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독>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독이란 것은 본래 불가사의한 구석이 있다. 제3자가 볼 때는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여성 흡연자는 주로 숨어서 담배를 피우던 시절, 서울 퇴계로의 어느 외지고 으슥한 카페는 인근 온갖 회사 끽연 여직원들의 아지트였다. 센스 있는 주인은 오로지 담배를 맘 편하게 피우기 위해 자기네 가게를 찾는 여자들의 니즈를 금세 파악해 담배를 맡아주기 시작했다. 이 담배 ‘키핑’ 서비스는 순식간에 어둠의 경로로 소문이 났고, 점심때면 온갖 회사 유니폼을 입은 여성들이 한 명씩 몰려들었다. 주인은 빛나는 눈썰미로, 담뱃갑에 쓰인 이니셜만으로도 정확하게 담배를 가져다주었다. 점심때 각자 조용히 빠르게 열심히 피우고 사라졌던 여자들은 단 10분간 한두 개의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오후에도 잠깐 혼자씩들 뛰어와 비싼 커피값을 냈다. 남들 보기엔 정말 어이없었을 것이다. 그거 그냥 안 피우고 말지, 저게 뭐하는 짓이람. 그렇게 황당하고 멍청한 짓을 하게 하는 게 바로 중독이라는 기제다.
<인간중독>을 보고 여자 주인공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나는 그거야말로 제대로 된 설정이고 캐릭터에 어울리는 연기라고 생각했다. 와이프가 못됐고 매력 없었다면, 남자 주인공이 인생 바닥으로 떨어져 비루했다면, 그의 불륜과 파국은 좀더 말이 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아무 이유 없는 사랑. <인간중독>에는 끝장을 보는 외골수 사랑이 주는 쾌감이 있었다. 사랑이란, 온몸의 땀구멍에서 생기가 뿜어져나오고 몸 전체가 새로 조립되는 것, 이런 게 바로 살아 있는 거구나 하고 몸이 느끼는 것.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모든 세포가 일제히 떨리고 일별만으로도 가장 작은 돌기들까지 반응하며 여기도 내 몸의 일부였다고 새삼 깨닫게 하는 것, 몸의 어떤 곳에서는 신경의 핵과 영혼이 만나 우주를 관통한다는 걸 알려주는 것. 어떻게 살아도 한 세상인데, 저렇게 “사는 것처럼” 살다가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즉사하지 않아 영화적으로도 김진평 개인 관점에서도 안타깝지만, 그냥 다 놔버리고 갈 데까지 가는 파국의 사랑을 모처럼 보는 통쾌함이 있었다. 쓸쓸히 자기 삶으로 돌아가 각자의 길을 갔다는 식의, 부도덕한 사랑에게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영리한 선택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선택을 한 남자가 자기의 모든 것을 그 값으로 내주는 궁극의 사랑. 원하는 것도 참고 인내하며 일상을 소중하게 가꿔 사는 것도 인생이지만, 내 몸이 바로 나이며 몸이란 이렇게 타서 숯이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인생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은하 회사원·영화진흥위원회 <코리안 시네마 투데이>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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