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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리를 구원할 방주는

인류라는 사악한 종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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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22 16:53 수정 : 2014-04-2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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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노아>는 인류 역사에 관한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준다. 태곳적의 대홍수는 성경 노아의 방주를 통해서뿐 아니라 여러 문화권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역사적 사실인 것 같다. 화산 대폭발이든 운석의 충돌이든 어떤 형태론가 일단 커다란 불길이 있었고 곧 엄청난 대홍수가 닥쳤다는 설명이 잉카, 수메르 등 여러 문명권의 전설로 전해진다. 그 대홍수가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까지 휩쓸었는지는 알 길 없으나, 기록이 남아 있는 문명들로 유추해볼 때 적어도 아메리카, 중동 그리고 유럽과 아프리카 일부는 그 홍수의 영향권이었고, 재난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오늘날 인류 조상의 일부가 된 것 같다.

영화에 나오는 거인들(Watchers·감시자들)의 존재도 흥미롭다. 창세기에는 ‘네피림’이라는 이름의 거인족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대홍수 전후로 위대한 현자 거인들이 있어서 이들이 피라미드도 마추픽추 성벽도 페루의 나스카 돌그림도 이스터 석상도 가능케 했다는 <신의 지문>(그레이엄 핸콕)류의 해석은, 지구에 살았다는 또 다른 인류- 우리처럼 능력이 비루하거나 본성이 옹졸하고 탐욕스럽지 않은- 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며, 한편으로는 우리의 멸망 이후 또 새로운 인류가 출현해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살지 않을까 하는 공상도 가능케 한다.

지구의 멸망은 인류의 오랜 공포였지만 일부에게는 또 희망이기도 한 채 사람들 머릿속에 머물러왔다. 영화 속 노아도 학을 떼며 말하듯이, 개별 인간이 어떻고를 떠나 이 인류라는 종 자체가 이기적이고 욕망으로 가득하고 비겁하고 우둔하다. 모든 생물 종 중에 유일하게 사악함과 비열함을 속성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노아는 진리와 자유를 희구하는 인간의 긍정적 성격조차 부정한 채 자신을 포함해, 인류를 절멸시키고 창조자가 만든 모습 그대로의 아름다운 동산을 돌려놓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자기만이라도 창조주의 원뜻에 맞게 살고 싶었던 노아지만, 여러 다른 족속들을 만나며 그들의 악행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자기와 자식들을 포함해 인류란 그저, 물로든 불로든 싹 쓸어버려야 하는, 창조주의 완벽한 정원의 오점일 뿐이다.

성경에 따르면, 신은 대홍수 뒤 무지개를 보여주며 이제 다시는 물로 세상을 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신은 그 약속을 적어도 지금까지는 지켜왔지만, 물의 재난은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아직도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천안함에서, 체력수련 바다 훈련에서, 그리고 세월호에서 물속에 희생된 소중한 영혼들이 부디 큰 고통 없이 가셨기를, 이젠 편안히 쉬시기를. 오늘날 우리에게는 고작 한 가족을 구원할 만한 방주도 없는 것 같다.

오은하 회사원·영화진흥위원회 <코리안 시네마 투데이>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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