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팟캐스트는 좋아하는 책을 다시 읽듯, 다시 ‘듣고 싶은 책’을 언제든 꺼내 반복 청취할 수 있다. 서점, 출판사, 개인 등 다양한 뿌리를 둔 책 팟캐스트들이 취향에 따라 세분화해 애서가를 매혹한다.윤운식
책 수다는 끝나지 않았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 하고 서평의 힘은 쇠약해지고 있지만, 책 이야기에 여전히 귀가 솔깃한 사람들이 있다. 책에 관한 팟캐스트가 넘쳐나는 가운데 또 하나의 팟캐스트가 서가에 꽂혔다. 2월11일 첫 방송과 18일 두 번째 방송을 한 <낭만서점>은 온·오프라인 서점 교보문고에서 개설한 팟캐스트다. 소설가 정이현과 문학평론가 허희가 진행한다. 2012년 5월 위즈덤하우스에서 개설한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시작으로 기존 팟캐스트 시장은 창비, 문학동네, 휴머니스트 등 출판사를 중심으로 꾸려졌다. 여기에 출판편집자, 애서가 등 개인이 만든 팟캐스트들이 가세하면서 가지를 뻗어간 팟캐스트를 꼽아보면 20개가 넘는다.
취향대로 관심사대로 도란도란
오래된 동네 서점에 가면 어디에 무슨 책이 꽂혀 있는지, 누가 낸 책이 얼마나 좋은지 혹은 전작에 비해 형편없는지 책의 안과 밖을 시시콜콜 아는 서점 주인이 있었다. 강호의 비평가 같았던 그 주인장들은 동네 서점이 사라지면서 더 깊은 강호로 깃들이고 말았다. 책을 말하는 팟캐스트들이 어쩌면 사라진 이들의 역할을 대신할지도 모른다. 작은 서점들이 사회학·역사서·문학·잡지 전문 서점 등으로 세분화했듯, 다양해지는 책 팟캐스트들도 각자 자기 색깔을 띠며 취향과 기호를 드러내 청취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지고 있다.
팟캐스트 <낭만서점>을 진행하는 문학평론가 허희는 “낭만과 서점이라는, 이 시대의 가장 힘없는 두 단어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예의 책방 주인과 단골처럼 도란도란 책 수다를 떠는 작은 공간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같은 방송을 진행하는 소설가 정이현은 2월19일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나의 취향이라고 하면, 작고 좋은 책들”이라며 방송의 색깔을 드러냈다. 그래서 녹음을 마친 다음 회에는 소설 <적>을 소개할 예정이다. “다음 주제가 모방인데, 이 테마에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자기 모방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프랑스에서 진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실화소설이다. 신분을 위장해 평생을 살다 온 가족을 살해하고 자기만 살아남게 된 인물이 등장한다. 좋은 소설인데, 그렇게 많이 팔리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낭만서점>은 화제의 책, 베스트셀러보다는 작고 반짝이는 책들에 주목한다. 요리책, 인문서, 이주노동자의 수기 같은, 어려워진 도서시장에서 주목받을 시간이 적었던 책들이 꾸준히 소개될 예정이다.
책에 관한 팟캐스트 중 현재 가장 많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이 동네 터줏대감 격이다.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고정 게스트인 소설가 김중혁이 책에 관한 내밀한 수다를 나눈다. <…빨간책방>이 두 진행자의 대화 위주라면 법학자 김두식 교수와 소설가 황정은이 진행하는 <라디오 책다방>은 한 테마나 책에 관해 2회씩 방송을 묶어 한 번은 진행자들의 책 이야기, 한 번은 저자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구성돼 있다. 다양한 영역의 저자가 게스트로 등장하고, 법학자와 소설가인 두 진행자의 취향이 충돌하면서 책을 바라보는 조금 다른 시각도 듣는 재미를 더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진행하는 <문학동네 채널1: 문학이야기>는 시종일관 진지하다. 하지만 독자들의 감상문도 받는 등 청취자와의 소통에 적극적이다. 진지하지만 작품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평론가의 시선이 돋보인다.
유명 진행자가 아니라도 책의 뒷이야기나 타인의 독서 취향이 궁금한 이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 팟캐스트도 있다. 출판편집자와 인터넷서점 MD 등이 진행자로 나서 ‘출판계 해적방송’을 지향하는 <뫼비우스의 띠지>나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고 진행자의 감상을 밝히는 <네시이십분 라디오> <책벌레 팟캐스트 북남북녀> 등이 그것. 장르를 차별하지 않고 한 권의 책을 정해 일부분을 읽어주는 <읽어드림>은 일종의 오디오북이다. “보통 잠자리에 들기 전에 켜놓고 들었는데, 이틀째 같은 부분에서 잠이 들어버려 오늘 밤은 세 번째 도전”이라며 소감을 밝히는 청취자를 비롯해 여행 가는 기차에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누군가 조근조근 읽어주는 문장에 귀를 기울인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영하의 책 읽는 소리
<…빨간책방>을 시작으로 출판사와 개인이 연이어 책 팟캐스트를 개설하면서 올해까지 붐이 이어지는 듯하지만 사실 책 이야기는 이전부터 사람들의 귀를 붙들었다. 2010년 소설가 김영하가 시작한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은 제목 그대로 꽤 긴 분량의 문장이 이어진다. 이렇게. “파리 몽마르뜨르 오르샹가 79번지 2호의 4층에 매우 선량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디튀유일이라고 불리는 그 남자에게는 특이한 능력이 하나 있었다….” 최근 방송인 1월8일자 마르셀 에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편에서 김영하 작가는 3분여간 자신의 근황을 전달한 다음 청취자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1시간이 넘도록 계속된 낭독이 끝나고 책을 읽은 작가의 짧은 감상과 평이 이어진다. 이처럼 말 그대로 듣는 책을 표방한 팟캐스트들 또한 꾸준히 인기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보다 앞서 인터넷 라디오 문학 방송 <문장의 소리>도 있다. 2005년 문학 사이트 ‘사이버 문학광장’에서 김선우 시인이 진행을 맡으며 첫 방송을 시작했다. 당시 방송은 유명 작가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였다. 현재는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사이버 문학광장은 지난 1월 말 신진 작가들이 참여한 팟캐스트 <파문>도 시작했다.
“경쟁이 아니라 뭔가 하나씩 띄우는 것”
청각을 자극한 방송은 시각과 촉각의 경험인 독서로 이어지도록 한다. “방송을 듣고 오늘 다룬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은 읽어도 들어도 좋다”. 책 팟캐스트 페이지에 올라오는 청취자들의 댓글이다. 종이책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점치는 이가 많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첨단 기술의 첨병을 통해 가장 아날로그적인 경험을 은밀하게 이어가고 있다. 정이현 작가는 그래서 “책 팟캐스트가 서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드넓은 취향의 바다에 우리도 뭔가 하나를 띄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방송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10개, 20개 늘어도 좋다”며 책 팟캐스트가 다양성을 더해가길 바랐다. 그러므로 A. M. 홈스의 소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제목처럼 거창하진 않더라도, 취향에 따라 점차 세분화하는 이 작은 방송들이 어쩌면 우리의 일상 정도는 구할지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