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고래 추정 포유류 발목뼈 화석 발견… 직접 증거 여부는 아직 불명확한 상태
고래는 물고기이면서도 육지에 사는 포유동물처럼 공기호흡을 한다. 한번 숨을 들이쉬면 물 속에서 무려 90여분이나 머물 수 있다. 머리 위에 뚫려 있는 콧구멍은 물 속으로 잠수할 때 자동으로 닫히면서 수심 3천m까지 잠수해도 무리가 없다. 아무리 입으로 물을 빨아들여도 허파나 기관지가 손상되지 않는다. 허파가 콧구멍에 연결돼 물을 전자동으로 배출하기 때문이다. 고래의 특수한 눈은 바다 밑에서도 물체를 구별할 수 있는 예민한 세포로 이뤄져 있다. 돌고래의 몸에 있는 지방덩어리는 높은 주파수의 수중음파를 탐지해 항해를 돕고 먹이를 찾는 데 이바지한다. 이렇듯 완벽한 수중생활 시스템을 갖춘 고래의 조상이 네발 달린 육지 포유동물이라는 주장은 뭔가 미심쩍어 보인다. 그런데 최근 고래가 다리를 ‘버리고’ 바다로 내려가 살았다는 가설을 설명하는 화석이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고래의 잠수능력 설명할 귀뼈 나와
미국 오하이오대 의과대학의 해부학자 한스 드위센 교수팀은 파키스탄의 5천만년된 퇴적층에서 작은 포유류의 발목뼈 화석을 지난 여름에 발견해 과학전문지 <네이처> 최근호에 발표했다. 발굴팀은 사상 처음으로 원시고래로 꼽히는 생물체의 발목뼈(경골과 비골을 연결하는 복사뼈)를 재생했다. 이 화석은 퇴적층의 연대로 보아 원시고래 계보로 ‘파키케티드스’(Pakicetids) 단계로 분류된다. 이미 파키케티드스 관련 화석이 여러 종류 발굴된 가운데 이번에 발굴한 화석은 네발 달린 원시고래 가설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파키케티드스는 해부학적으로 발굽이 있는 육식성으로, 오늘날의 족제빗과의 오소리를 닮았으며 분자학적으로는 두개의 굽이 있는 유제류의 하마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발굴팀은 두개의 발목뼈와 함께 고래가 잠수상태에서 압력을 유지하는 ‘중이’(middle ear)를 밝혀낼 수 있는 귀뼈도 찾아내 ‘걸어다닌 고래’를 해부학적으로 규명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포유동물인 고래가 어떻게 바다로 갔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진화연구자들의 오랜 관심사였다. 고래는 바닷속 제왕으로 꼽히지만 신체조직이나 기관은 해양동물보다는 낙타나 소 등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고래는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는 사실이 밝혀져 젖먹이 동물로 인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육지와 바다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는 전이형태의 생물을 발견하지 못한 까닭에 ‘네발 달린 고래’는 추론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었다. 더구나 수십만종의 화석이 박물관에 수집됐지만 고래 진화의 과도기에 나타나는 전이형태를 보여주지 못했다. 4천여만년 전인 신생대 제3기 에오세에 고도로 진화한 형태의 고래와 백악기 태반동물 사이의 중간형태가 분명하게 화석기록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육지의 원시고래설에 대해 돼지이빨 한개로 사람의 진화를 설명하는 격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그렇다고 고래의 육지 조상 흔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55년 화석연구가 에드윈 콜버트가 “고래의 조상은 네발 달린 육지 포유동물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중간형태의 육지고래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고래의 육지 조상으로는 5500여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는 발굽을 가진 육식동물인 ‘메조니키드스’(Mesonychids)의 일종인 ‘카니버러스’(Carnivores)가 꼽혔다. 이 동물은 물가에는 살지 않았으며 네발 달린 말을 닮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메조니키드스의 흔적은 그뒤 30년 가까이나 오래된 퇴적층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3년 고생물학자인 필 깅그리치가 파키스탄 강가의 5200만년된 철광석 퇴적층에서 원시고래의 뼛조각을 찾아냈다. 