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박사 박상진 교수의 <궁궐의 우리 나무>… 나무 98가지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만난다
우리나라에는 모두 1천여종의 나무가 산다. “오자마자 가래나무, 불밝혀라 등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죽어도 살구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거짓없다 참나무….” 이제는 부르는 이도 사라진 옛노래 가사처럼 다양하기 그지없는 온갖 나무들이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다.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이 모든 나무들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삶의 동반자이자 친숙한 벗과 같은 존재였다. 그렇지만 바쁜 현대인들은 나무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나무와 격리된 채 살아가는 삶에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고르고 고른 사진, 600여컷
그렇다고 해서 나무들이 도시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서울에도 다양한 나무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렇다면 서울 시내에서 제대로 나무를 감상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남산? 남산보다 더 편리하고 나무 종류도 다양한 천혜의 공간이 시내 한복판에 있다. 웬만한 숲보다 훨씬 나무가 다양하고 잘 가꿔진 곳, 바로 고궁들이다.
‘나무박사’ 박상진 교수(61·경북대 임산공학과)가 최근 펴낸 <궁궐의 우리 나무>(박상진·김성철·김효형 사진, 눌와 펴냄, 2만원)는 궁궐이란 나무전시장을 통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나무들을 한눈에 보여주는 ‘나무 책’이다. 대중성이나 심도면에서 모두 일급인 모처럼 만나는 괜찮은 실용 입문서다. 경복궁과 창경궁, 창덕궁, 종묘 그리고 덕수궁 등 다섯 궁궐에서 볼 수 있는 나무 98가지를 꼽아 문화사적으로 자세히 설명해준다. 박 교수에 따르면 고궁들은 비록 일제 강점기에 원형이 많이 훼손됐지만 우리 손으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우리 나무를 많이 심어 남해안에서 자라는 일부 수종을 빼면 우리나라 대표적인 나무를 거의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곳. 그렇지만 일제가 우리 궁궐의 품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일부러 일본산 나무들인 일본잎갈나무나 낙상홍 등을 가져다 심는 바람에 이런 나무들이 궁궐 곳곳에 남아 있다. 이런 일본 나무들은 가능한 빨리 속아내야 할 것들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일부러 다루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은 지난 1999년, 눌와출판사 김효형 대표가 우연히 박 교수의 홈페이지에 들른 것이 계기였다. 박 교수는 평소 학생들에게 딱딱하지 않고 쉬우면서 재미나게 나무에 대해 알려주고자 다양한 나무들에 얽힌 역사적 일화나 고사성어, 이름의 유래를 알려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홈페이지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은 출판사 김 대표가 박 교수에게 책을 내자고 제의하면서 작업은 시작됐다. 하지만 책을 찍어내기까지는 2년 세월이 필요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의 성격상 확실한 ‘사진’ 자료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박 교수도 직접 찍는 한편 사진가 김성철씨와 출판사 김 대표까지 세명이 전국을 누비며 찍은 나무 사진이 무려 2만여컷. 책에 실린 600여컷은 이 가운데에서 고르고 골라낸 것들이다. 사진을 찍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무 전문가가 아닌 김 대표와 작가 김씨는 매주 서울 대구를 오가며 박 교수에게 나무를 배워가며 숲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기를 2년 내내 강행했다. 소인들은 등나무 덩굴과 같다?
이런 열성은 책 곳곳에서 저절로 드러나면서 만듦새를 빛내주고 있다. 궁궐별 나무 배치도를 그린 ‘나무 지도’도 그렇게 발품을 팔아서 마련한 역작이다. 이 지도는 도감이나 화보를 봤다고 해도 실제 나무를 보고서는 어떤 나무인지 알아맞히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책에서 언급한 나무들이 고궁 어디에 있는지를 표시해놓은 것이다. 이를 위해 글쓴이와 편집자들이 궁궐을 몇십번이고 찾아 확인작업을 거듭했음은 물론이다. 덕분에 독자들로서는 책만 들고 고궁을 찾아가면 바로 옆에 서 있는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그 자리에서 확인해볼 수 있게 됐다.
책은 이런 자세한 정보를 바탕으로 깔면서 각 궁궐별로 단락을 나눠 나무를 설명하고 있다. 학술적인 딱딱한 문체를 최대한 배제한 대신 각 나무에 얽힌 옛이야기, 4대실록 등의 역사책 속에 나무를 언급한 부분 등 인문학적인 내용들을 편한 글투로 술술 풀어썼기 때문에 읽기에 부담이 없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무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상식을 건지는 재미가 바로 이 책 최고의 매력이다.
