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스무살이 어지러운 여자들

379
등록 : 2001-10-10 00:00 수정 :

크게 작게

괴로움·외로움·그리움으로 모서리진 청춘의 트라이앵글, <고양이를 부탁해>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최승자 <내 청춘의 영원한>)

당신의 스무살은 어떠했는가

‘청춘은 청춘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시절’이라고 말한 어느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스무살은 스무살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시절이다. “그때는 어디든 갈 수 있지, 무엇이든 할 수 있잖아”라는 스무살 예찬은 ‘그때’에서 한참 멀어진 엄마가 딸에게 또는 삼촌이 조카에게나 하는 말이지, ‘그때’를 살고 있는 이들의 입에서는 결코 나오지 않는 말이다. 그 말은 깨달음일지언정 정확한 기억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딘가 가고 있었지만 늘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가고 싶어하던 시절, 무엇인가 하고 있었지만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던 시절 한가운데 스무살은 놓여 있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으로 모서리진 청춘의 트라이앵글은 현실이라는 쇠막대기와 부딪쳐 진동한다. 그 온몸이 고통으로 떠는 소리의 아름다움은 오로지 삼각형 바깥의 감상자들만이 느끼는 법이다.

이 나이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시새움 때문일까? 지금까지 영화에서 스무살은 좀처럼 관찰되지 않아왔다. 여성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스무살의 세 남자가 부딪히는 차가운 현실을 깊은 시선으로 끌어낸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1996)가 있었지만 스크린에서 스무살 여성은 지독한 사랑의 열병에 빠져 있거나, 마냥 싱그럽고 활기찬 대학생, 또는 앞뒤의 맥락없이 자신만만한 청춘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빨리 성인이 되도록 강요받으면서 또 집안에서는 여전히 말 잘 듣는 아이로 남기를 강요받는 그 시절의 어지럼증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감독 정재은의 첫 장편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놀라운 영화다. 이 작품은 스무살의 그녀들이 딛고 있는 차갑고 딱딱한 땅바닥을 보여준다. 그 시절의 여동생과 여자후배, 딸을 보면서 “좋을 때다”라고 앵무새처럼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묻는다. 당신들의 스무살은 어땠느냐고.

사진/ 태희, "세상에 정해진 법칙이 어디 있어?"
태희(배두나)와 혜주(이요원), 지영(옥지영). 고등학교 친구인 이들은 졸업 뒤 1년 사이에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집에서 운영하는 맥반석찜질방의 카운터와 자원봉사로 뇌성마비 시인을 대신해 치는 타이프라이터 앞을 오가는 태희는 뱃사람을 꿈꾼다.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증권회사에 취직한 혜주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야심을 키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붕이 무너져 내려가는 집에 살면서 텍스타일 디자이너를 꿈꾸는 지영은 유학을 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상업고등학교 출신으로 대학이라는 완충판에 발을 딛지 못하고 세상에 뛰어든, 사실은 던져진 젊은 이들에게 세상은 호의적이지 않다. 팩스, 복사, 커피 심부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혜주는 여자선배로부터 “평생 저부가가치 인간으로 살 거야?”라는 경멸에 찬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늙은 조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파출부라도 나서야 하는 지영에게 유학이란 너무나 먼 꿈이다. 친구들에게는 큰언니 같은 존재지만 집에서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사는 태희는 가족의 풍경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간다.

평생 잔심부름만 할 거야?

사진/ 혜주, "코도 높이고 영어공부도 하고, 반드시 성공할 거야."
스무살. 인생에서 가장 먼저 찾아오는 이 분수령의 나이에 실상 분수령이 될 만한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영화는 커다란 파고를 그리지는 않는다. 그 또래에 세상에 나와 스무살을 겪은 관객은 세명의 인물에게 자신을 밀착시키며 그들의 안쓰러운 움직임과 가쁜 호흡을 따라가게 된다.

