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의 시대> 저자들은 부모 세대로부터 불안을 물려받은 이들, 움직이고 나아가기보다는 길들여지고 정체하는 데 익숙해진,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힘을 잃은 청춘들에 대해 말한다. 미래가 불투명해 보이기만 했던 <미래의 선택> 주인공 나미래는 그런 청춘들의 대표 기수다.
이렇게 국가권력에, 혹은 돈과 성공에 길들여져 안정만을 희구하는 이들, 몸은 자랐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떤 면에서 여전히 미성숙한 어른들을 책에서는 ‘애완의 세대’라고 정의한다. 반려인의 명령 혹은 보살핌에 익숙해 나이는 먹지만 성장하지 않는 애완견처럼, 보이지 않는 목줄에 매여 있는 이들이 부모와 자식으로 엮이며 살아가는 시대가 ‘애완의 시대’라는 것이다. 책에는 늘 ‘yes. but…’ 게임을 가동하는 청년의 사례가 나온다. 부모로부터 받은 강박 때문에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가득해 늘 무언가를 계획하지만, 언제나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것이 “그래, 그렇지만, 그런데…”로 귀결되며 실상 실천에 옮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일상을 사는 남학생의 얘기다. 스스로 많은 것에 좌절하고 자신을 구제불능으로 여기게 된 남학생의 뒤에는 그의 삶을 손에 움켜진 부모가 버티고 있었다. “이만큼 먹고살게 해준 게 우리 부모들이니 너도 헛돈 쓰지 말고 효율성 있는 일에 매진하라”는 것이 부모의 주문이자 자식에게 전수된 가치관이었다. 하지만 부모 세대의 젊은 시절처럼 “할 수 있다”가 많은 것을 해결해주던 때는 먼 과거가 된 지 오래다. 청년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늘 좌절과 긴장을 느꼈고 그 과정에서 상황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저울질만 하다 포기하는 행위를 반복해왔다는 것이 저자들의 분석이다. 저울질만 하다 포기하는 행위 반복 책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부모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 청춘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직장인 ㄱ(30)씨는 소규모 출판업체에서 일한다. 기업에서 사보나 부정기적 인쇄물을 의뢰받아 제작하는 회사다. ㄱ씨의 꿈은 패션잡지 기자였다. 대학 재학 중 원하는 잡지사의 어시스턴트 모집에 응모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스펙이 부족한가 싶어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고 배낭여행을 가고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이를 지원한 부모님은 이왕에 기자를 할 거면 큰 방송사에 들어가길 원했고 그 말을 들은 ㄱ씨는 언론사 입사시험 스터디 모임에 가입했다. 이렇게 준비하다가 원하는 회사의 모집 공고가 뜨면 거기에도 지원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꿈과 자신의 꿈을 여기저기 걸쳐놓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20대에 취업하겠다는 전의를 상실했다. 그런 가운데 30살까지 무언가 준비만 하는 인생이라는 게 갑갑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시작한 일이 자신의 직업이 되었다. 업무 강도는 요동치고, 직원이 몇 되지 않아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회사에서 자신이 언제 정규직으로 전환될지 요원하다. 올여름 출간된 <잉여사회>(최태섭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가 지적하듯, ㄱ씨는 “자신의 자녀들이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명문대 출신의 전문직 엘리트가 되길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 (…) 누군가가 궂은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나나 내 자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이 노골적인 고백들”을 호소하는 부모의 욕망에 귀기울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목줄에 매여 따라가다보니 그만 자신이 가려던 길을 잃고 말았다. 부모님은 ㄱ씨가 조금 늦더라도 언젠가 어디 내놓아 자랑하기 좋은 직장인이 돼 있을 것이라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ㄱ씨는 때때로 몹시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바람은 강박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잘되기를 응원하는 것이기도 해서, 누구를 어떻게 원망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부모-자식 관계는 “빛과 그림자”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한 세대를 규정하는 세대론이거나, 세대 간 갈등에 관한 것이 아니다. 저자 이승욱씨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이들 부모-자식의 관계가 “빛과 그림자 같다”고 말했다. “50~60대는 기아로부터 근근이 벗어났으나 끊임없이 열심히 일해야 하는, 문화적인 향유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다. 부모들은 이렇게 팍팍하게 살았는데 자녀들은 아니다. 한쪽은 경제적으로 풍족해졌으나 문화적으로 피폐한 세대라면, 자녀들은 경제적으로는 팍팍해졌지만 문화는 누리려고 하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여전히 공무원 준비하라, 정규직이 최고다, 정신 못 차렸다고 다그치는 것이 부모 세대다. 자식들은 그런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게 각자 자기 삶에서 부족한 것을 충족하지 못하고 서로 부족한 것을 가진 이들이다.” 이렇게 그 누구도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이 서로를 다그치며 아픈 현재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지난한 애완의 시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어렵지 않았다. 책은 교육자 이오덕 선생의 말을 빌려 자유로워질 것을 주문했다. 그 어떤 것에도 순응하지 않고 “흐르는 것이 목적인 삶”을 살다보면 퇴행과 정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