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승부에 휘둘리는 한국의 학원스포츠…탄탄한 기본기, 과학적인 훈련이 부럽다
“한 30분만 기다려.”
“오늘 하루만 좀 거르면 안 되니?”
“밥은 걸러도 마무리 훈련은 거르면 안 돼.”
30대가 주축되야 강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야구팀 ‘드림팀 1’에 뽑혔던 박재홍(28·현대 유니콘스)은 친구 사이인 박찬호(28·LA다저스)와 훈련을 끝내고 차 한잔을 하는 데도 인내를 가져야 했다. 박찬호가 모든 훈련을 끝내고 나서도 개인 마무리 훈련을 30분가량 꼬박꼬박 했기 때문이다. 박찬호로 볼 때는 훈련을 끝내고 마무리 훈련을 하는 게 몸에 밴 것이지만 한국 선수들에게는 낯설었다. 그만큼 메이저리거는 훈련이나 경기를 하기 전의 스트레칭과 훈련이 끝난 뒤 마무리 훈련은 상식으로 돼 있다. 그러나 한국 스포츠의 풍토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LA다저스에서도 박찬호를 ‘드림팀 1’에 파견하는 대신 피지컬트레이너, 즉 물리치료사를 대동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LA다저스에서 파견한 피지컬트레이너는 박찬호가 한국에서 훈련을 할 때는 물론 방콕아시안게임이 벌어지는 기간 내내 박찬호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돌봐줬다. 2002 한·일 월드컵축구대회에 대비해서 거액을 주고 영입한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 지난 5월31일 벌어진 컨페더레이션스컵대회 개막전에서 프랑스에 0 대 5로 대패한 데 이어 8월 체코와의 원정경기에서도 역시 0 대 5로 완패당해 축구 팬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지만 아직 선수들에게만은 인기가 높다. 훈련방법도 새롭지만 훈련을 마치고 축구장 잔디를 맨발로 밟으면서 피로를 풀어준다거나, 반드시 샤워를 하도록 하는 등 깔끔한 마무리를 해주기 때문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눈앞의 성적보다는 항상 선수의 몸상태를 염려하고 현재보다는 미래를 우선시한다. 세계 스포츠의 양대 산맥은 유럽과 미국 스포츠계다. 유럽은 프로축구, 미국은 메이저리그, NBA로 대표된다. 유럽과 미국 스포츠의 공통점은 프로화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선수관리에 노하우가 있다. 유럽축구는 이탈리아 프로축구의 세리에A, 독일의 분데스리그,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등 1부리그만 수백개 팀이 있지만 어느 팀이나 30대 중반의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독일의 클리스만, 루마니아의 게오르게 하지 등 최근 각 나라를 대표했던 선수들은 거의 모두 40대 안팎의 불혹의 나이에 선수생활을 끝냈다. 축구의 전설로 통하는 브라질의 펠레,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오, 독일의 베켄바워, 네델란드의 요한 크루이프, 옛소련의 야신 골키퍼 등은 40살 넘거나 40대 중반까지도 젊은 선수들과 기량을 겨뤘다. 메이저리그는 유럽축구보다 더하다. 김병현 선수가 속해 있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팀의 스타팅 멤버를 보면 김병현을 제외한 선수 전원이 30대 중반의 선수로 짜여질 때도 있다. 메이저리그 30개 팀 가운데 성적이 좋은 팀은 30대 중반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다. 2001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8강을 보면 뉴욕 양키즈, 시애틀 매리너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이상 아메리칸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이상 내셔널리그) 등 7개 팀의 주축 선수들은 거의 30대다. 오직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한팀만이 20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학부모 눈치 보다 보니…
올해 메이저리그 홈런 역사를 바꿔놓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배리 본즈. 배리 본즈는 98년 마크 맥과이어가 세웠던 한 시즌 최다홈런 70개를 3개나 넘어선 73개를 기록했다. 본즈의 나이는 36살이다. 그러나 본즈의 나이를 들먹이는 매스컴은 없었다. 3년 전 마크 맥과이어가 지난 61년 로저 매리스가 세웠던 연간 최다홈런 61개를 9개나 경신, 70개를 칠 때도 미국 언론들은 30대 중반을 넘어서는 마크 맥과이어의 나이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서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해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크 맥과이어도 어떻게 그 많은 홈런을 때릴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신인 시절인 85년 당시 신시내티 레즈에서 뛰던 토니 페레즈 선배는 46살에 만루홈런을 터트렸다”고 답했다.
