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감독’이라는 타이틀도 곧 사라질 것… 주변인들의 남루한 삶 계속 그릴 계획
96년 <세친구>로 데뷔한 임순례 감독이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고 새 작품을 내놨다. 학교와 가정, 사회의 일상적 폭력 사이에서 침잠하듯 무너져가는 스무살 젊은 이들을 그린 <세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닮은 듯 다른 영화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작품은 잘 나가기보다는 몰락하고 옹색한 밴드 연주자의 삶을 그린다. 고등학교 시절 비틀스를 꿈꾸던 한 밴드 기타 연주자가 “밤업소의 비틀즈”로, 실상은 그보다 더 형편없는 ‘반주자’로 살아가면서 겪는 피로와 좌절감이 감동의 차분한 시선을 통해 관객의 가슴 속으로 깊숙이 다가온다. 임순례 감독은 초기 단편작 <우중산책>을 비롯해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 영화도, 텔레비전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좀처럼 쳐다보려하지 않는 주변부 인간들의 삶을 응시한다. 남성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이렇듯 주변부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데는 태생이 이미 비주류인 그의 성(性)이 무관치 않아 보인다.
새 작품 구상에 무지 오랜 시간을 공들인 것 같다.
= <세친구> 끝나고 시골에서 2년 동안 아무 생각없이 쉬면서 살았다. 매일 아침 등산하고 약수 뜨고, 간간이 근처 대학 강의도 나가면서 평온하게 사는 게 너무 행복해서 영화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와이키키…>의 구상을 하게 된 건 백지상태로 서울에 올라온 뒤, 99년 중반부터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출발지점은 어디인가.
= 캐릭터나 주제보다 공간에서 출발했다. 퇴락한 유흥도시와 와이키키라는 단어가 주는 부조리한 느낌이 있다. 80년대 부곡하와이니 수안보와이키키니 하는 이름의 유흥도시들이 반짝한 적이 있다. 그러나 90년대 들면서 완전히 쇠락했다. 취재차 가보니 당시 수안보의 상징이었던 와이키키 호텔도 거의 개점휴업상태였다. 쇠락한 유흥도시, 지하 카바레, 이런 것들과 끈적하게 얽히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카바레 반주밴드가 주인공이 됐다.
밴드영화라서 그런지 음악 사용이 돋보인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사랑밖엔 난 몰라> 공연장면이 인상적이다. = 고등학교 때 많은 아이들이 선망하는 밴드는 순수성이나 미래에 대한 꿈의 반영체다. 이들이 학창 시절 연주하던 음악과 나이 들어 업소에서 연주하는 음악은 어린 시절의 이상향과 남루한 현실의 대비를 잘 나타내줄 것 같았다. <세친구>에 이어 또 남자 이야기냐는 여성 팬들의 푸념도 많다. = 의도적으로 남자 이야기를 한다거나 남성들의 세계를 그리는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배치되는 인물이 두 작품에서 남자였을 뿐이다. <세친구> 때 말하고 싶었던 건 한국사회의 폭력성이었다. 학교폭력, 군대폭력을 뺄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남성이 주인공이 된 거다. <와이키키…>에서 꿈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는 주인공이 카바레 밴드 연주자이다보니 남자주인공이 된 거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폭력성이나 몰락한 꿈에 대한 서글픔 같은 건 소시민이라면 남녀를 불문하고 공유하는 정서가 아닐까? 충무로에 여성후배들이 부쩍 늘어났다.
= 정말 반가운 일이다. 여성감독이 많이 나올수록 한국영화가 다양해질 것이다. 같은 영화를 만들더라도 여성감독은 자신의 스펙트럼이 강한 편이다. 영화문화 자체가 아직도 남성중심적이고 다른 분야처럼 인맥, 학맥 등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에 여성이 진입하는 건 그런 고리를 깰 만큼 재능을 검증받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여성감독으로 산다는 것은?
= 다른 분야의 여성들이 느끼는 정도의 불편함 정도가 아닐까? 사회가 변화면서 영화판도 변했다. 그만큼 여성들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조금 지나면 감독이라는 직함 앞에 붙는 여성이라는 타이틀도 사라지게 될 거다.
여성감독이 만드는 여성 캐릭터도 만나보고 싶다.
= 참고로 다음 작품은 사춘기에 막 들어선 여자아이들이 공차는 이야기다. 그러나 어떤 성이건 연령이건 내가 스크린에 올리고 싶은 인물은 외형적으로 그다지 매력도 없고, 행복해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은 초라해보이지만 세속적 기준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보다 구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와이키키…>에 등장하는 너훈아나 이엉자를 보면서 “너 가짜지” 하고 무시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 속아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인물들을 영화에서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관객 가까이 데려갈까가 내가 풀어가야 할 숙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밴드영화라서 그런지 음악 사용이 돋보인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사랑밖엔 난 몰라> 공연장면이 인상적이다. = 고등학교 때 많은 아이들이 선망하는 밴드는 순수성이나 미래에 대한 꿈의 반영체다. 이들이 학창 시절 연주하던 음악과 나이 들어 업소에서 연주하는 음악은 어린 시절의 이상향과 남루한 현실의 대비를 잘 나타내줄 것 같았다. <세친구>에 이어 또 남자 이야기냐는 여성 팬들의 푸념도 많다. = 의도적으로 남자 이야기를 한다거나 남성들의 세계를 그리는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배치되는 인물이 두 작품에서 남자였을 뿐이다. <세친구> 때 말하고 싶었던 건 한국사회의 폭력성이었다. 학교폭력, 군대폭력을 뺄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남성이 주인공이 된 거다. <와이키키…>에서 꿈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는 주인공이 카바레 밴드 연주자이다보니 남자주인공이 된 거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폭력성이나 몰락한 꿈에 대한 서글픔 같은 건 소시민이라면 남녀를 불문하고 공유하는 정서가 아닐까? 충무로에 여성후배들이 부쩍 늘어났다.

사진/ 5년 만에 임순례 감독이 내놓은 신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비틀스를 꿈꾸다 "밤업소의 비틀스"가 된 30대 남성의 남루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