가령 경복궁을 복원할 때 수정전 앞에서 잘 자라던 말채나무를 문화재청이 잘라낸 이유 등은 이 책이 아니면 듣기 힘든 이야기들이다. 궁궐 문 앞에 나무가 있으면 ‘한가로울 한(閑)’자 모양이 되어 나라가 번창할 수 없고, 담 안쪽에 나무가 있으면 ‘곤란할 곤(困)’자 모양이 돼서 나라가 번창할 수 없어서 궁궐에는 원래 후원 이외의 지역에 나무를 잘 심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궁궐에 나무가 많으면 임금을 해치려는 자객이 들어도 잘 보이지 않아 일부러 나무를 많이 심지 않았다고도 한다.
나무들에 얽힌 문화적 비유나 전통적인 인식을 알려주는 내용들도 흥미롭다. 등나무의 경우 스스로 독립하지 못하고 다른 나무에 의지하는 생태적 습성 때문에 조선시대 선비들은 아주 못마땅해했다고 한다. 실제 “소인들은 등나무 덩굴과 같다”고 비꼬는 상소문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등가구’라고 부르는 가구는 사실 등나무가 아닌 라탄이라는 외국 나무로 만든 것인데 잘못 이름이 붙어 쓰이고 있는 것이라는 등 생활 속에서 미처 모르고 넘어가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꼼꼼히 지적하고 있다.
지은이 박상진 교수는 나무학자이면서도 고고학계에서 더욱 유명한 학자다. 박 교수는 나무의 세포를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해 재질을 분석하는 전문가로, 나무로 만든 많은 문화재의 재질분석작업도 맡아왔다. 이런 조사 과정에서 박 교수가 건져낸 고고학적 성과들도 상당하다. 대표적인 것이 91년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목관의 재질을 분석해 일본에서만 나는 금송으로 목관을 만든 것을 밝혀냈던 일이다. 이 발견으로 백제와 일본의 교류가 활발했음이 입증됐다. 또한 팔만대장경판이 그 전까지 알려져 있던 자작나무가 아니라 봄에 흔히 만날 수 이는 산벚나무로 대부분을 만들었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지은이 박 교수는 “나무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생명체인 동시에 인간의 삶의 현장을 지켜준 동반자였다”며 “궁궐의 건축만이 역사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궁궐을 돌아보면 한결 느낌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창덕궁 돈화문 주변 나무들까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복궐도>

‘나무박사’ 박상진 교수(61·경북대 임산공학과)가 최근 펴낸 <궁궐의 우리 나무>(박상진·김성철·김효형 사진, 눌와 펴냄, 2만원)는 궁궐이란 나무전시장을 통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나무들을 한눈에 보여주는 ‘나무 책’이다. 대중성이나 심도면에서 모두 일급인 모처럼 만나는 괜찮은 실용 입문서다. 경복궁과 창경궁, 창덕궁, 종묘 그리고 덕수궁 등 다섯 궁궐에서 볼 수 있는 나무 98가지를 꼽아 문화사적으로 자세히 설명해준다. 박 교수에 따르면 고궁들은 비록 일제 강점기에 원형이 많이 훼손됐지만 우리 손으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우리 나무를 많이 심어 남해안에서 자라는 일부 수종을 빼면 우리나라 대표적인 나무를 거의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곳. 그렇지만 일제가 우리 궁궐의 품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일부러 일본산 나무들인 일본잎갈나무나 낙상홍 등을 가져다 심는 바람에 이런 나무들이 궁궐 곳곳에 남아 있다. 이런 일본 나무들은 가능한 빨리 속아내야 할 것들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일부러 다루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은 지난 1999년, 눌와출판사 김효형 대표가 우연히 박 교수의 홈페이지에 들른 것이 계기였다. 박 교수는 평소 학생들에게 딱딱하지 않고 쉬우면서 재미나게 나무에 대해 알려주고자 다양한 나무들에 얽힌 역사적 일화나 고사성어, 이름의 유래를 알려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홈페이지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은 출판사 김 대표가 박 교수에게 책을 내자고 제의하면서 작업은 시작됐다. 하지만 책을 찍어내기까지는 2년 세월이 필요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의 성격상 확실한 ‘사진’ 자료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박 교수도 직접 찍는 한편 사진가 김성철씨와 출판사 김 대표까지 세명이 전국을 누비며 찍은 나무 사진이 무려 2만여컷. 책에 실린 600여컷은 이 가운데에서 고르고 골라낸 것들이다. 사진을 찍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무 전문가가 아닌 김 대표와 작가 김씨는 매주 서울 대구를 오가며 박 교수에게 나무를 배워가며 숲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기를 2년 내내 강행했다. 소인들은 등나무 덩굴과 같다?

사진/ 경복궁 동쪽에 있어 '동궐'이라 불리는 창덕궁. 회화나무와 주목, 복사나무, 매화나무등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사진/ 경복궁 자미당터에 우뚝 서 있는 말채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