깅그리치 연구팀은 화석을 재생해 파키케티드스의 일종으로 분류해 ‘파키케투스’(Pakicetus)라 이름지었지만 아쉽게도 원시고래의 직접적인 증거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발굴 화석이 두개골 후부와 아래턱 조각 두개, 떨어져 있는 위 아래 볼의 이빨이 전부였던 탓이다. 파키케투스의 이빨은 메조니키드스를 닮아 썩은 고기나 연체동물, 거친 야채 등을 먹기에 적당한 것으로 추측됐지만 고래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었다. 육지동물이 고래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특유의 진화론적 증거를 화석으로 보여줘야 한다. 대표적인 게 고래의 청각기 존재여부이다. 청각기는 물 속에서 직접 들을 수 있는 데 쓰일 뿐만 아니라 바다 밑의 높은 압력에도 견디는 데 절대적인 구실을 한다. 이런 까닭에 중이의 혈관형성에 관한 증거가 있어야만 원시고래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여기에다 현재의 고래가 거대한 몸체로 바닷속에서 활동하기까지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예컨대 앞다리가 어떻게 고래의 지느러미로 바뀌었으며, 뒷다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졌는지, 코가 어떻게 머리로 이동해 허파와 직접 연결되게 되었는지 등을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육지고래의 꼬리가 바닷속에서 추진력을 얻는 데 걸림돌로 작용해 둘로 갈라졌다는 식의 추론을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화석도 이런 가설을 완전하게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화석 발굴이 잇따르면서 원시고래의 윤곽이 차츰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파키스탄 일대 퇴적층에서 잇따라 발굴
육지와 바다의 잃어버린 고리가 될 만한 원시고래의 흔적은 1994년 1월에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서쪽 언덕 퇴적층에서도 나왔다. 오하이오대의 한스 드위센과 하버드대의 타이저 후세인 등이 공동으로 발굴한 4900만년된 동물화석은 ‘암불로케투스’(Ambulocetus)라고 명명되었다. 이 생물은 태고의 고래가 걸어다닌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몇 가지 증거를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두개골의 모양과 치열이 다른 원시고래를 빼닮았고 운동방법이 고래들의 진화에 있어 전이적 형태를 갖춘 것으로 여겨졌다. 암불로케투스는 길이 3.5m에 몸무게 250kg 정도였으며 현대 고래돠 달리 긴 꼬리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 생물은 바다사자나 물개와 유사한 방법으로 육지에서 걷고, 바다표범 수달 고래의 운동을 혼합해 물에서 지냈던 것으로 여겨진다. 500여만년 앞선 메조니키드스보다 다리가 퇴화돼 키가 작고 머리가 커진 악어의 모습으로 네발로 걷고 헤엄치면서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화석연구자들은 네발 달린 원시고래들이 암불로케투스의 수륙생활을 병행하다가 ‘레밍톤오노케티드스’(Remingonocetids) 단계에 이르러 양서류와 비슷한 형태로 지내며 물가에 정착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4900만년에서 4300만년 사이의 퇴적층에서 발견되는 레밍톤오노케티드스는 작은 눈과 넓은 코에 같은 가늘고 긴 코를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원시고래들이 육지를 버리고 바다로 간 것은 수륙생활 당시 주식으로 물고기를 먹었던 데서 비롯된다. 만일 이들이 잡식성으로 발전했다면 육지를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바다 원시고래는 아프리카와 북아메리카 등지의 심해 퇴적물에서 발견되는 ‘프로토케티드스’(Prorocetids)로 이어진다. 프로토케티드스는 수중에서 민첩하게 먹이를 낚아챌 수 있도록 꼬리가 갈라져 있었으며, 이빨을 줄여 먹이를 쉽게 삼킬 수 있도록 했다.
