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중간쯤에 등장하는 이 질문이야말로 <소년이 온다>의 핵심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의 의미는 34년 전 광주에서 벌어진 참극을 증언하고 고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정면으로 묻는다는 데 있다. 2009년 1월 서울 용산에서 벌어진 참극은 그 질문이 여전히 유효함을 새삼 상기시켰다. 용산은 바로 광주였던 것.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아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성격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세월호의 침몰 역시 마찬가지로 고통스럽고 절박한 질문 앞에 우리를 세워놓는다. 그리고 추궁한다. 우리는 짐승인 것이냐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냐고. 그 고통스러운 질문을, 일상의 균열과 한밤의 악몽을 피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악몽은 언젠가 잔인한 현실이 되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5·18과 용산과 세월호가 그것을 입증해주었다. 이제 꽃이 핀 쪽으로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소설 말미에 나오는 이 문장은 작가 자신이 동호의 넋을 향해 건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또한 동호가 작가에게 하는 말로, 더 나아가 5·18의 넋들이 우리 모두에게 호소하는 말로 새겨들을 법하다. 최재봉 <한겨레> 문화부 기자 bong@hani.co.kr
소설 중간쯤에 등장하는 이 질문이야말로 <소년이 온다>의 핵심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의 의미는 34년 전 광주에서 벌어진 참극을 증언하고 고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정면으로 묻는다는 데 있다. 2009년 1월 서울 용산에서 벌어진 참극은 그 질문이 여전히 유효함을 새삼 상기시켰다. 용산은 바로 광주였던 것.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아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성격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세월호의 침몰 역시 마찬가지로 고통스럽고 절박한 질문 앞에 우리를 세워놓는다. 그리고 추궁한다. 우리는 짐승인 것이냐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냐고. 그 고통스러운 질문을, 일상의 균열과 한밤의 악몽을 피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악몽은 언젠가 잔인한 현실이 되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5·18과 용산과 세월호가 그것을 입증해주었다. 이제 꽃이 핀 쪽으로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소설 말미에 나오는 이 문장은 작가 자신이 동호의 넋을 향해 건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또한 동호가 작가에게 하는 말로, 더 나아가 5·18의 넋들이 우리 모두에게 호소하는 말로 새겨들을 법하다. 최재봉 <한겨레> 문화부 기자 bo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