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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렇게 하면 책에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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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9-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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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인 독서광 다치바나가 공개하는 책읽기 비법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가운데 <형이상학>이란 책이 있다. 1천년 넘게 인류의 고전으로 꼽혀온 이 책의 첫 줄은 이렇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알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 구절에 가장 잘 들어맞는 인물을 꼽는다면 그 후보에 빠지지 않을 인물이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61)다. 지적 욕구에 관한 한 다치바나는 가히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가 쓴 책만 봐도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그 금맥과 인맥>에서 시작해 <일본 공산당 연구>나 <거악vs언론> 등의 사회문제에 관한 책부터 <뇌사>와 <인체 재생> 등의 의학분야, <원숭이학의 현재>와 <우주로부터의 귀환> 등의 순수과학 서적들까지 실로 분야가 다양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그는 ‘지(知)의 거인’이라는 영광스런 별칭을 얻었다.

거금을 들고 서점에 가라


사진/ 다치바나가 독서공간으로 지은 '고양이 빌딩'. 4개층의 총건평이 27평에 불과한 작은 건물 안에 3만여권의 책과 수만쪽의 자료가 들어 있다.
다치바나의 이 놀라운 박학다식함과 지식은 모두 그의 엄청난 ‘독서’에서 나온다. 다치바나는 인터뷰 기사를 쓸 때도 인터뷰 대상의 모든 저작을 읽어보는 것은 물론, 특정 분야에 대한 책을 쓸 때면 관련 책을 수백권씩 읽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책을 너무나 많이 사는 바람에 따로 독서용 집을 지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벽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어 ‘고양이 빌딩’으로 불리는 이 건물을 짓고 나서 책정리를 도와줄 비서를 뽑는데 지원자가 500명이나 몰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독서에 관한 한 최고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다치바나가 스스로 터득한 독서법을 알려주는 책이 최근 국내에 소개됐다. 다치바나가 여러 잡지에 기고한 글이나 강연한 원고 가운데 책을 주제로 하는 부분만을 골라 모은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이언숙 옮김/ 청어람 미디어 펴냄/ 문의 02-6383-7879/ 1만2천원)다. 그가 스스로가 밝히는 지적 호기심에 대한 고찰과 독서론, 서재와 작업실론, 그가 읽은 책들, 그리고 책과 현대사회 그리고 현대인에 대한 통찰 등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진정한 독서광이 말하는 ‘책 읽기에 대한 책’이랄 수 있다.

책의 내용은 다소 일본 중심적이고 일본책에 대한 내용이 많아 생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점을 떠나서 재미있고 흥미로운 대목이 많은 편이다.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다치바나식 독서법. 1년에 수백, 수천권의 책을 읽는 그의 경이로운 독서량이 과연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다치바나식 독서의 요체는 단연 ‘속독을 통한 다독’이다. 우선 책을 문장이 아닌 단락 단위로 대충 훑어보는 방식으로 일단 끝까지 읽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책은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앞으로의 시대는 모든 정보 미디어에서 속독이 더욱 요구될 것이란 게 그의 지론이다. 그리고 두말할 것도 없이 종이로 된 책을 읽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종이책을 읽는 장점 가운데 하나는 종이책 그 자체의 모습 속에 무형의 정보가 이미 많이 담겨 있다는 점. 종이책을 읽을 때는 그것을 파악하면서 읽으므로 오히려 지식 습득 속도가 빠르다는 게 다치바나의 분석이다. 컴퓨터 화면에서는 접어서 표시를 하거나 밑줄을 그을 수도, 포스트잇을 붙일 수도 없고 그래서 나중에 찾아보거나 하기도 불편하므로 결국 종이책이 더 효율적이라고 설명한다. 디지털 시대에도 종이책이 사라질 리가 없으니 더욱 종이책을 열심히 읽으라고 그는 누누이 강조한다.

속독의 다음은 독서량을 늘리는 것. 이를 위해서는 “거금을 들고 서점으로 가라”고 다치바나는 권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거금을 들고’에 있다고 강조한다. 지갑이 든든해야 사고 싶은 책을 앞에 두고 망설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사는 것도 한꺼번에 많이 사라고 권한다. 독학으로 공부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의지를 지속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미리 상당한 돈을 지불해서 돈 아까워서라도 공부하도록 스스로를 구속하는 것이 중요하는 게 그가 터득한 독학비법이다.

어떤 책을 골라야 하나

사진/ 자연과학과 관련된 책과 자료를 모아놓은 고양이 빌딩 1층. 출입문을 빼면 달력이나 시계를 걸 공간조차 없을 정도다.
그러면 책을 고르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입문서를 하나 펼쳐보면서 머리말, 차례, 판권장을 반드시 훑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머리말을 보면 지은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책을 썼는지를 파악할 수 있고, 판권장을 보아서 판이 거듭된다면 정평있는 책이란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체적 도서 목록을 파악한 뒤 입문서를 고르는 것이 다음 수순. 원하는 분야의 고전적 입문서와 젊은 학자가 쓴 입문서를 함께 보는 것도 요령이다. 고전적 입문서는 내용이 아무래도 오래됐기 때문이다.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면 반드시 산 책을 책꽂이에 꽂지 말고 책상 위에 쌓아 놓을 것도 그가 주문하는 요령이다. 책상 위에 놓아두면 언젠가는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사실 그가 귀띔하는 독서 비법은 누구나 책을 읽으면서 체험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당연한 것들이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책 읽는 시간을 내지 못하게 마련. 그런 이들에게 다치바나의 독서법을 보여주는 이 책은 읽는 것만으로도 독서를 하고 싶도록 충분한 자극제 역할을 해줄 듯하다. 또한 심하다 싶을 정도로 독서에 매달리는 그의 이야기 역시 마음속으로만 책을 읽어야 한다고 다짐하는 잠재적 독서가들에게는 신선한 대리만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그가 책과 자료를 많이 쌓아 놓기 좋은 책상을 고르기 위해 도쿄 가구점을 다 뒤진 뒤 멀리 요코하마까지 가서 45만엔이란 거금을 주고 식탁을 사서 책상을 삼았다는 이야기도 그런 대목이다. 결국 엄청난 값을 치르고 책상을 산 뒤 그는 자신을 이렇게 납득시켰다고 한다. “책상 값으로는 너무나 비쌌지만 자동차 값에 비하면 휠씬 싸지 않은가. 자동차는 잘해야 10년밖에 못 타지만, 이 책상은 평생 쓸 수 있고 더욱이 자동차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공헌도가 훨씬 높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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