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위의 1천번째 공연 대기록 “유행은 변해도 우리는 근본으로 회귀한다”
네명의 주인공들은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웅성거리던 객석이 이내 조용해졌다. 관객이 공연을 즐길 마음의 준비를 하며 숨을 죽이는 순간, 시나위 멤버들은 동시에 몸을 움직이며 연주를 시작했다. 동시에 청중의 예상보다 한 박자 빠르게 터져나온 격렬한 전자음이 순식간에 공연장을 휘감았다. 그룹 시나위의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지난 10월20일 서울 연세대 대강당 무대에 오른 시나위는 평소 공연장에서 보여주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번 공연의 의미는 그동안 해온 공연들과 사뭇 달랐다. 이날은 시나위의 ‘1천번째 공연’이었다. 지난 1983년 기타리스트 신대철, 보컬 김종서 등이 모여 시나위가 탄생한 이후 18년 동안의 세월 속에서 일궈낸 대기록이었다.
의미심장한 <두 돼지>
이날 공연은 3년 만에 음반 8집을 내고 처음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시나위 단독 공연으로도 거의 1년 만이었다. 공연을 시작하는 첫 번째 곡은 새 음반에서도 첫곡으로 수록된 <두 돼지>였다. 그리고 그 가사는 자못 의미심장했다. “썩어빠진 차례, 짜맞춰진 조작… 버려버린 양심, 돼지 같은 접대, 나는 1위지, 모방의 승리….” 상식과 실력이 통하지 않는 지금 대중음악계의 스타시스템에 대한 냉소가 가사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두 돼지>를 작곡해 수록했다. 또한 이날 오프닝곡으로 고른 것은 바로 요즘 시나위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시나위. 수많은 가수와 그룹이 명멸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인기 여부를 떠나 그 이름만으로 존재 가치를 지니는 거물 밴드다. 그것은 시나위가 18년이란 오랜 세월을 버텨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헤비메탈 음반을 낸 밴드, 그래서 소수만의 언더음악이었던 헤비메탈을 대중가요의 한 부분으로 처음 편입시킨 것이 바로 시나위다. 음악적 성과로도 시나위의 위상은 분명하다. 특히 2집 음반은 대중음악 음악평론가 누구나 꼽는 명반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시나위란 이름에 무게가 실리는 중요한 이유는 시나위가 실력파 록 뮤지션들의 양성소였다는 점이다. 김종서와 임재범, 강기영과 김성헌, 김바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서태지까지 모두 시나위에서 음악적 성숙기를 보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생명력이다. 지난 91년 해체되는 아픔을 겪고서도 3년 뒤 다시 결성되는 등 저력이 도드라진다. 80년대 중반 함께 출발했던 수많은 밴드들, 바퀴자국과 아시아나, 백두산, 외인부대와 카리스마 등 그 많던 밴드들이 오간데없이 사라진 지금, 시나위는 80년대 록계 최후의 ‘생존자’이자 2000년대 록계의 맏형이다. 그러나 지금 가요판의 흐름으로 볼 때 이들의 존재는 그야말로 ‘생존’ 그 자체가 의미있을 정도다. 이처럼 오랜 연륜과 음악적 비중을 가진 장수 밴드는 한낱 언더그라운드의 맹주일 뿐이다. 아직도 시나위가 몇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노릴 힘을 지녔다고는 해도, 스스로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보다는 만들어진 가수들을 선호하는 요즘 가요판의 풍토 속에선 이물질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시나위의 이런 처지는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한 한국 록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두 돼지>의 노래말에 담겨 있는 분노는 바로 그런 현실과 타협할 수 없는 자존심이자 스스로를 위안하는 절규다. 원형적인 록음악 고집
공연을 앞두고 마무리 연습이 한창이던 지난 17일. 그들은 공연을 앞둔 들뜬 기대감과 함께 현실에 대한 좌절감이 묘하게 맞물려 있었다. “시나위란 이름이 갖는 의미요? 우리나라에서 그런 거는 중요하지 않아요. 허울 좋은 비중일 뿐이죠.” 리더 신대철(34)씨의 말투는 자조적이기까지 했다. 드러머 신동현(31), 베이시스트 김경원(28), 그리고 보컬 김용(25)씨 등 만만찮은 나이의 다른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공연장에서는 당당하고 힘이 넘쳐도 무대 뒤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고통스러운 것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록음악을 하는 보람이랄까, 그런 걸 느껴본 지 너무 오래됐어요. 우리는 그냥 록음악이 좋고 그래서 이 음악을 계속 하는 것인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까. 그리고는 이렇게 요구하죠. ‘세상이 이러니까 너희들이 세상에 맞춰라’라고.”
사실 바뀐 것은 세상이다. 이들은 처음 록 밴드를 시작했던 그 시절 그대로 지금까지 살아왔을 뿐이다. 로커로서의 외모도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그저 머리 긴 평범한 대학생처럼 수수해 보일 정도다. 온갖 색깔 염색과 번쩍이는 의상을 총동원하는 요즘 다른 가수들, 그리고 길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요란한 행색의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차분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크로스오버니 퓨전이니 하는 새로운 시도들보다는 기본적이고 원형적인 록음악을 고집하는 것이다. 그게 고리타분해 보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해도.
