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일리톨껌’ 한국에 소개한 장본인, 세계치과의사연맹(FDI) 새 회장 윤흥렬의 각오
치과의사 윤흥렬(61) 박사의 진료실에는 온갖 색깔의 난초화분이 벙글어져 있었다. “세계치과의사연맹(FDI) 회장 당선을 축하합니다.” 100년 전통에 149개국 회원이 가입되어 있는 이 단체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세계보건기구 다음으로 큰 조직이다. 그간 구미 인사들이 주도해오던 회장직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윤 박사가 맡게 되면서 그는 정말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이번 선거전에서도 국제올림픽 위원장 때처럼 한국과 벨기에가 경합을 벌였지만 윤 회장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GNP와 치과의사 수에 따라 투표 수가 정해지는 현실을 따져보건대 그의 지지기반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다.
잇몸만 봐도 그 사람을 꿰뚫는다
로비를 어떻게 하셨나요? 혹시 물량 공세는 안 하셨나요? “하하하… 우리 치과의료계 여러분의 성원 덕택에 당선된 것이지요. 총회 때마다 각 나라에서 전통음식을 대접하는 행사가 있는데 아마 한국 음식이 한몫을 한 것 같아요.”
1997년 총회는 한국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그는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인 개최에 상당한 몫을 하였다. 그때도 ‘아름다운 우리의 가을 하늘’ 때문에 대회가 성황리에 치러졌다고 말한다. 좋은 결과를 늘 ‘운이 좋아서’라는 말로 돌리는 겸손한 태도의 윤 회장은 사실 FDI 안에서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이다. 90년 초부터 연맹의 재무이사직을 맡아 그 능력을 인정받아왔다. 그간 단체 활동 때문에 세계를 누빈 거리만 해도 ‘100만 마일’. 물론 앞으로는 더욱 바빠질 것이다. 바야흐로 이제 세계인의 구강위생은 윤 회장의 어깨에 달려 있게 되었다. 그의 포부는? “앞으로는 개발도상국의 소외된 세계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생각입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치과의사의 분포는 의사 일인당 환자 수 1천명인 나라가 있는가 하면, 150만명이나 되는 나라도 있을 만큼 차이가 심하다. 평생 치과의사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국민들도 있다는 말이다. “선진국일수록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히 구강위생에 관심을 쏟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개발도상국으로 갈수록 “이가 아프다”는 문제는 아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고 만다. “저는 이제 온 세계를 다니면서 말할 겁니다. 특히 예산이 없다는 나라에 가서도 할말이 있습니다. 나도 전쟁을 겪어본 사람이고 국민소득 100달러 미만인 형편에서도 살아본 사람이다, 국민 구강건강을 경제적인 잣대로만 잴 게 아니다, 하면서 말이지요. 지금 우리 연맹에서는 개발도상국 지원기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난 그를 만나러 가는 날 아침 다른 날보다 정성 들여 이를 닦았다. 치과의사이니 사람을 보면 분명 치아부터 볼 게 아닌가. “하하, 전 잇몸을 봅니다.” 그는 치주질환 전문의이다. 대학졸업 뒤 노르웨이와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 “잇몸을 보면 그 사람의 건강상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그 사람의 입 안을 보면 성장과정이나 살아온 습관을 어렵사리 꿰뚫을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난 나의 입 안을 분석당하기 전에 얼른 자일리톨껌에 대한 질문을 날카롭게 던졌다. 요즘 치약보다 이 껌이 더 많이 팔리는 것 같은데 이 추세로 가면 치과의원에 타격이 오지 않을까요? “하하하… 저는 요즘 아주, 아주 행복합니다.” 사연인즉 그가 천연소재 설탕대체 감미료인 자일리톨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했다는 것이다. “1976년이에요. 처음에는 씰리톨이라고 발음해서 소개했지요. 국민들에게 치과질환 예방에 대한 필요성을 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모든 치과질환의 원인이 입 안의 박테리아인데 설탕이 치아에 아교처럼 병균을 붙여줍니다. 그러니 설탕을 안 먹는 게 좋지요. 그래서 소비자단체와 함께 ‘설탕 덜 먹기 운동’을 시작했지요.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치과의사가 왜 그런 운동을 하느냐고 의아해 하기도 했어요. 제당업계쪽에서는 저를 아주 미워했었어요.” ‘설탕 덜 먹기운동’으로 미움을 받다 명절 때나 고마운 분을 찾아갈 때 각설탕 상자나 설탕포대를 들고 가던 많은 이들이 항의했다. 