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잉여가 가상 잉여를 만들어냈다”
<애완의 시대> 저자 이승욱 인터뷰
등록 : 2013-12-05 14:01 수정 :
-왜 ‘자발적으로 순응하는 사람들’을 주목하게 되었나.
지난 대선에서 사람들이 개인적 좌절에 빠져드는 것을 많이 봤다. 이명박 정부 때는 사람들이 약간 짜증스럽게 회피하는 식이었다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이 선거를 개인화하는 게 흥미로웠다. 그게 일종의 기폭제가 되었고 공저자인 김은산 선생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1970년대 정서에 머물러 있는 지금 50~60대의 문제에 닿게 되었다. 지금 20~30대가 스스로 잉여라고 지칭하지만, 사실은 50~60대야말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른 의미의) 잉여로 취급받았다. 식량은 항상 부족하고 사람은 많으니, 식량에 대한 잉여로서 존재했던 사람들. 그래서 항상 불안했고 잉여가 아니기 위해 자기 존재 증명을 해내야 했고, 권력에 순응하는 데 익숙해진 이들이다. 지금은 자산도 있고 가장 소비력이 높지만 여전히 불안한 세대, 더 이상 잉여가 아니게 됐는데 어린 시절 무의식화했던 잉여로서의 정서와 불안감이 계속 남아 있는 성장하지 못한 어른들인 거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그들의 자식들이 스스로를 잉여라고 지칭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잉여가 가상 잉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과정 중에 우리 사회는 무엇에 의해서, 어떤 침습된 사상에 의해 퇴행하게 되었나를 고민하면서 책을 썼다.
-성장하지 못한 어른들에 대해 설명을 덧붙인다면.
잉여 정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50~60대가 키운 지금 20~30대에게 민족 최대 비극은 외환위기였을 것이다. 가정이 풍비박산되고, 한순간에 중소기업 사장이었던 아버지가 노숙자가 된 경험. 최소한 내가 안 겪어도 주변에서 흔했던 일이다. 그런데 왜 누구도 나서서 나라를, 가정을 도탄에 빠지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가. 다 흥청망청 돈을 쓰던 너희의 잘못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이들만 있었다. 그게 지금 20~30대가 느끼는 까닭 모를 울분과 분노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불안을 조장하거나 여전히 불안해하는 어른들만 보았으니 이들도 성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책에 미처 싣지 못했지만, 인상 깊었던 사례가 있나.
비만이 심해 ‘니트족’이 된 20대 후반 여성의 이야기가 있었다. 먹을 것이 너무 많아 억압받는 시대다. 먹는 것뿐 아니라 수면욕, 성욕도 억제해야 하는 시대다. 전부 다 억압을 받는데, 이걸 해소하기 가장 좋은 것이 소비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면 더 소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열심히 일하면서 또 억제하고, 이런 악순환의 연속 속에서 식이장애를 겪고 고도비만이 된 여성이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다 그만두고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자신이 음식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 자각하고 건강한 몸을 갖겠다 다짐하며 돌아온 케이스였다. 자본주의 구조 속 억압에 관한 것이어서 넣을 데가 마땅치 않아 싣지 못했는데, 무엇에든 억압돼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