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서비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고발하며 목숨을 끊은 최종범씨의 빈소.한겨레 김정효
푸른 나이에 죽어 푸른 혼이 된 동생 “삼성은 동생(최종범·32)의 주검 앞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푸른 하늘에 푸른 어둠이 오고 있었을 것입니다. 푸른 동생이 푸른 나이에 죽어 푸른 혼이 됐습니다. 늦은 밤 제수씨는 동생의 전화(10월30일)를 받았습니다. 동생은 술을 한잔 한 듯했습니다. 집엔 들어오지 않고 별이를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돌을 한 달 앞둔 딸 별이는 아빠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미안해, 나는 떠나.” 동생의 말이 제수씨는 이상했습니다. 전화기를 붙든 채 종이 위에 글자를 휘갈겨 썼습니다. 옆에 있던 친오빠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이상해. 어딘지 알아봐줘.” 제수씨는 남편과의 전화 통화를 최대한 이어가려고 했습니다. 통화는 17분 동안 계속됐습니다. 통화를 끝낸 뒤 동생은 전화기 전원을 껐습니다. 위치 추적으로 확인한 마지막 발신지는 집 근처였습니다. 장례식장 밖이 소란스러웠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가 보낸 조문 화환을 동생의 동료들이 부수었습니다. 삼성은 동생과 동료들을 ‘삼성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노조 결성(7월14일) 뒤엔 지역 쪼개기로 조합원들의 생계를 위협했습니다. 수리 건수가 가장 많은 쌍용동과 불당동을 떼어 가져갔습니다. 동생은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동료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일이 없어, 나 일해야 하는데, 돈 벌어야 하는데.” 삼성은 조합원들을 찍어 표적감사도 벌였습니다. 동생도 감사 대상이었습니다. 동생이 아끼던 후배는 19만원이 찍힌 월급명세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회사가 이관정지(수리 작업 자체를 배정받지 못하도록 센터에서 콜을 막아버리는 조처)를 시킨 탓입니다. 냉장고 수리 부품을 공장에서 잘못 보내준 일로 고객 VOC(‘Voice of Customer’의 약자로 고객불만 사항)가 뜨자 책임을 후배에게 물은 결과입니다. 19만원이라는 ‘있을 수 없는’ 월급명세서를 만들기 위해 회사는 56만원의 마이너스 성과급을 책정했습니다. 천안센터 사장이 보낸 꽃도 땅바닥에서 뒹굴었습니다. 그가 동생을 몰아붙이던 전화 통화 녹음을 저도 들었습니다. “새끼야, 고객을 잡으려면 확실히 개같이 잡아버리든지, 칼로 꼭꼭 쪼아서 갈기갈기 찢어버리든지 해야 될 거 아냐. …확실하게 지져버리라니까. 가서 죽여버리든지 갈기갈기 찢어서 널어버리든지.” 사장의 욕설 음성 사이로 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동생은 아내와 딸이 듣고 있는 곳에서 사장의 욕설에 찔리고 찢겼습니다. 삼성 센터 사장의 교활한 거짓말 동생은 꿈을 말하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아팠습니다. 큰 수술만 7차례 하는 동안 살림은 기울었습니다. 삼수생이 된 제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생은 말했습니다. “형이 공부해. 난 대학 안 가.” 동생은 공장을 다녔고,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에 취직했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기뻐했습니다. 동생은 명함 사진 밑에 “고객의 기쁨은 우리의 기쁨”이란 말을 새겼습니다. 별이를 낳았을 때 동생이 SNS 대문에 올린 글은 벅찼습니다. “오늘부로 최종범 인생 끝. 최별 인생으로 다시 시작.” 5년 전 어머니를 보살피느라 고생만 하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5년 뒤 아버지가 안치됐던 병원에 동생의 주검이 도착했습니다. 지난해 초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했습니다. 어머니에겐 아직 동생의 죽음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동생이 삼성 직원이라고 자랑합니다. 몰랐습니다. 동생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는데, 동생의 고단함은 제 생각이 닿지 않는 곳에 가 있었습니다. 동생은 냉장고와 에어컨을 고치는 중수리(용접 작업이 필요한 수리) 기사였습니다. 동생은 센터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실적을 올렸다고 합니다. 입사 15년 된 선배들보다 입사 3년이 조금 넘은 동생의 수입이 더 많았답니다. 고정급이 없는 삼성전자 수리 기사들은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만큼 벌었습니다. 센터 사장은 종범이의 월급이 평균 410만원이라고 언론에 이야기했습니다. 동생 동료들은 분노했습니다. 삼성전자 기사들은 수리에 필요한 장비와 재료, 차량 연료·유지비, 식대, 휴대전화 사용료 같은 모든 비용을 개인이 지불합니다. 410만원은 에어컨과 냉장고 소비가 많은 7~9월 성수기 때의 평균이었습니다. 나머지 아홉 달 비수기 때 실수령액은 100만원대를 맴돌았습니다. 성수기 때 번 돈으로 비수기를 메우면서 동생은 살았습니다. 동생은 출근 전부터 한두 ‘콜’(수리 의뢰)을 처리했고, 남들은 퇴근한 새벽 1~2시까지 일했습니다. 지난 추석에도 하루만 빼고 동생은 건물에 매달렸습니다. 동생은 ‘개처럼’ 일했습니다. 스스로를 ‘여왕개미’(삼성)를 먹여살리느라 죽어나는 ‘일개미’라고 동료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지난해 결혼한 동생은 처갓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장인·장모에게 떳떳하려고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동생과 동료들 모두가 개 혹은 개미였다 종범이 동료들 모두가 개 혹은 개미였습니다. 해피콜(수리를 요청한 고객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묻는 조사)이 뜰 때마다 대책회의를 해야 했습니다. MOT(‘Moment of Truth’의 약자. 고객 응대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 기법으로 ‘약속시간 준수→양해 전화→공손한 인사…’로 이어지는 삼성의 ‘외근 MOT 항목’은 12~18개로 구성) 절차에 따라 ‘마무리 인사’까지 해도 만점이 안 나오면 무조건 대책서를 썼습니다. 본사 간부들까지 참석한 0730 미팅에선 죄인 된 기분으로 반성했습니다. CS 롤플레이에 불려가 고객을 연기할 때면 자신과 자신을 다그치는 또 다른 자신 사이에서 혼란을 느꼈을 겁니다. 미스터리 쇼퍼(고객을 가장해 직원의 서비스를 평가하는 사람)란 이름으로 본사가 몰래카메라나 안경카메라로 지켜볼 때부터 그들은 자신이 삼성 직원이 맞는지 자문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사회는 ‘나의 감정’에 가격을 매기며 ‘나의 태도’를 상품으로 판매합니다. 나의 노동을 고용한 기업은 나의 감정과 생각까지 고용하고 관리합니다. 노동자를 감시한 고객은 자신의 일터에서 누군가의 감시를 받는 노동자가 되고, 고객에게 감시받은 노동자는 다시 다른 노동자를 감시하는 고객이 됩니다. 고객이 노동자를 감시하게 만드는 사회는 자기가 자기를 감시하는 거대한 롤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고 최종범씨가 자신의 낡은 자동차 위에 올라 삼성의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