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말고 나눠버려
지식 나눗셈 ‘얕은 지식’ ‘어쩌다 가게
등록 : 2014-05-28 14:51 수정 :
‘어쩌다 가게’ 트위터@donggyo148-12
나는 모닝 두 대를 모는데 어느 것도 내 소유는 아니다. 가족처럼 동네에서 어울려 지내는 친구 둘의 차를 필요할 때마다 빌려 쓰는 것이다. 대신 나는 주차의 달인이므로 자주 주차를 해주고(나의 별명은 발렛파커다) 가끔 기름을 넣는다. 차는 작지만, 다섯 명이 한 차를 타고 대전까지 칼국수를 먹으러 다녀오기도 하고 더 많은 사람이 두 대에 나눠 타고 부산까지 해수욕을 다녀오기도 하는데 아무 불편함이 없다. 이렇게 차를 나눠 쓴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
친구들끼리 일주일에 한 번씩 ‘얕은 지식’이라는 일종의 세미나를 한다. 걸핏하면 만나서 노는데 우리가 이럴 게 아니라 얕으나마 각자의 관심사나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을 나누어보자며 시작했다. 한 친구네 가게에 모여 발표자가 30분에서 1시간 정도 발표하는 걸 듣고 함께 얘기 나누는 것이다. 옷가게 하는 친구는 좋아하는 패션디자이너에 대해서, 전직 목수였던 친구는 목재의 종류와 가구 만들기에 대해서, 역학 공부하는 친구는 사주풀이의 기초에 대해서 발표했다. 요리사 친구가 나서서 요리를 해준 적도 있다. 전형적인 수박 겉핥기식 수업으로서,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별로 부담이 없지만 지식을 나누는 건 무척 재미있고 유익하다.
요즘 잘 가는 곳 중에 서울 동교동의 ‘어쩌다 가게’가 있다. 2층 주택이었던 곳을 개조해 미용실, 책방, 신발가게, 카페, 위스키바, 공방 등의 가게가 공간을 깨알같이 나눠 쓰며 입점해 있다. 각자의 공간이 있고 마당이나 홀은 다 같이 나눠 쓴다. 이 가게의 더 큰 특징은 ‘5년간 월세 동결’이라는 아름다운 조건에 있다 하겠다. 건물주의 횡포 앞에서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설움이란 이루 말할 데가 없는데 정부의 대책을 기다리며 한탄하기보다는 그냥, 건물 하나를 통째로, 5년 계약을 맺고 빌려서, 주의 깊게 설계를 해서 고친 뒤, 조그만 가게들로 나눠버린 것이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내 입에선 “이거야말로 사회운동이잖아”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끊임없이 더 큰 수익을 노리기보다는 일정 수익을 여럿이 함께 나누어버리는 것.
‘피케티 신드롬’이 일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자본수익률 때문에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쉽게 말해 돈 있는 사람만 계속 돈을 버는 자본주의의 맹점을 짚고 있다. 상위 2%의 사람들이 전세계 부의 절반 이상을 갖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 일일까? 분배의 문제, 나누기의 아이디어가 화두가 되고 있다.
얼마 전 ‘얕은 지식’의 멤버인 친구가 사무실을 얻었는데 나도 어쩌다 그 위층에 사무실을 얻어버렸다. 같이 있으면 테라스 등 공간도 나눠 쓰고 능력도 공유하고 좋을 것 같았다. 아래층 친구가 말한다. “와이파이 뭐하러 달아요. 우리 거 쓰세요.” 아싸! 그럼 이제 나는 또 뭘 나눠줄 수 있을까. .
김하나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저자·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