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전설적 음원들까지 복원해낸 굿인터내셔널의 ‘모노폴리’… ‘성당에서의 녹음’도 첫 시도
초보 클래식 애호가들이라면 음반 매장에서 한번쯤 경험했을 당혹스러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음반을 사기 위해 베토벤 코너 앞에 섰을 때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음반이 10여 가지에 이른다. 음반마다 제각기 다른 지휘자나 연주악단의 이름을 걸고 있을 뿐 아니라 가지각색의 레이블을 달고 있다. 물론 이 모든 레이블들은 연주자나 지휘자의 국적처럼 외국산이다. ‘외국인들이 연주하는 서양 고전음악인데 무슨 당연한 말씀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양음악 레이블은 반드시 외국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는 레이블이 있다. 국내음반제작사 굿인터내셔널이 내놓는 모노폴리가 그것이다.
서양으로 서양음악을 역수출하다
1998년 모노폴리 레이블로 첼로 연주자 카잘스 시리즈를 내놓아 큰 인기를 모은 굿인터내셔널은 서양음악을 서양으로 역수출까지 한 국내 첫 음반제작사. 카잘스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잠시 의문이 들 것이다. 카잘스라면 EMI 레이블을 통해 이미 소개된 유명 연주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혹시 해적판? 물론 아니다. 굿인터내셔널은 연주 녹음 및 음반 발매 50년이 지나 저작권이 만료된 음원을 복각해냈다. 복각음반이란 20세기 초 SP로 녹음돼 이제는 더이상 들을 수 없는 연주를 깨끗한 음질의 CD로 재생한 것. 이 회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뿐 아니라 카잘스 트리오, 카잘스 <바로크 페스티벌> 등 6종의 카잘스 시리즈를 복각해내 당시 고전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카잘스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굿인터내셔널은 카잘스뿐 아니라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 기타리스트 세고비아, 테너 디 스테파노 등 20세기 초 활동하던 전설적인 음악인들의 음원을 복각해 모노폴리 레이블로 선보였고 피아니스트 박하우스의 쇼팽연습곡을 세계 최초로 CD로 복원해내는 ‘개가’도 이뤄냈다.
굿인터내셔널의 복각 작업은 클래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엘라 피츠제럴드, 빌리 홀리데이, 냇 킹 콜 등 기라성 같은 재즈 뮤지션들의 초창기, 그리고 전성기 때의 연주작업 음원들을 발굴해 ‘굿’이라는 대중음악쪽 레이블로 복원했다. 베스트 중심으로 소개된 국내 재즈 음반계에서 이 음반들은 사료적 가치도 매우 높은 일종의 ‘기록물’이다. ‘영화를 만들기 전 첼리스트로 활동했다’고만 알려진 찰리 채플린이 직접 연주하는 첼로 연주를 얼마 전 만나게 된 것도 ‘굿’ 레이블을 통해서이다. EMI, 유니버설, BMG, 소니, 워너 등 메이저 레이블이 장악하고 있는 외국음악시장에서 굿인터내셔널은 틈새를 발굴해 설립 6년 만에 100개의 카탈로그를 보유하게 된 레이블로 성장한 것이다. 외국직배사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했던 서구음악 산업에서, 사금을 고를 때처럼 복각 아이디어를 걸러낸 토대는 이근화 대표가 ‘걸어다니는 음악사전’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10여년간 쌓은 현장경험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음악에 미쳐 살았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음반 가게에 취직했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음반더미에서 씨름하면서 음반정보를 입력하던 시절이었죠. 공부하면서 이 음반이 언제 어디서 녹음됐는지 계보를 쫓다보니 유명 음악인의 연주가 상당수 발매 중지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해적판’이라는 오해와의 싸움
단지 저작권이 소멸된 탓으로 주인을 잃은 수많은 주옥같은 음원들이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그는 96년 10월 보증금 없는 월세 50만원짜리 사무실을 내 ‘굿인터내셔널’이라는 음반회사를 세웠다. 초창기에는 사장, 영업사원, 서무까지 모두 그 혼자의 몫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음반수입에 주력하다가 98년 카잘스 시리즈를 복각했어요. IMF 덕을 많이 봤죠. 직수입이나 라이선스계약처럼 비싼 외화를 지불할 필요가 없으니까 음반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었고, 이게 적중해서 음반시장이 얼어붙은 당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국내에서만 10만장 이상 팔렸으니까요.”
보통 2만장 이상 나가면 성공이라는 클래식음반시장에서 10만장은 대박이다. 카잘스 시리즈는 일본, 유럽 등 그가 회사설립 초기부터 염두에 둔 해외시장에서 두배 이상 팔렸다. 전체 매출규모로 따지면 메이저 배급사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토종 레이블의 해외진출은 이들의 성공에 수치로만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얹어주었다.
그러나 레이블 모노폴리와 굿의 선전이 모든 이들에게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초창기 해적판이라는 오해와 오랜 시간 싸워야 했다. 수입음반이나 명망을 쌓은 레이블만 추종하는 많은 고전음악 팬들의 선입견은 아직도 이들이 깨나가야 하는 현실의 벽이다. “보수적인 음악팬들은 음원의 수준이나 음반의 질을 따져보기도 전에 라이선스보다는 수입음반을, 국내 레이블보다는 해외 레이블을 선호해요. 상당수 비평가들조차도 국내 제작사에 대해서는 평가내리기를 주저합니다.”
