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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TV는 농산물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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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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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도 배달하겠다는 농고 출신 농사꾼 김수혁의 꿈, ' 농수산TV'에서 물결치다

사진/ 먹는 건 모두, 안 먹는 것도 다수! 그는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식품안전기술을 갖추겠다는 꿈도 꾼다.
농수산TV의 김수혁 사장(48)은 회사가 하는 일을 아주 쉽게 설명한다.

“TV 안에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옮겨 놓았습니다.” 소비자들은 기존의 홈쇼핑처럼 전화 한통으로 먹을거리를 주문하면 된다. 홈쇼핑 전문채널 농수산TV는 “국민의 식품문화를 선도하고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차원을 올린다”는 기치 아래 지난 9월 개국했다. 주로 취급하는 물품이 어떤 것들일까?

“우리가 먹는 농수산물 대부분을 다룬다고 보시면 됩니다.”

먹는 것은 거의 모두, 안 먹는 것도 다수 있다는 말이다. 푸른빛 비늘을 뒤척이는 생선에서 금방 버무린 김치, 잘 익은 과일과 구수한 된장. 지난 추석에는 진돗개도 팔았다(물론 애완용으로). 먹을거리가 아닌 것도 있다. 질그릇에서 김치냉장고, 공기청정 숯제품까지 없는 게 없다.


농수산물 먹고 배탈이 생기면?

“그간 업계에서는 우리를 방송으로 볼 것이냐 유통업으로 볼 것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결국 유통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재 인원 400여명으로 개국했지만 기존의 홈쇼핑채널 매출규모를 따라잡기란 시간문제가 아닌가 싶다. 무한성장궤도에 올랐다.

“맨 처음 주위 사람들은 우리 사업이 성공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안 된다, 어려울 것이다라는 근심의 주된 이유는 먹는 음식을 다루는 일은 위험부담이 크다는 데 있었다. 만에 하나 농수산물을 먹고 배탈이 생기면 그 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먹을거리 품질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농수산TV 상표가 붙은 음식은 가장 안전한 먹을거리라는 인식을 심는 데 전력투구할 것입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포에버 서비스’(직역하면 ‘영원한 서비스’라는 뜻이다) 보험상품도 준비해 두었다. 최고 30억원까지 책임지는 식품안전 보험상품이다. 주문에서 섭취까지 영구하게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앞으로 3년간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식품안전기술을 갖출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미국식품안전청(FDA)에 맞먹는 기관을 만들고 말겠다는 것이다.

“이건 아주 중요한 내용이니 받아 적으세요.” 김 사장의 충고에 따라 나는 그 말을 노트에 받아 적었다.

TV채널에서 고구마, 감자, 배추를 판다는 생각은 콜럼버스의 달걀 세우기와 비슷한 것이다. 일을 이루고 나면 누구나 할 수 있어 보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쉬운 ‘처음’을 모른다. 김 사장은 그 ‘처음’을 안 사람이다.

“농어민신문사 시절 92년도에 우루과이라운드 문제로 영국에서 열린 세미나에 갔다가 유럽여행중에 다채널, 홈쇼핑채널을 처음으로 보게 됩니다. 문득 텔레비전 안에 농수산물시장을 옮겨놓으면 참 재미있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후 잠시도 그 생각을 잊지 않았다. 그 구상의 끈을 부여잡고 어떻게 하면 TV와 농수산물을 잇나 하는 생각에 골몰했다. 그 사이 농산품 무역 일도 하고 작은 규모로 농산품 주문판매 광고회사를 차려 오늘에 이르기 위한 예행연습을 꾸준히 해왔다.

“그러던 중 98년도에 여건이 갖춰지면서 드디어 한번 해보자 한 거지요.”

“내 꿈은 언제나 최고의 농사꾼”

사진/ 김수혁 사장은 '아날로그 농수산업'과 'TV 홈쇼핑'을 연결하는 일은 결국 농업의 연장선에 있다고 믿는다.
그가 이 일을 하게 된 이유는 이 땅에서 농사의 의미를 가장 잘 아는 농부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향 정읍에서 농업고등학교를 나왔다.

“제 꿈은 대한민국 최고의 농사꾼이 되는 것이었어요.” 실전경험을 쌓기 위해 제주도 이시돌 목장에 가서 목축일을 배우고 김해 화훼단지에서 화훼절하 하는 것도 배웠고 통영에 가서 파인애플, 바나나, 열대과수 일도 배웠다. ‘유명한 농사꾼’이었던 그는 수십만평의 농장을 꾸리면서 새로운 작농법을 개발해내기도 했다. 머스크 멜론을 가장 먼저 시장에 상품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적인 농사일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는 농업정책이나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한 인식에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인식이 남달랐다.

