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깔=꿀색〉에서 벨기에로 입양된 융(오른쪽)은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친모를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에게 사랑을 쏟는 가족의 일원에서 자신이 제외될까 무의식중에 불안해한다. 그 사이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더욱 혼돈을 느낀다. 미루픽처스 제공
(위쪽부터)〈프랑스인 김명실〉에서 세실은 오랜 친구를 만나고, 그림을 그려 돈을 벌 고, 프랑스 엄마와 처 음 만났던 순간에 대 해 이야기를 나누며 일 상을 이어간다. 이토록 평범한 삶이지만 언제 어디서든 그는 늘 ‘다 른 사람’ 취급을 받는 다.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사람들은 그를 이방인이라 여긴다. 어뮤즈 제공
<프랑스인 김명실>에서 세실 또한 자신이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 보고 프랑스인이라고 생각을 안 해. 대부분은 외모를 보고 실수를 하게 되지. 예를 들어 누군가는 내게 베트남어로 좀 말해줄래? 라고 부탁을 하거나 중국어로 말해보라고 하지. …나 같은 경우에는 프랑스에서 커서 완전히 프랑스 문화권 아래에서 자랐는데도 어떤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이방인이라고 보는 게 이상하지 않아?” 망가지면 쉽게 버리는 장난감 해외입양인 보호단체인 ‘뿌리의집’ 김도현 원장은 한 칼럼에서 “어떤 입양인들은 자신들의 삶이 입양 부모들을 위한 이국적인 애완동물이나 관광 기념품처럼 여겨진 경험을 토로하기도 하며, 자선의 대상이나 박애주의의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간주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썼다. <피부색깔=꿀색>에서 융의 경험도 비슷하다. 처음에 그는 벨기에가 아닌 다른 국가의 부모에게 입양될 뻔했다. 하지만 서류에 쓰인 “코와 눈 사이에 검고 푸르스름한 상처가 있음. 넘어졌음”이라는 말이 그 부모가 입양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융은 이들에게서 귀엽고 건강한 강아지를 먼저 입양하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처우를 받았다. 입양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아이를 보내는 기관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인 김명실>에서 세실의 엄마는 세실과 만난 지 2주가 지난 뒤 전화를 한 통 받았다고 한다. 아이를 보내준 프랑스의 한 입양 사무국이었다. 입양된 아이를 캄보디아 사내아이로 ‘교환’해줄 수 있으니 원한다면 말하라고 했다. 그 뒤 입양기관과의 연락은 끊겼다. 세실은 자신이 입양되던 무렵, 해외입양아에게 관심을 쏟았던 부모가 스크랩해놓은 기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동양인 소녀를 안고 있는 금발 여인의 사진이 커다랗게 실린 기사 아래 달린 제목은 이렇다. ‘어린 소녀가 희망을 찾아오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기사는 한 입양 소년의 ‘성공적인’ 성장기를 실었다. 세실은 아름답고 영민하며 부모와 사랑을 주고받는 좋은 딸로 성장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우리는 완벽하게 입양에 성공했죠. 모든 면에서요”라고 말한다. 세실이 부모의 바람과 정반대의 삶의 향해 달려나갔다면 그녀의 부모는 먼 타국에서 온 아이에 대해 무엇이라 말했을까. 김도현 원장은 “입양 부모가 선의에 입각해서 입양을 했다고 하더라도, 입양이 입양 부모의 시선과 경험에서 해석되고 입양 부모들의 생의 성장과 행복의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에 대해 경계했다. <피부색깔=꿀색>에서 융이 1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같은 동네에 있던 한국 출신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자살을 택하거나 정신병원에 갇혔다. “일부 입양 가정을 보면 부의 상징으로 멋진 자동차와 한국인 입양아가 필수조건인 듯했다. 장난감이 망가지면 쉽게 버린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롭다. 우린 너무 귀여우니까.” 