“평생 잔심부름만 하는 저부가가치 인간으로 살 수는 없어. 코도 높이고 영어공부도 하고, 반드시 성공할 거야.” 선배로부터 받은 상처를 다짐으로 숨겨 말하는 혜주. 그는 파장이 될 무렵 정신없이 바쁜 ‘엘리트’ 동료들을 팩스 앞에서 물끄러미 지켜본다.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심부름을 다니다가 앉은 책상 아래에서 신발 위에 벗어놓은 발을 꼼지락거리는 그의 꿈과 현실 사이에는 너무나 높은 벽이 있다. 태희는 남들처럼 직장을 다니거나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안의 부속품이다. 자신을 “야”라고 부르는 남동생의 심부름과 보수없는 찜질방 노동을 하면서 “너 언제 정신차릴래?”라는 핀잔만 듣는 그는 가족에게 여전히 아이이기를 강요받는다. 이렇게 집이 요구하는 길들여진 삶과 거리와 사회가 요구하는 야생생존의 법칙 사이에서 그들의 스무살은 자리매겨진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눈부시다. 교복을 입은 세명과 그들의 친구 비류, 온조 쌍둥이 자매는 카메라를 들고 인천의 쇠락한 부둣가를 뛰어다닌다. 이들의 화창한 웃음 속에서 비릿한 바다냄새는 달콤해진다. 1년 뒤 한겨울에 이들은 월미도 바닷가에서 다시 만난다. 달콤하던 바닷바람은 칼처럼 이들의 옷깃 사이사이를 파고든다. 이 쓸쓸한 풍경은 첫 장면과 대비되면서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스무살의 신산한 내면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고양이를 부탁해>는 스무살의 성장담이 얼마나 우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가고 싶고,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가지고 싶기’ 때문에 반짝이는 스무살의 에너지는 이들의 가느다란 종아리에 매달린 삶의 무게를 잠시 덜어놓기도 한다. 동대문 시장에서 친구들과 쏘다니며 “갖구 싶은 게 계속 보이는데 어떡해”라며 정신없이 쇼핑을 하는 혜주나, 친구에게 돈을 빌려 날렵한 휴대폰을 산 지영이가 고양이 티티와 함께 휴대폰 벨소리를 듣는 대책없는 충동은 스무살이기에 무모해보이지 않는다. 고깔모자를 쓰고 록카페에서 술, 담배 등 금지돼온 것들을 즐기는 혜주의 요란스런 생일파티나 밤 12시에 친구집 옥상에서 벌이는 천진한 단체 실험은 이들의 일상 속에서 사소한 에피소드다. 그러나 스무살에서 한참 멀어졌을 때 “그때는 뭐든 우리 맘대로 할 수 있었잖아”라고 긴 잔상을 남길 기억이 될 것이다.

‘The End’가 아닌 ‘Good Bye’

사진/ 지영, "요새는 다들 유학가잖아. 나라고…못가겠어?"
서울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의 돼지갈비 냄새를 역겨워하던 혜주는 서울시민이 되고 집이 무너져버려 조부모를 잃은 지영은 소년원 전 단계인 분류심사원으로 들어간다. 언젠가 떠날 날을 위해 차곡차곡 준비하던 태희는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떼내어 자신의 모습을 오려낸다. 그리고 분류심사원 앞에서 새벽을 기다려 그곳을 나오는 지영과 함께 공항으로 향한다. 비행기가 하늘로 오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The End’나 ‘끝’이 아니라 ‘Good Bye’다. 영화에서 이들이 수시로 띄우는 문자메시지를 영상 위에 새겨넣으며 스무살의 감수성을 스크린에 담은 감독은 스무살의 어법으로 관객과 인사한다.

태희와 지영은 굿바이를 외치면서 비행기를 타고 혜주는 북적이는 인파를 헤치며 증권사 빌딩으로 출근할 것이다. 태희와 지영은 탈출하고 혜주는 남은 것일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여행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미지의 대륙에 발디딘 이들은 다시 그 차갑고 딱딱한 땅에 발디디기 위해 싸워야 할 게다. 그리고 언젠가 불쑥 혜주에게 ‘우리 돌아왔어^^*’라는 문자메시지를 띄울지도 모른다. 이들은 다시 만나 어제 본 친구들처럼 떠들고 또 다투겠지만 그때의 그들은 우리가 만난 태희와 혜주, 지영은 아니다. 스무살은 머뭇거릴 수 있지만 머물 수는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