스포츠 가운데 가장 격렬한 종목인 농구에서 30대 후반이면 사실 코치나 감독을 할 나이다. 그러나 ‘농구의 신’으로까지 추앙받던 마이클 조던이 38살에 복귀해 미국 스포츠계가 떠들썩하다. 과거에도 에이즈에 걸려서 더 유명해진 매직 존슨, 데니스 로드먼 등이 복귀를 했으나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마이클 조던의 경우는 다르다. 워낙 몸 관리를 잘해왔고 기본기가 탄탄하기 때문에 충분히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모든 스포츠는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 펠레와 베켄바워가 선수로서 장수를 하고, 배리 본즈가 30대 후반에 대기록을 세우고, 마이클 조던이 트레이드 마크인 신기의 페이드 어웨이 슛(골에서 멀어지듯이 뒤로 상체를 젖히고 하는 슛) 성공률이 높은 것도 바로 기본기가 완벽하게 닦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스포츠는 한창 기본기를 닦아야 할 초·중등학교 시절 당장 눈앞의 승부에 연연하기 때문에 이기는 법만 배우게 된다. 야구 투수는 한창 직구를 연마해야 할 초·중등학교 시절부터 타자를 속이는 변화구를 배우고, 축구선수는 드리블을 해서 상대 선수를 따돌려야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농구선수도 더블 클러치, 스핀 무브 등 프로선수들 흉내를 잘 내는 선수가 눈에 띈다. 학원스포츠의 풍토가 그렇다. 한국의 학원스포츠는 학교의 재정이 열악하다보니 학부형들의 주머니에 의존하게 되고, 기부금을 낸 학부모는 성적을 내지 못하는 감독을 갈아치우도록 압력을 행사하게 된다. 학교 감독은 자연히 학부모들의 눈치를 보게 되니까 선수들의 먼 미래보다는 당장 눈앞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서 이기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이같은 악순환이 거듭되다보니 선수들은 평생 먹고살(?) 기본기를 닦을 시간이 없다. 기본기가 없는 선수들은 자연히 조로(早老)하거나, 부상을 당해 선수 생활을 오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경기력 저하시키는 경기력향상 기금
악순환을 뿌리뽑기 위해서 학원스포츠는 본래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처럼 ‘선수학생’을 양산하는 게 아니라 ‘학생선수’를 키워야 한다. 학교공부를 모두 하면서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운동을 하고, 정말 선수가 되고 싶은 학생은 방과후에 클럽활동(사회체육이나 프로팀이 육성하는)을 통해 기술을 연마하는 제도가 확립돼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 스포츠가 지난 70년대 말부터 당근처럼 내걸고 있는 경기력향상 연구기금도 선수들의 조기 은퇴를 부추기는 요소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매월 100만원 그리고 은메달 60만원, 동메달 40만원의 연금이 본인이 생존(生存)하는 한 평생 동안 주어진다. 아시안게임도 금메달 2개 이상을 따면 올림픽 동메달에 해당하는 연금수혜 대상자가 된다. 이같은 제도는 연금을 타기까지 선수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 그러나 일단 연금 수혜대상자가 되면 ‘이제는 됐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겨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경기력향상 연구기금이 선수들의 조기은퇴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경기력향상 연구기금을 지금처럼 자격을 획득한 다음달부터 바로 지급할 게 아니라, 일정한 연령에 도달할 때 지급하는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사진/ LA다저스는 박찬호가 방콕아시아게임에 참여하는데 물리치료사를 대동하는 조건을 내걸었다.(곽윤섭 기자)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야구팀 ‘드림팀 1’에 뽑혔던 박재홍(28·현대 유니콘스)은 친구 사이인 박찬호(28·LA다저스)와 훈련을 끝내고 차 한잔을 하는 데도 인내를 가져야 했다. 