설탕을 먹지 말라니, 대체할 게 도대체 있느냐고. “있지요, 바로 자일리톨. 당시에는 홍보도 안 됐고 가격도 설탕의 5배 이상이어서 보급에 힘이 들었지요. 이제 20여년 만에 그 진실을 인정받으니 어찌 안 좋을 수 있겠습니까! 저도 하루에 한번씩 꼭 씹지요.” 아무튼 젊은 부모들이 한결 살기가 수월해진 셈이다. 잠자기 전 아이 칫솔질에 너그러워질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닦으면 껌 하나 주지” 하는 협상에 대부분의 꼬마들은 넘어갈 것이다. “핀란드에는 초등학교 교장실 옆에 치과진료실이 있어요.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치과의사가 상주하기 때문에 구강위생이 아주 완벽하지요. 3살 때까지는 입 안을 부모와 정부가 반반씩 책임을 지지요. 그리고 치아 교환시기가 끝나는 중학교 때까지는 정부가 모두 책임을 지거든요. 성인이 되면 이제 각자 책임을 지고. 1999년 헬싱키 시 전체에서 충치가 생겨서 치아발치를 한 것이 딱 한건이었어요. 불소화 사업이 다 이루어져 있고 대체 감미료를 전반적으로 사용한 결과이지요. 철저한 예방 그리고 정부가 구강위생에 대해 강력하게 임한 결과이기도 하고요.” 90년 초에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으로 일한 그는 불소화 사업에 대해 특히 할말이 많다. “제가 정부에 수십년간 강조해온 것이 진료보다는 예방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예방사업의 하나가 바로 불소화인데 그게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니 참 답답하고 안타깝지요. 지금 일부 지역에서는 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불소화의 효과는 수십년 동안 과학적으로 검증되어온 것이에요. 아무리 좋은 약도 부작용이 있게 마련인데, 작은 부작용을 침소봉대해서 반대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중동인들의 입 안이 깨끗한 이유
윤 회장의 진료실 정면에는 신영복 교수의 글이 걸려 있다. “서울대 학생신문 기자할 때였어요. 하루는 투고문이 들어왔는데 글과 글씨가 기가 막히더라고요.” 그 이후 두 사람은 좋은 친구로 지내오고 있다. 윤 회장은 ‘댄디’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말투에서도 수식어가 없다. 그는 쓸데없는 소리를 정말 싫어한다. 공공장소에서 함부로 떠드는 사람들이 이해도 안 되고 용서도 안 된다. 한때 타인의 조용함을 멋대로 침해하는 사람들에게 옐로 카드를 나눠주는 일을 해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클리닉인 상아치과 진료에서도 그대로 보인다. 교보빌딩이 들어서던 해 시작해서 그는 21년간 한 자리에서 진료를 해오고 있다. 진료도 예약제로 한다. 별도의 방으로 구분하여 진료대를 놓아 환자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준다.
그는 63년 영화평론으로 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영화평론가 윤흥렬’로 나가서 활동하실 의향은 없으신지? 예를 들어 <조폭 마누라>의 구강위생에 대한 평도 하시면서. “저는 치과 일에만 전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프로정신으로 임하는 사람을 가장 존경합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김복현씨다. 근처 설렁탕 식당에서 39년간 홀 서빙을 하는 그분을 보면서 자기가 택한 일에 어떻게 최선을 다하는지를 배운다는 것이다. 간호사인 김아무개씨도 근무연수 21년. 그가 본 윤 회장은? “정말 겸손하신 분이세요.” 1초의 머뭇거림없이 대답이 나온다.
차기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하여 앞으로 세계인의 구강위생을 위해 동분서주할 윤 회장의 스케줄에는 전쟁으로 괴로운 중동지역 방문도 들어가 있다. 현재 삶이 고달프기 짝이 없을 아프간 사람들의 구강위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것을 섭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지역 사람들은 하루에 다섯번 꼭 기도를 드리게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절을 하기 전에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입을 깨끗하게 하도록 되어 있어요. 브러시가 없는 대신 버드나무 같은 것으로 이를 닦지요. 그 나뭇가지를 물에 담가 놓으면 부드럽게 되는데 그것으로 입 안을 훑어냅니다. 문화적인 관습이 구강위생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가 왜 전세계 치과의사의 대표가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글/ 권은정

사진/ "앞으로는 개발도상국의 소외된 세계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생각입니다."
