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위중하던 저녁, 제가 침상 곁에 앉아 있는데, (엄성이) 그대의 편지를 꺼내더니 나더러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읽기를 마치자 눈물을 떨궜습니다. 이불 속에서 그대가 선물한 먹을 찾아 그 고향(古香)을 아껴 취해 향기를 맡고는 이불 속에 간직해두었습니다.” 홍대용은 답서에 이렇게 썼다. “철교(엄성)가 생사의 와중에 보여준 은혜와 사랑은 천륜의 형제와 다름이 없습니다.” 엄성과 홍대용의 국경을 뛰어넘은 우정은 이후 수많은 한·중 지식인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관계망을 만들어나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엄성의 친구 반정균은 과거에 급제해 관리가 되었고 훗날 베이징을 찾은 홍대용의 후배 박제가·이덕무 등과 교분을 이어갔다. 박제가·이덕무가 연암 박지원의 문인 그룹 일원이었기에, 한·중 지식인의 지적 네트워크, 지은이가 ‘문예공화국’(Republic of Letters)이라 표현하는 네트워크는 <열하일기>를 낳은 연암으로 이어진다. 북벌 국시는 이념논쟁으로 비화하고 홍대용의 청 선비들과의 교유는 북벌이 엄연한 국시이던 당시 주류 유학자들의 지탄을 받았다. 김종후는 “더러운 원수의 땅”을 밟았다고 비난했다. 이른바 ‘춘추의리론’에 입각한 북벌 국시 문제로 넘어가 순식간에 이념논쟁으로 비화했다. 홍대용의 단독 논전은 후배 박제가 등에게 바통이 넘겨지면서 북학의 새싹으로 자랐다고 지은이는 쓴다. 허미경 <한겨레> 문화부 기자 carmen@hani.co.kr
“병이 위중하던 저녁, 제가 침상 곁에 앉아 있는데, (엄성이) 그대의 편지를 꺼내더니 나더러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읽기를 마치자 눈물을 떨궜습니다. 이불 속에서 그대가 선물한 먹을 찾아 그 고향(古香)을 아껴 취해 향기를 맡고는 이불 속에 간직해두었습니다.” 홍대용은 답서에 이렇게 썼다. “철교(엄성)가 생사의 와중에 보여준 은혜와 사랑은 천륜의 형제와 다름이 없습니다.” 엄성과 홍대용의 국경을 뛰어넘은 우정은 이후 수많은 한·중 지식인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관계망을 만들어나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엄성의 친구 반정균은 과거에 급제해 관리가 되었고 훗날 베이징을 찾은 홍대용의 후배 박제가·이덕무 등과 교분을 이어갔다. 박제가·이덕무가 연암 박지원의 문인 그룹 일원이었기에, 한·중 지식인의 지적 네트워크, 지은이가 ‘문예공화국’(Republic of Letters)이라 표현하는 네트워크는 <열하일기>를 낳은 연암으로 이어진다. 북벌 국시는 이념논쟁으로 비화하고 홍대용의 청 선비들과의 교유는 북벌이 엄연한 국시이던 당시 주류 유학자들의 지탄을 받았다. 김종후는 “더러운 원수의 땅”을 밟았다고 비난했다. 이른바 ‘춘추의리론’에 입각한 북벌 국시 문제로 넘어가 순식간에 이념논쟁으로 비화했다. 홍대용의 단독 논전은 후배 박제가 등에게 바통이 넘겨지면서 북학의 새싹으로 자랐다고 지은이는 쓴다. 허미경 <한겨레> 문화부 기자 carme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