박찬호가 모든 훈련을 끝내고 나서도 개인 마무리 훈련을 30분가량 꼬박꼬박 했기 때문이다. 박찬호로 볼 때는 훈련을 끝내고 마무리 훈련을 하는 게 몸에 밴 것이지만 한국 선수들에게는 낯설었다. 그만큼 메이저리거는 훈련이나 경기를 하기 전의 스트레칭과 훈련이 끝난 뒤 마무리 훈련은 상식으로 돼 있다. 그러나 한국 스포츠의 풍토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LA다저스에서도 박찬호를 ‘드림팀 1’에 파견하는 대신 피지컬트레이너, 즉 물리치료사를 대동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LA다저스에서 파견한 피지컬트레이너는 박찬호가 한국에서 훈련을 할 때는 물론 방콕아시안게임이 벌어지는 기간 내내 박찬호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돌봐줬다. 2002 한·일 월드컵축구대회에 대비해서 거액을 주고 영입한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 지난 5월31일 벌어진 컨페더레이션스컵대회 개막전에서 프랑스에 0 대 5로 대패한 데 이어 8월 체코와의 원정경기에서도 역시 0 대 5로 완패당해 축구 팬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지만 아직 선수들에게만은 인기가 높다. 훈련방법도 새롭지만 훈련을 마치고 축구장 잔디를 맨발로 밟으면서 피로를 풀어준다거나, 반드시 샤워를 하도록 하는 등 깔끔한 마무리를 해주기 때문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눈앞의 성적보다는 항상 선수의 몸상태를 염려하고 현재보다는 미래를 우선시한다. 세계 스포츠의 양대 산맥은 유럽과 미국 스포츠계다. 유럽은 프로축구, 미국은 메이저리그, NBA로 대표된다. 유럽과 미국 스포츠의 공통점은 프로화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선수관리에 노하우가 있다. 유럽축구는 이탈리아 프로축구의 세리에A, 독일의 분데스리그,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등 1부리그만 수백개 팀이 있지만 어느 팀이나 30대 중반의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독일의 클리스만, 루마니아의 게오르게 하지 등 최근 각 나라를 대표했던 선수들은 거의 모두 40대 안팎의 불혹의 나이에 선수생활을 끝냈다. 축구의 전설로 통하는 브라질의 펠레,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오, 독일의 베켄바워, 네델란드의 요한 크루이프, 옛소련의 야신 골키퍼 등은 40살 넘거나 40대 중반까지도 젊은 선수들과 기량을 겨뤘다. 메이저리그는 유럽축구보다 더하다. 김병현 선수가 속해 있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팀의 스타팅 멤버를 보면 김병현을 제외한 선수 전원이 30대 중반의 선수로 짜여질 때도 있다. 메이저리그 30개 팀 가운데 성적이 좋은 팀은 30대 중반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다. 2001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8강을 보면 뉴욕 양키즈, 시애틀 매리너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이상 아메리칸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이상 내셔널리그) 등 7개 팀의 주축 선수들은 거의 30대다. 오직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한팀만이 20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학부모 눈치 보다 보니…

사진/ 38살에 코트로 복귀하는 '농구의 신' 마이클 조던.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성공을 점친다.(AP 연합)

사진/ 축구교실에 참여한 청소년 선수들. 한국 스포츠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기본이다(위/ 권오상 기자). 한국 스포츠는 한창 기본기를 닦아야 할 초·중등학교 시절 이기는 법만 배우게 한다(아래/ 김봉규 기자)(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