1997년 총회는 한국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그는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인 개최에 상당한 몫을 하였다. 그때도 ‘아름다운 우리의 가을 하늘’ 때문에 대회가 성황리에 치러졌다고 말한다. 좋은 결과를 늘 ‘운이 좋아서’라는 말로 돌리는 겸손한 태도의 윤 회장은 사실 FDI 안에서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이다. 90년 초부터 연맹의 재무이사직을 맡아 그 능력을 인정받아왔다. 그간 단체 활동 때문에 세계를 누빈 거리만 해도 ‘100만 마일’. 물론 앞으로는 더욱 바빠질 것이다. 바야흐로 이제 세계인의 구강위생은 윤 회장의 어깨에 달려 있게 되었다. 그의 포부는? “앞으로는 개발도상국의 소외된 세계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생각입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치과의사의 분포는 의사 일인당 환자 수 1천명인 나라가 있는가 하면, 150만명이나 되는 나라도 있을 만큼 차이가 심하다. 평생 치과의사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국민들도 있다는 말이다. “선진국일수록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히 구강위생에 관심을 쏟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개발도상국으로 갈수록 “이가 아프다”는 문제는 아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고 만다. “저는 이제 온 세계를 다니면서 말할 겁니다. 특히 예산이 없다는 나라에 가서도 할말이 있습니다. 나도 전쟁을 겪어본 사람이고 국민소득 100달러 미만인 형편에서도 살아본 사람이다, 국민 구강건강을 경제적인 잣대로만 잴 게 아니다, 하면서 말이지요. 지금 우리 연맹에서는 개발도상국 지원기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난 그를 만나러 가는 날 아침 다른 날보다 정성 들여 이를 닦았다. 치과의사이니 사람을 보면 분명 치아부터 볼 게 아닌가. “하하, 전 잇몸을 봅니다.” 그는 치주질환 전문의이다. 대학졸업 뒤 노르웨이와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 “잇몸을 보면 그 사람의 건강상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그 사람의 입 안을 보면 성장과정이나 살아온 습관을 어렵사리 꿰뚫을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난 나의 입 안을 분석당하기 전에 얼른 자일리톨껌에 대한 질문을 날카롭게 던졌다. 요즘 치약보다 이 껌이 더 많이 팔리는 것 같은데 이 추세로 가면 치과의원에 타격이 오지 않을까요? “하하하… 저는 요즘 아주, 아주 행복합니다.” 사연인즉 그가 천연소재 설탕대체 감미료인 자일리톨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했다는 것이다. “1976년이에요. 처음에는 씰리톨이라고 발음해서 소개했지요. 국민들에게 치과질환 예방에 대한 필요성을 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모든 치과질환의 원인이 입 안의 박테리아인데 설탕이 치아에 아교처럼 병균을 붙여줍니다. 그러니 설탕을 안 먹는 게 좋지요. 그래서 소비자단체와 함께 ‘설탕 덜 먹기 운동’을 시작했지요.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치과의사가 왜 그런 운동을 하느냐고 의아해 하기도 했어요. 제당업계쪽에서는 저를 아주 미워했었어요.” ‘설탕 덜 먹기운동’으로 미움을 받다 명절 때나 고마운 분을 찾아갈 때 각설탕 상자나 설탕포대를 들고 가던 많은 이들이 항의했다. 설탕을 먹지 말라니, 대체할 게 도대체 있느냐고. “있지요, 바로 자일리톨. 당시에는 홍보도 안 됐고 가격도 설탕의 5배 이상이어서 보급에 힘이 들었지요. 이제 20여년 만에 그 진실을 인정받으니 어찌 안 좋을 수 있겠습니까! 저도 하루에 한번씩 꼭 씹지요.” 아무튼 젊은 부모들이 한결 살기가 수월해진 셈이다. 잠자기 전 아이 칫솔질에 너그러워질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닦으면 껌 하나 주지” 하는 협상에 대부분의 꼬마들은 넘어갈 것이다. “핀란드에는 초등학교 교장실 옆에 치과진료실이 있어요.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치과의사가 상주하기 때문에 구강위생이 아주 완벽하지요. 3살 때까지는 입 안을 부모와 정부가 반반씩 책임을 지지요. 그리고 치아 교환시기가 끝나는 중학교 때까지는 정부가 모두 책임을 지거든요. 성인이 되면 이제 각자 책임을 지고. 1999년 헬싱키 시 전체에서 충치가 생겨서 치아발치를 한 것이 딱 한건이었어요. 불소화 사업이 다 이루어져 있고 대체 감미료를 전반적으로 사용한 결과이지요. 철저한 예방 그리고 정부가 구강위생에 대해 강력하게 임한 결과이기도 하고요.” 90년 초에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으로 일한 그는 불소화 사업에 대해 특히 할말이 많다. “제가 정부에 수십년간 강조해온 것이 진료보다는 예방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예방사업의 하나가 바로 불소화인데 그게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니 참 답답하고 안타깝지요. 지금 일부 지역에서는 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불소화의 효과는 수십년 동안 과학적으로 검증되어온 것이에요. 아무리 좋은 약도 부작용이 있게 마련인데, 작은 부작용을 침소봉대해서 반대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중동인들의 입 안이 깨끗한 이유

사진/ 치료를 하고 있는 윤흥렬 박사. 교보빌딩이 들어서던 해 시작해서 그는 21년간 한 자리에서 진료를 해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