음으로 발빠르게 내놓은 우석훈의 진단 <내릴 수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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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06 15:27 수정 : 2014-08-0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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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릴 수 없는 배〉는 세월호 참사로 확인됐듯 한국 사회가 내릴 수 없는 배임을 고발한다. 침몰한 세월호의 모습.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지난 4월16일 침몰한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7월12일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어 그의 장남 유대균도 은신처에서 검거됐고 유 회장의 도피를 도왔던 사람들도 속속 검찰에 자수했다. ‘세월호의 거악’으로 지목된 이들은 곧 법의 심판을 받을 예정이다.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세월호 선원들의 재판은 진행 중이다. 자, 이제 이들에게 법정 최고형만 내려지면 세월호 참사는 ‘해결’되는 것인가.

정부 대책 속 ‘재난 자본주의’

<내릴 수 없는 배>(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우석훈은 “사람들의 시선이 세월호 선장과 그 선원들의 처벌을 향할수록, 그들이 얼마나 파렴치하며 황당한지에 집중할수록 문제를 해결할 기회는 줄어든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에서 경제학자로서 자신의 관록과 정보를 직조해 세월호 참사가 들춘 한국 자본주의의 얼개를 엮어낸다.

2011년부터 “카페리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는 게 좋겠다는 교육 당국의 노골적인 권유”와 정부 주도의 ‘운하사업’, ‘크루즈산업 육성 방안’이 맞닿은 지점을 포착해내는 건 우석훈다운 통찰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냉정하게 파고들어 기어이 불편한 진실을 끌어낸다. “민간기업의 이익은 그 기업과 상관없는 학부모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보전해줬고, 그게 세월호 참사를 불러왔다.”

세월호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참사 100일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에서 드러난 연안여객의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눈물까지 보이며 내놓은 대책은 사후 대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우석훈은 ‘재난 자본주의’라는 관점에서 대책을 되새긴다. 권력은 재난을 이용한다. 미국에서 9·11 같은 테러와 태풍 ‘카트리나’ 등의 자연재해 이후 ‘안전’이 산업이 되었듯이, 이들의 대책에서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청와대는 책임지지 않는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고 5급 공채를 축소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결국 책은 수학여행을 권유하면서까지 위태롭게 운영되는 여객선 산업의 근본적인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대한 대안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내리려고 해도 내릴 수 없는 유령선”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내릴 수 없는 배’에서 내리기 위해 우석훈이 제시하는 열쇠는 ‘공공성’이다. 대중교통도 아닌 카페리를 공영제로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해 우석훈은 전남 신안군 버스공영제를 사례로 보여준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현대사회에서의 위험은 그 안에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경제적 차별이 위험성을 차등화한다는 것이다. ‘재난 자본주의’와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본으로 구축한 안전은 가난한 자들의 안전 사각지대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운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책은 세월호 참사 이후 사진집을 제외하고는 처음 나온 출판물이다. 이 책을 기점으로 많은 책들이 나올 것이다. 우석훈이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반도 대운하가 이슈였을 때 책을 펴낸 날렵함이 경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집필 내내 세월호 참사의 무게를 견뎌야 했던 감정적 파고가 책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밀고 나간 힘이리라. “지금 대한민국에서 누군들 울지 않겠는가. 그러나 운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또다시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 그게 세월호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다.

서지원 인턴기자 iddg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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