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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생은 금물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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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17 15:1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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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애플은 액정화면을 없애 크기를 줄이고 가격을 대폭 낮춘 아이팟 셔플을 출시했다. 디자인은 근사했으나 액정화면이 없으므로 제목을 보며 노래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애플은 이 단점을 멋진 슬로건으로 승화시켰다. “Life is random.” 인생은 무작위다. 아이팟 셔플은 크게 히트했다.

1991년 일본 아오모리현에 태풍이 연달아 몰아쳐서 사과가 90%나 떨어져버렸다. 농민들은 비탄에 잠겼다. 그러나 누군가가 10%의 사과에 ‘떨어지지 않은 사과’라는 이름을 붙이자 10배나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다 팔려나갔다. 수험생들에게 일종의 부적이 된 것이다. 마이너스가 오히려 플러스가 된 셈이다.

나는 두 달 전에 첫 책을 냈다. 그런데 발행일이 2013년이 아닌 2012년으로 오기돼 나와버렸다. 서점에 가면 안타깝게도 책이 신간 코너가 아닌 구석 자리에 꽂혀 있는 걸 보곤 했다. 게다가 나는 인문서를 생각하고 썼는데 ‘자기계발→두뇌계발’ 도서로 분류돼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영재교육 책도 아니고 두뇌계발이라니. 하지만 곧 나와 친구들은 이 마이너스 요소들을 플러스로 돌리기 시작했다. 1쇄 분량은 ‘희귀본’이란 이름을 얻었고, 내겐 ‘두뇌계발자’란 직함이 생겼다. 어쨌거나 농담거리가 늘었으니 좋다.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변환하는 기술, 이것을 아이디어의 ‘변전술’이라 해도 되겠다.

퍼렐 윌리엄스의 <넘버 원>을 듣다보면 피처링한 카니에 웨스트가 말을 더듬으며 랩을 하는 부분이 있다. 말을 더듬다니, 래퍼라면 일차적으로 피해야 할 마이너스 요소 아닌가. 그런데 말을 더듬는 절묘한 리듬감이 꽤 즐겁다. 생각해보면 예술가들은 감점 요인, 배제해야 할 것, 즉 온갖 마이너스적인 것들을 예술 안으로 끌어들여 우리의 미감을 끝없이 확장(+)시켜왔다. 우리는 이제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로테스크한 그림과 마일스 데이비스의 찌르는 불협화음, 소닉 유스의 쟁쟁거리는 노이즈를 아름답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것들은 모두 한때 마이너스적인 거였다.

영화 <변호인>에는 온갖 노이즈가 많았다. 별점 테러도 있었고 누군가가 표를 대규모로 예매했다가 상영 직전에 환불한다 하더라는 소문도 돌았다. 논란이 일수록 <변호인>은 더욱 회자됐고 자기장은 더 커져갔다. 마이너스들이 결과적으로는 플러스로 변전된 것이다. <변호인>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알았던 한 인간의 절망과 추락(-)이 오버랩된다. 단팥죽에 소금이 들어가면 단맛이 더 강해지듯이, 훗날의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더욱 강렬해지고, 우리 안에는 무언가 뜨거운 것이 가득 차오른다(+). 역사는 변전한다.

김하나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저자·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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