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이여, 문학을 읽으십시오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
등록 : 2013-11-08 12:01 수정 :
<파이 이야기>의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은 자신의 나라 총리에게 책을 권하는 프로젝트를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했다.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 총리는 <기네스북>이 자신이 읽은 가장 인상적인 책이라고 꼽은 사람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작가정신 펴냄)로 올 초 번역돼 나왔다. 얀 마텔이 총리에게 권한 책은 모두 문학책이었다.
<시적 정의>(박용준 옮김, 궁리 펴냄)에서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법관들에게 문학을 읽으라고 권한다. 누스바움은 1994년 시카고 로스쿨에서 ‘법과 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로스쿨은 대학과 시내 빈민가를 분리하는 검은 철창에서 5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학생 70명 중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단 한 명이었다. 그들은 수업에서 리처드 라이트의 <미국의 아들>을 읽었다. 시카고 남부 빈민가를 배경으로 우발적인 계기로 살인을 저지르는 흑인 청년을 그린 소설이다. 학생들은 흑인 청년에게 이런 말을 하는 소설 속 등장인물과 비슷했다. “나의 집에서 10구역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어떠한지 전혀 아는 바가 없어요.” 흑인 청년은 그 말에 대답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살인을 한 이유에 대해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죽였는지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 이유를 해명하려면 자신의 삶 전부를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작 소설로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는 서사문학에 대한 사유가 법에, 더 넓게는 공적 추론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음을 굳게 믿는다. 쓸모없다는 상상력과 ‘공상’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E. M. 포스터의 <모리스>는 동성애자를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 중 한 명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미국의 아들>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타인의 ‘선함’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법관에게 이러한 공감과 상상은 필수적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앞에 선 한 인간을 “정체불명의 사람”이 아니라 “고유의 개별적인 인간 존재”로 대하게 되는 것이다.
4장에서는 ‘문학적 감수성’을 발휘한 실질적인 판결문이 제시된다. 4장의 제목은 ‘재판관으로서의 시인’이다. 저자가 여러 번 인용하는 월트 휘트먼의 시가 왜 판사가 ‘시인’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그(시인)는 다양성의 중재자이며 열쇠/ 그는 자신의 시대와 영토의 형평을 맞추는 자.” 얼마 전 한국 검찰은 한 시인을 법정에 세웠다. 현재의 대통령을 선거 기간 중에 비방했다는 혐의다. 참여재판의 배심원들은 만장일치 ‘무죄’판결을 내렸지만 재판관은 ‘연기’ 결정을 내렸다. 가장 ‘시인’이 안 될 것 같은 판사들의 나라, 한국의 로스쿨에는 본격적인 문학 강의가 있는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