모두에게서 타인으로 여겨진 그들 1971년 9월 생후 1개월에 기차에 버려진 채 발견돼 스웨덴으로 입양을 간 이삼돌(토비아스 휘비네트) 박사는 <해외입양과 한국 민족주의>에서 한국 대중문화에 비친 해외입양인에 대한 문제의식을 분석했다. 이삼돌의 분석에 따르면 많은 대중문화 작품에서 “(한국 출신 해외입양자들은) 희생자인데다 어린아이처럼 능력을 결핍했기에, 굳건한 한국의 민족주의에 의해 그저 수동적으로 도움과 보살핌을 받기만을 기다리는 존재로 묘사된다. …백인다운 것과 서구는 질병과 부패를 의미하고, 양부모는 자기중심적이고 가학적”으로 그려진다고 썼다. 한국 출신 입양인은 전세계 해외입양 역사에서 지배적 다수를 차지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내외 입양 현황’에 따르면 2012년까지 국내 7만7082명, 해외 16만5367명 등 총 24만2449명의 아이들이 낯선 가정으로 떠났다. 이삼돌 박사는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다층적이고 다양한 삶이 무시되고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으로 동일화”돼 묘사되는 것을 지적했다. <피부색깔=꿀색> <프랑스인 김명실> 또한 부모나 국가로부터 버려졌다는 거대한 충격, 그로 인한 고립과 소외, 외로움과 낯섦 등의 지배적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작품에서 이들이 새로 얻은 가족은 결코 대립하고 극복해야 할 악의 세력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한편 두 주인공은 잃어버린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한국에 편입되고 귀속되길 원하지도 않는다. <피부색깔=꿀색> <프랑스인 김명실>은 한국인도, 유럽인도 아닌 모두에게서 타인으로 여겨지는 혼종적 상태의 이해를 그린다. 예컨대 <피부색깔=꿀색>에서 융은 10대 후반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며 가족과 벽을 쌓고 지내던 시절, 자신의 몸을 학대해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그에게 가장 무뚝뚝하고 엄격했던 어머니에 의해 ‘구조’된다. 이 사건을 통해 그는 오히려 가족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연대를 느낀다. 무의식중에 이들을 닮고 싶어 했지만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아프게 받아들인다. <프랑스인 김명실>에서 세실의 어린 시절은 아주 촘촘하게 재연되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가 보여준 몇 장의 사진만이 프랑스 소도시의 중산층 가정에서 관심과 사랑을 충만하게 받고 자란 아이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실로 세실은 가족과 좋은 유대를 이뤘다. 2009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세실은 예정된 한국 여행을 취소하고 오랫동안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야 할 정도로 큰 슬픔에 잠겼다. 그는 그렇게 견고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고 자신을 한국인보다는 프랑스인으로 여기고 있지만, 여전히 해외입양은 지양돼야 한다고 확신한다. 불행한 삶을 살았더라도 그 땅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자신의 뿌리에 대한 고민만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고통의 시간이 거듭되지 않길 “왜 한국은 여전히 해외입양을 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나라, 하지만 자신이 살았던 고아원의 위치를 찾은 것만으로도 기쁘고 그리운 곳이라는 이상한 고국. 그리고 여전히 화해할 수 없는 버려짐의 기억이 이들의 일상을 지배한다. 우리가 이 기사를 쓰고 읽는 이 시간에도 어떤 아이들은 자신이 정하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긴 여행을 떠나고 있을지 모른다. 여기서도, 거기서도 이방인으로 취급되며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죽을 때까지 품고 살아야 하는 괴로운 여정을 먼저 시작한 이는 고통의 시간이 다른 이에게도 거듭되지 않길 바랐다. 세실은 말했다. “어렸을 때, 내 사진을 본다면 알겠지만 얼굴에 빛이 없고 슬퍼 보였어. 내 생각엔 나를 포함한 아이들에게 사회가 해준 것이 없는 것 같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