현재 단일 레이블로는 판매고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홍콩의 낙소스는 메이저가 꺼려하는 희귀 레퍼토리의 적극적인 발굴이나, 모노시대 음반의 복각작업, 그리고 저렴한 가격정책 등에서 굿인터내셔널과 비슷한 전략을 가진 음반사다. 메이저가 놓친, 실력있는 연주자의 발굴이라는 면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재즈 앙상블 살타 첼로는 모노폴리가 발굴한 커다란 수확이다. 98년 살타 첼로의 1집 음반을 수입했던 굿인터내셔널은 2집 때부터 모노폴리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음반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98년 무주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기로 했던 살타 첼로와 만날 기회가 있었죠. 폭우로 공연은 취소됐지만 음반계약을 성사할 수 있었어요. 실험성이 강한 재즈 앙상블에 한국음악을 소개했던 게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죠.” 이씨가 독일로 보낸 우리 전통음악과 가요 CD를 들으면서 한국음악에 흥미를 느낀 살타 첼로는 모노폴리에서의 첫 작품인 <세컨드 플러시>에 우리 음악 <진도 아리랑>과 가요 <나그네 설움>을 삽입했다. 지난해 발표한 3집 <솔티드>에는 <옹헤야>가 들어갔다. 모노폴리는 각각 솔로로도 활동하는 멤버들의 독집과 듀오 연주 음반도 제작했다. 성과는 이 앙상블의 리더인 페터 쉰들러가 활동하던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모노폴리는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출시해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모노폴리 레이블이 제작한 이 음반들은 일본과 대만, 홍콩 등에 라이선스로 수출돼 지난해 15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6년 만에 카탈로그 100호 기록
“졸지에 독일에서는 유명인사가 됐어요. 음악도시 슈투트가르트의 음반 매장에는 저희 레이블의 코너가 따로 마련됐고요. 현지 공연에서 이들이 연주하는 <진도 아리랑>이나 <나그네 설움>을 들으며 외국인들이 열광할 때는 더없이 기쁘죠.”
얼마 전 모노폴리는 피아니스트 김대진씨가 연주하는 존 필드의 녹턴을 녹음했다. 세검정의 성당에서 녹음 작업이 이뤄졌다. 스튜디오와 달리 높은 천장과 넓은 바닥에서 울려나오는 깊이있는 잔향을 담을 수 있는 성당이나 교회에서의 녹음은 유럽쪽에서 간간이 이뤄졌지만 국내에서는 첫 시도다. 서양이 아닌 한국이라는 이유만으로 벌써부터 ‘무모한’ 또는 ‘어설픈’ 따위의 형용사들을 동원해 이들의 시도를 폄하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원래 저네들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을 거예요. 그들만의 잔치를 구경하며 박수를 치는 것 외에는.”
11월의 첫날 굿인터내셔널은 레이블 카탈로그에 100호를 기록하는 음반을 낸다. 라는 타이틀의 이 음반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듀오로 연주한 음반. 고전이란 불변의 것이라고, 레이블이란 불변의 권위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무모해 보일지 모르지만 1000번째 카탈로그가 메워질 때까지 이들의 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독일 재즈 앙상블 살타첼로. 이들의 음반은 굿이라는 레이블로 전세계에 수출된다.
굿인터내셔널의 복각 작업은 클래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엘라 피츠제럴드, 빌리 홀리데이, 냇 킹 콜 등 기라성 같은 재즈 뮤지션들의 초창기, 그리고 전성기 때의 연주작업 음원들을 발굴해 ‘굿’이라는 대중음악쪽 레이블로 복원했다. 베스트 중심으로 소개된 국내 재즈 음반계에서 이 음반들은 사료적 가치도 매우 높은 일종의 ‘기록물’이다. ‘영화를 만들기 전 첼리스트로 활동했다’고만 알려진 찰리 채플린이 직접 연주하는 첼로 연주를 얼마 전 만나게 된 것도 ‘굿’ 레이블을 통해서이다. EMI, 유니버설, BMG, 소니, 워너 등 메이저 레이블이 장악하고 있는 외국음악시장에서 굿인터내셔널은 틈새를 발굴해 설립 6년 만에 100개의 카탈로그를 보유하게 된 레이블로 성장한 것이다. 외국직배사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했던 서구음악 산업에서, 사금을 고를 때처럼 복각 아이디어를 걸러낸 토대는 이근화 대표가 ‘걸어다니는 음악사전’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10여년간 쌓은 현장경험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음악에 미쳐 살았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음반 가게에 취직했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음반더미에서 씨름하면서 음반정보를 입력하던 시절이었죠. 공부하면서 이 음반이 언제 어디서 녹음됐는지 계보를 쫓다보니 유명 음악인의 연주가 상당수 발매 중지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해적판’이라는 오해와의 싸움

사진/ 98년 모노폴리 레이블로 복각된 카잘스 시리즈.

사진/ 굿인터내셔널은 외국직배사가 지배하는 해외음악시장에서 음원복각과 발굴로 틈새시장을 개척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이근화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