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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중섭을 싸게 팔아먹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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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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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없이 겉보기만 번지르르한 ‘붐’… 전시관에서는 황당한 대접 받기도

사진/ 대향 이중섭(1916~56). 가장 널리 알려진 화가지만, 가장 어처구니없는 대접을 받고 있다.
근래 들어 이중섭이 되살아났는가 싶을 정도로 ‘이중섭 붐’을 이루고 있다. 1년 사이에만 성인용 전기 3종이 한꺼번에 나왔고, 어린이용 또는 청소년용 이중섭 전기도 두종이 새로 서점에 깔렸다. 전기뿐만 아니라 이중섭이 헤어져 지냈던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서간집도 다시 선보였고, 이중섭에 관한 최초의 전기로 큰 호응을 받았지만 절판되었던 고은 시인의 전기가 다시 나왔다. 그야말로 겉보기에는 이중섭 열풍이 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신문사에서는 이중섭이 잠시 살았던 제주 서귀포에서 열리는 세미나와 그가 살던 집을 답사하는 관광객을 모으는 상품까지 내놓고 광고하고 있다. 여기에 이중섭을 소재로 한 연극도 무대에 올라가는 등 자못 요란하다.

제대로 된 본격화집 하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 채워지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말로는 이중섭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화가라고 일컬어지지만, 실제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의 실제가 너무나 미흡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사회가 미술이라는 것을 운영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바로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인 이중섭을 통해서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 미술 애호가들과 미술 학도들은 아직도 제대로 된 이중섭의 본격 화집을 만나볼 수 없다. 정식 화집은커녕 부담없는 일반인용 화집 하나 사고 싶어도 나와 있지 않다. 미술관에 가 진품을 보는 것말고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대표작을 감상할 수 있는 통로로 도판이 유일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그런데도 다른 작가도 아닌 이중섭의 화집이 없는 현실은 우리 미술계가 얼마나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일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해서 그림값도 가장 비싸다는 화가가 학문적으로는 방치돼 있는 셈이다.

일반인들에게 이중섭이란 화가의 진면목과 예술세계를 제대로 알려주어야 할 관련 서적들도 형편없는 것들이 상당하다. 1973년 처음 나온 시인 고은의 첫 이중섭 평전은 그가 다른 평전인 한용운과 이상을 다룬 것과 달리 사실 관계와 밀도가 현저하게 낮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미술 전문가들이 쓴 책에도 오류와 잘못된 그림 편집 등으로 잘못 만들어진 것들이 상당하다.

현직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쓴 이른바 ‘연구서’ 역시 여러 면에서 놀라움을 안겨주는 책이다. 책에 사용된 대부분의 도판들이 원판과 달리 부분부분 잘려 있는데도 부분이란 설명조차 빠져 있고, 위조서명 논란으로 진품이란 판정이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은 작품도 버젓이 실려 있다. 이 책을 다름 아닌 국립현대미술관의 현직 관장이 썼다는 점이 참담함을 느끼게 한다. 이중섭에 대해 직접 자료를 수집해본 적조차 없는 이들이 이중섭 전문가인 것처럼 기존 자료를 짜깁기해 책을 내고,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세미나에서 연구한 것처럼 발표하는 현실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현실들이다.

이중섭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고 그의 위상에 걸맞게 대접을 못하고 있기는 학예연구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미술관들도 마찬가지다. 미술관에 간 이중섭이 황당한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의 가짜작품 논란

사진/ 진짜 대향의 작품임이 분명치 않은 문제의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 필치가 대향답지 못해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의 그림 한점은 이상하게 보인다. 바로 보아서는 어떻게 된 것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고개를 수평으로 꺾어야 비로소 한 여자가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팔을 머리위로 쳐들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세로로 길게 세워져야 할 것이 가로로 길게 뉘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립미술관이 소장품에 대해 세심히 살펴보지도 않고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못지않게 황당한 일이 부산시립미술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진위가 의심스러워 가짜 시비가 일어났던 그림이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으로 지난해 7월 결정됐고, 이를 둘러싼 논란이 1년 넘도록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미술관쪽은 한 기증자가 기증한 그림이 가짜라는 의혹이 뒤따르자 화랑협회에 감정을 의뢰해 진품 판정을 받았는데, 감정위원에 문제의 그림 주인이 버젓이 포함돼 더욱 논란이 커졌다. 이런 해프닝을 거쳤음에도 가짜 파동이 전혀 진정되지 않자 부산시립미술관은 최근 들어 다른 진품 은박지 그림과 맞바꾸기로 하고 소동을 무마하려고 하는 중이다. 공공 미술관이 개인이 하는 구멍가게처럼 마음대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중섭이란 이름을 내걸고 있는 다양한 부대행사들도 정체성이 모호한 채 주최쪽의 체면 세우기와 전시행정 등으로 졸속 운영되고 있다. 현재 이중섭의 이름이 걸린 것들로는 서귀포의 기념관,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이중섭 미술상과 세미나가 있다. 이 가운데 서귀포시의 기념관은 현황과 운영이 처참한 상태다. 대향이 거주하던 당시의 정취는 오간데없이 졸속으로 복원한 건물이 지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전시공간에는 조악한 복제품만 걸려 있는데 개중에는 거꾸로 걸린 그림도 있다.

조선일보사가 주관하는 이중섭 세미나와 이중섭 미술상도 알맹이 없이 계속되는 행사이다. 이중섭의 삶과 예술을 확인하고 드높이는 마땅한 원칙도 없이 관련 담당자와 일부 심사위원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여느 행사나 상처럼 특색없는 것으로 성격이 굳어지고 있다.

우리 미술계의 고질적 병폐를 상징한다

사진/ 가로세로가 바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중섭 작품. 작품에 대한 꼼꼼한 검토조차 없이 전시되고 있다.
이중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 우리 미술계의 고질적 문제와 병폐를 읽을 수 있다. 이중섭이란 화가가 그저 그림값이 비싸고 인생이 기구했던 인물로만 알려져 있을 뿐 그가 왜 높은 평가를 받는 화가인지를 일반인들로선 알 수 없다. 때문에 지난 세기 우리 미술계가 가둔 뛰어난 성취를 보여준 작가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된 책과 화집을 내 예술세계를 알려나가는 일이 시급하다.

이중섭이 받고 있는 대접이 어떠한가를 통해 우리 모두의 중요한 물질적, 정신적인 자산을 다루는 데 우리가 어느 정도로 허술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무릇 제 품에 보배가 있어도 그 가치를 모르면 돼지죽 취급하게 될 뿐이고, 결국에는 보배도 하찮은 존재로 무시해버리게 마련이다. 특히 시각예술분야가 우리 자신과 삶을 고양시키는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런 사항들을 극복하지 않고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이중섭의 모습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최석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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