“저는 75년도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해서 열심히 합니다. 그러다가 농민운동의 각도를 다시 보려고 서울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농어민 후계자 조직을 만듭니다. 또 농어민들이 주주가 된 농어민신문사 창립에 함께합니다.”

그는 자신의 지난 이력을 현재형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어법을 구사한다. 성문종합영어 시제편을 보면 이런 서술방식을 역사적 현재형이라고 설명하면서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너간다”라는 예문을 들고 있다. 역시 김 사장은 범인이 아니다. 농수산물업계의 시저라고 봐야 할까.

“요즘 신입사원들을 계속 채용하고 있습니다. 전 그 사람들 처음 출근하는 날 물어요, 여러분이 보기에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 사장? 아니다, 그는 자신이 꿈을 꾸는 사람으로 보이길 원한다.

“십년 전 농수산TV의 존재를 꿈꾼 덕분에 오늘 여러분과 마주 앉아 있다. 여러분도 꿈을 가지라. 보이스 비 앰비셔스!”

그가 어렸을 적 시골 들판은 얼마나 진흙창이었는지 사람 발에 있던 신을 빼앗기 일쑤였다. 그때 이렇게 마음먹었다. “이런 험한 길을 달리는 지프차가 있다던데, 나 크면 꼭 그런 거 몰고 다닐 거야.” 정확히 14년 뒤 그는 지프차 타고 구부렁길 자갈길 가리지 않고 다닌다. “인생에서 꿈이란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을 가진다는 것은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이미 그 가치가 있습니다. 실현하는 일은 다음 이야기이죠. 꿈이란 이루면 이뤄서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고 그 중에서 노력하는 가운데서 얻는 게 있는 것이니까요.”

그대 지금은 무슨 꿈꾸는가.

“농사지으러 가고 싶지요. 누가 뭐래도 행복하고 재미있을 자신이 있습니다. 제가 그때 농사를 지으면서 벌어진 어깨가, 그 힘이 이렇게 남아 있잖아요.” 그가 가슴을 떡 펴 보인다. 그 안으로 황금빛 들녘이 성큼 안기는 듯하다.

사람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 농사일을 하면서 살아오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신할 수 있단다. ‘아날로그 농수산업’과 ‘TV 홈쇼핑이라는 디지털’을 연결하는 지금 일도 결국 농업의 연장선에 있다는 말이다.

80년 5월, 배추는 썩었다

그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일을 못한다는 말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땅에서 농사짓기란 좀 고달픈 일이 아니던가.

“하하. 고생 좀 했지요.”

가볍게 받아넘긴다. “부모님께 건강한 몸과 농부의 아들이라는 것만 물려받았습니다. 제가 80년에 봄작물을 엄청 많이 짓습니다. 수백 트럭분의 채소를 생산합니다. 5월이면 채소를 출하해야 하는데 정읍을 중심으로 고속도로가 막힙니다. 트럭에 실린 채 검문소 앞에서 일주일씩 배추가 썩습니다.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그걸 생으로 길가에 파묻어야 했을 때 마음이야….” 그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도처에 많은 이들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농사지으면서 겪은 고생이라고 한다면 그때가 가장 힘들었지요. 게다가 가을에 냉해가 덮치는 바람에 피해가 겹쳤고, 글쎄요. 힘든 일이 생겨도 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요, 최악의 상황이 생긴다 해도 살아 있는 동안은 또다른 일이 생기니 그것은 그저 하나의 경험이다 이렇게 생각하지요. 하하하….”

그의 표정에는 매일매일 재미있고 유익한 새로운 발상들이 보태지고 더해지는 이 일이 너무나 즐겁다는 충일감이 흐른다. “우리요, 얼마 안 있으면 산소도 배달할 겁니다.” 기대하시라는 표정으로 한마디 던진다. “식품의 안전성을 지키려면 식품배송 문제가 최대의 관건인데요. 우리의 사업이 성공한다면 새로운 시스템의 택배문화가 정착된다는 말과 같은 것이지요.”

그는 물류를 꿈꾼다. 물 흐르듯이 유통업계의 대혁신을 이루고자 하는 또 하나의 꿈.

“통일이 되고 우리 땅에서 저 멀리 유라시아 벌판을 달릴 수 있게 되는 날, 물류유통은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로 발전할 겁니다.” 그 안에 농수산TV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한반도에서 출발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기차의 기적소리를 듣는다.

글 - 권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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