그래서 시나위가 바라는 것은 록이란 음악과 록 밴드를 그냥 그대로 보아달라는 것뿐이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요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제도권(공중파 방송)에 나갈 수도 없고, 어쩌다 나가려면 바로 머리를 깎으라는 음악과는 상관없는 요구를 하고…, 그런 걸 보면 지금이 정말 21세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워요.”
얼터너티브 시도하다 다시 하드록으로
대중음악판 사람들은 너무 약고, 유행은 너무 빨리 변한다. 하지만 시나위는 그러지 못하고, 그러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더 근본으로 회귀하고 있다. 바보같아 보여도 그게 록을 하는 천성이라고 했다. 새 음반은 정통 록을 지향한다. 1970년대 하드록은 아직도 이들에겐 모범이다. 한때 변하는 세태를 좇아 얼터너티브 음악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시나위는 하드록으로 되돌아왔다.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의 갈길이 ‘정통성’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우린 그렇게 약게 살지 못하겠어요. 제가 생각해도 좀 미련하다고 할까, 낙오자죠.” 그래도 한국 대중음악사에 자기 이름을 분명히 남길 밴드가 스스로를 낙오자라니. “사실이잖아요. 그런 생각을 음악으로 만들면서 극복하면 돼요.” 새 노래 <낙오자의 꿈>은 바로 그렇게 만들어졌다. “과거에 매달린 채 애원하지마, 더러운 습관처럼”이라는 노래말처럼, 이들은 과거는 잊은 듯했다.
어느새 공연은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시나위의 공연이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들도 이어졌다. 강기영, 손성훈, 김바다 등 시나위가 배출한 로커들이 이날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어 시나위를 이어가고 있는 지금 멤버들은 선배들이 불렀던 <크게 라디오를 켜고> <새가 되어가리> 등의 옛 히트곡으로 화답했다.
공연 전 인터뷰에서 상심을 내보였던 그들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무대 위에서 마지막 에너지까지 연소시키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록의 매력은 결국 공연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 증폭된 전자음이 심박수를 높이는 그 상승감, 그건 무대 위의 연주자나 듣고 있는 청중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시나위와 그들의 팬은 라이브 무대에서 만나오고 있다. 앞으로도 이 만남은 쉽게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1천번이나 만나왔던 것처럼.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사진/ 지난 20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1천회 공연은 시나위의 저력과 생명력을 보여준다.
이날 공연은 3년 만에 음반 8집을 내고 처음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시나위 단독 공연으로도 거의 1년 만이었다. 공연을 시작하는 첫 번째 곡은 새 음반에서도 첫곡으로 수록된 <두 돼지>였다. 그리고 그 가사는 자못 의미심장했다. “썩어빠진 차례, 짜맞춰진 조작… 버려버린 양심, 돼지 같은 접대, 나는 1위지, 모방의 승리….” 상식과 실력이 통하지 않는 지금 대중음악계의 스타시스템에 대한 냉소가 가사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두 돼지>를 작곡해 수록했다. 또한 이날 오프닝곡으로 고른 것은 바로 요즘 시나위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시나위. 수많은 가수와 그룹이 명멸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인기 여부를 떠나 그 이름만으로 존재 가치를 지니는 거물 밴드다. 그것은 시나위가 18년이란 오랜 세월을 버텨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헤비메탈 음반을 낸 밴드, 그래서 소수만의 언더음악이었던 헤비메탈을 대중가요의 한 부분으로 처음 편입시킨 것이 바로 시나위다. 음악적 성과로도 시나위의 위상은 분명하다. 특히 2집 음반은 대중음악 음악평론가 누구나 꼽는 명반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시나위란 이름에 무게가 실리는 중요한 이유는 시나위가 실력파 록 뮤지션들의 양성소였다는 점이다. 김종서와 임재범, 강기영과 김성헌, 김바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서태지까지 모두 시나위에서 음악적 성숙기를 보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생명력이다. 지난 91년 해체되는 아픔을 겪고서도 3년 뒤 다시 결성되는 등 저력이 도드라진다. 80년대 중반 함께 출발했던 수많은 밴드들, 바퀴자국과 아시아나, 백두산, 외인부대와 카리스마 등 그 많던 밴드들이 오간데없이 사라진 지금, 시나위는 80년대 록계 최후의 ‘생존자’이자 2000년대 록계의 맏형이다. 그러나 지금 가요판의 흐름으로 볼 때 이들의 존재는 그야말로 ‘생존’ 그 자체가 의미있을 정도다. 이처럼 오랜 연륜과 음악적 비중을 가진 장수 밴드는 한낱 언더그라운드의 맹주일 뿐이다. 아직도 시나위가 몇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노릴 힘을 지녔다고는 해도, 스스로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보다는 만들어진 가수들을 선호하는 요즘 가요판의 풍토 속에선 이물질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시나위의 이런 처지는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한 한국 록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두 돼지>의 노래말에 담겨 있는 분노는 바로 그런 현실과 타협할 수 없는 자존심이자 스스로를 위안하는 절규다. 원형적인 록음악 고집

사진/ 연습중인 시나위 멤버들. 변방의 장르인 록을 함께 지키는 동료애로 뭉쳐 있다.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