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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정자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가족이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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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22 14:02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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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로드폭스코리아 제공
엄마의 얼마 안 되는 장점도, 차고 넘치는 단점도 전혀 닮지 않은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혹시 어디서 뒤바뀌어온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했다. 우리 아이들이 실은 남의 집 자식이란 걸 알게 된다면 나도 첫마디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와 같을지 모른다. “역시, 그랬구나.” 어쩐지 아이들이 책 읽고 글 쓰는 걸 너무 싫어하더라니. 그러고는 대신에, 나를 닮아 활자중독증이 있고 겁 많은 꼬마가 어딘가에서 이해도 못 받고 살고 있다면 어떨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존재하지도 않는 그 아이가 가여워졌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고민으로 잠시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봤던 적이 있다.

그런데 노노미야 부부에게 이 말도 안 되는 고민이 현실로 닥친다. 영화에서도 말하듯, 이런 사건은 결국 언제나 피를 따라 아이를 바꾸고 서로 다시는 안 보는 쪽으로 종결돼왔다. 어차피 그렇게 할 거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행동에 옮기는 게 모두를 위해 좋지 않을까. 그러나 그 올바른 듯한 결정은, 지금껏 아이와 부모가 함께 지내온 수년간의 역사를, 그 역사가 만들어낸 힘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기저귀를 벗기자마자 쉬가 나와 오줌 줄기를 피하면서 서로 웃고, 한두 바늘이라 마취 없이 꿰매려고 아이를 꽁꽁 묶은 채 못 움직이게 누르며 같이 울고, 이 모든 나날 속에 서로 보여준, 아파하는, 기대하는, 고마워하는, 반가워하는, 원망하는, 미안해하는, 그 모든 표정이 모여 만든 시간, 가족맺기라는 역사. 아버지가 된다는 건 정자의 문제만도 경제의 문제만도 아니고 그 무엇보다 함께 보낸 시간의 문제라는 걸 간절하게 알려주는 결말을 보면서, 저 아빠가 고민한 수개월의 매 순간순간을, 엄마·아빠를 그리며 우주의 전환 같은 이별을 온몸으로 견뎌냈을 꼬마 게이타의 고통이 함께 연상돼, 꼬옥 껴안은 부자를 보며 마음이 뭉클했다. 이것은 결국, 낳은 정이냐 기른 정이냐 양자택일에 관한 얘기가 아니었다. 아니, 택일을 하는 주체가 부모라는 생각부터가 잘못된 거였다. 부모가 사랑하는 것처럼 아이도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인 부모가 겪은 것 훨씬 이상으로 이별과 변화의 고통은 아이에게 절대적이었다. 이것을 고려에 넣었다면, 처음부터 고민거리도 못 됐을 문제였다. 이것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일 뿐 아니라, ‘그렇게 가족이 된다’는 영화였다.

더불어, 이들의 10년 후도 궁금해졌다. 많은 부모들이, 그래도 내가 세상에 데려온 아이니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스스로를 다잡으며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하는 사춘기가 오면 노노미야 부부와 게이타는 또 어떻게 헤쳐나가고 성숙해질까. 이들의 10년 후도 용기 있고 힘차기를 응원한다.

오은하 회사원·영화진흥위원회 <코리안 시네마 투데이>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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