진화론적 증거 불충분… 고래 유전자 기대
바다에 완전히 정착해 수중생활에 들어간 프로토케티드스는 각기 다른 진화 경로를 거치게 된다. 대개는 여러 종류의 수염고래(긴수염고래 흑등고래 회색고래 등)와 이빨고래(포르포이스 돌핀 등)로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다. 더러는 원시고래 형태를 유지한 채 4100만년에서 3500만년 전 사이에 ‘바실로사우리드스’(Basilosaurids)나 ‘도루돈티드스’(Dorudonritids), ‘스쿠아로돈티드스’(Squalodontids) 등으로 이어졌다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놀라운 사실은 메조니키드스에서 비롯된 네발 달린 원시고래가 바다에 완전히 정착한 현생고래로 진화하는 데 1천만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1천만년은 장구한 세월이 아니다. 만일 고래의 육지와 바다를 잇는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된다면 창조론과 진화론의 오랜 다툼이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찾아낸 파키케티드스의 발목뼈와 귀뼈는 거기에 다가서는 하나의 단서일 뿐이다. 화석 증거들이 잇따라 발굴된다면 뼈에서 ‘고래 유전자’를 통해 원시고래를 규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유전자를 발견한다 해도 원시고래의 것임을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사진/ 원시고래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라. 한스 드위센 교수가 파키스탄에서 발견한 생물의 뼈조각을 살펴보고 있다.
포유동물인 고래가 어떻게 바다로 갔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진화연구자들의 오랜 관심사였다. 고래는 바닷속 제왕으로 꼽히지만 신체조직이나 기관은 해양동물보다는 낙타나 소 등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고래는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는 사실이 밝혀져 젖먹이 동물로 인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육지와 바다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는 전이형태의 생물을 발견하지 못한 까닭에 ‘네발 달린 고래’는 추론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었다. 더구나 수십만종의 화석이 박물관에 수집됐지만 고래 진화의 과도기에 나타나는 전이형태를 보여주지 못했다. 4천여만년 전인 신생대 제3기 에오세에 고도로 진화한 형태의 고래와 백악기 태반동물 사이의 중간형태가 분명하게 화석기록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육지의 원시고래설에 대해 돼지이빨 한개로 사람의 진화를 설명하는 격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그렇다고 고래의 육지 조상 흔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55년 화석연구가 에드윈 콜버트가 “고래의 조상은 네발 달린 육지 포유동물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중간형태의 육지고래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고래의 육지 조상으로는 5500여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는 발굽을 가진 육식동물인 ‘메조니키드스’(Mesonychids)의 일종인 ‘카니버러스’(Carnivores)가 꼽혔다. 이 동물은 물가에는 살지 않았으며 네발 달린 말을 닮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메조니키드스의 흔적은 그뒤 30년 가까이나 오래된 퇴적층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3년 고생물학자인 필 깅그리치가 파키스탄 강가의 5200만년된 철광석 퇴적층에서 원시고래의 뼛조각을 찾아냈다. 깅그리치 연구팀은 화석을 재생해 파키케티드스의 일종으로 분류해 ‘파키케투스’(Pakicetus)라 이름지었지만 아쉽게도 원시고래의 직접적인 증거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발굴 화석이 두개골 후부와 아래턱 조각 두개, 떨어져 있는 위 아래 볼의 이빨이 전부였던 탓이다. 파키케투스의 이빨은 메조니키드스를 닮아 썩은 고기나 연체동물, 거친 야채 등을 먹기에 적당한 것으로 추측됐지만 고래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었다. 육지동물이 고래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특유의 진화론적 증거를 화석으로 보여줘야 한다. 대표적인 게 고래의 청각기 존재여부이다. 청각기는 물 속에서 직접 들을 수 있는 데 쓰일 뿐만 아니라 바다 밑의 높은 압력에도 견디는 데 절대적인 구실을 한다. 이런 까닭에 중이의 혈관형성에 관한 증거가 있어야만 원시고래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여기에다 현재의 고래가 거대한 몸체로 바닷속에서 활동하기까지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예컨대 앞다리가 어떻게 고래의 지느러미로 바뀌었으며, 뒷다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졌는지, 코가 어떻게 머리로 이동해 허파와 직접 연결되게 되었는지 등을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육지고래의 꼬리가 바닷속에서 추진력을 얻는 데 걸림돌로 작용해 둘로 갈라졌다는 식의 추론을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화석도 이런 가설을 완전하게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화석 발굴이 잇따르면서 원시고래의 윤곽이 차츰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파키스탄 일대 퇴적층에서 잇따라 발굴
사진/ 원시고래로 추정되는 동물의 상상도. 메조니키드와 암블로케투스(아래)
사진/ 한스 드위센 교수가 지난 여름 발견한 생물체의 뼈대를 바탕으로 그린 원시고래 파키케티드의 상상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