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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모든 스콰터는 제작자다

문래동 ‘디스코테크’ 만들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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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28 17:12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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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빛나 제공
지난번 글에서 ‘디스코테크’(Disco-Tech)라는 현혹적인 이름을 가진, 그러나 그다지 별일은 없을 거라 짐작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는 소개를 했다.

한 가지 공사 과정에서 우리를 괴롭혔던 것이 있는데 바로 ‘평’(平)이었다. 이것에 비한다면 노후로 인한 누수 같은 문제는 대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바닥이 수평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사실, 심지어 벽도 수직으로 서 있지 않다! 홀리 ! 그렇지 않아도 야매스러운 목공 실력에 수평·수직의 기우뚱함 위로 작은 복층 공간까지 만들었으니 그 노고를 짐작하겠는가. 어쨌든 이 엇나가는 공간의 까칠한 매력, 우리도 이제 제어가 안 된다. 흔들흔들 튼튼하게 지었으니 놀러와서 즐겨달라. 어쨌든 10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꼴을 갖춰간다. 주거를 포함해 늘 몇 가지 안 되는 옵션에서 공간을 선택하는 것에 익숙한 게 우리네 인생인지라, 물리적으로도 개념적으로도 직접 공간을 제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그 전에 ‘내가 어떤 공간을 원하는가’란 소박한 상상조차 감히 해보기 쉽지 않은 시대지 않은가.

이런 공간의 생산에서 우리가 가장 감흥을 받았던 곳을 얘기하자면 아무래도 ‘스’(Squat)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점유·점거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스(헬스클럽에서 하는 구부리기 자세도 스 맞다. 그 쪼그리고 앉는 포즈에서 의미가 파생됐다고)은 사실 이런 단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세계적으로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왔다.

서울에서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무허가 판자촌 역시 스의 한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요, 재작년 많은 도시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난 점거운동도 스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점거가 민사 문제로 다뤄지고 주거권까지 인정받기도 하는 서유럽의 경우는 좀더 예술적인 방식을 많이 보게 된다. 이는 서유럽의 높은 지대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빈 건물을 점거하고 공동의 옷장과 식당을 만들고 작업실을 만든다. 물론 합법적 지위를 획득하면서 그저 그런 아틀리에로 바뀌거나 유명세를 치르며 힙스터(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좇는 부류)를 끌어모아 주변을 관광지화해버리는 아이러니 역시 되풀이돼온 레퍼토리지만 말이다.

어쨌든 스 공간은 제작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의식주와 놀이까지 가능한 공간을 주워온 재료들로 만드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모든 스콰터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그냥 뛰어난 제작자들이다. 뭔가 한국의 상황에서는 너무 과격하게 보이는가? 그럼 그냥 공간의 전유, 용도 변경의 의미로 이해해보자. 서울 문래동의 쇠락한 철공소에 스며든 작업자들이 오늘도 하고 있는 일이 그런 것이니. 어쨌든 그 도도한 역사의 기개를 가슴에 품고 오늘도 소심한 스콰터의 마음으로 공간을 만들고 있다. 우리의 이 야매 창조성도 이 동네의 지대 상승에 또 한몫하겠지만 말이다.

최빛나 청개구리제작소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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