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갈과 술이 익어가는 움막
비닐하우스의 대안 ‘움집 온실’, 지속 가능 자원 이용이 가능한 적정기술의 대표적 사례
등록 : 2013-08-01 18:29 수정 : 2013-08-02 12:38
산기슭 축대를 벽면 삼아 지은 석굴. 봄날 그 앞에서 밭을 만들고 있다.강명구 제공
손때 묻은 것에 대한 애착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비닐 온실을 오랫동안 즐기기 힘들 것이다. 투명한 석유화학 부산물인 비닐은 세월의 더께를 고상함이 아닌 추함으로 반사한다. 현대 문명의 편리함이 지불해야만 하는 미학적 숙명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완만한 산기슭을 따라 난 길을 오르내리는 출퇴근길은 행복 그 자체였다. 말랑고개 경사를 가로지른 구부정한 논둑길과 계단식 논 풍광이 주는 눈 사치는 (지금껏 사진으로만 대했지만) 그 어느 골프장 부럽지 않았다. 경작이 어려워진 논들을 몇 푼 보상에 도시 건설폐기물 업자에게 임대하니 그 위에 화학비료로 범벅이 된 거대한 상업용 비닐하우스촌이 들어섰다. 연중 무휴 갈아엎이며 연작을 당하니 흙이 불쌍해도 너무 불쌍하다. 안정된 직업을 가진 자의 배부른 한탄일지라도 비닐하우스에 친숙해지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겨울철 화석연료를 태워야만 하는 유리온실의 대안으로 내가 눈여겨보는 방식은 움집 온실이다. 여러 형태가 있지만 한마디로 땅 밑으로 파고 들어가 온실을 만들고 지붕을 폴리카보네이트 등 보온성 투명 재질로 덮는 것이다.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한 땅 밑의 속성을 이용한 이 방식은 과학적 ‘상식’에 의존해 큰돈 들이지 않고 지속 가능한 형태의 자원 이용을 가능케 하는 적정기술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틈나는 대로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고 구조물 지을 재료를 주워모으고 있는데 1~2년 내에 한번 시도해볼 요량으로 준비 중이다. 나의 실험 결과를 기다리기 힘든 성격 급한 독자라면 인터넷에 ‘pit greenhouse’로 검색하시기 바란다. 자료가 너무 많아 탈이다.
즉시 실험 가능한 또 다른 형태의 온실 대안은 영어로 ‘콜드 프레임’(cold frame)이라 부르는 소규모 박스형 온실이다. 한 모서리가 직각인 사다리꼴을 벽에 기대 땅바닥에 놓았는데 높이가 앞은 50cm, 뒤는 70~80cm라고 하면 상상하기 쉽다. 온실과 마찬가지로 북쪽은 벽으로 막고 나머지 면들은 보온하고 천장은 유리 등 투명 재질로 한다. 자료를 보면 흙 밑에 퇴비를 두둑이 넣어 발열을 시키고 아주 추운 밤이면 보온재로 덮어주는데, 온실에서 키운 묘목들을 훈련하는 데 쓰기도 하고 상추나 시금치 등 추위에 강한 채소를 키우는 데 주로 사용한다. 이것 역시 인터넷을 검색하면 그림만 보고도 알 수 있는 상식 수준의 온실이다.
자연친화적 보온·보냉 구조물로 내가 직접 지어서 실험해본 것은 석굴(石窟)이다. 산기슭을 타고 내려온 후원 축대 부분을 미음자 형태로 파고 들어가 세 벽면을 석축으로 쌓고 지붕은 흙으로 마감하고 앞부분에 보온 처리한 출입문을 달았다. 건축비가 모자라 지붕 부분을 허술하게 한 결과 여름철에는 누수가 좀 있지만 겨울이면 따습고 여름이면 시원하다. 관측해보니 여름에는 영상 16℃, 겨울에는 영상 2℃ 정도를 유지했다. 가을철 수확한 배추를 신문지에 말아 저장하거나 홍당무나 토란 등을 뿌리째 보관하기도 하고, 명절 때 먹다 남은 과일도 저장하면 오랫동안 신선하다. 무엇보다 요긴한 용도는 젓갈이다. 식초와 효소를 은근하게 익히고 발효시키는 데 그만이다. 서양에서는 이곳을 ‘와인 셀러’(wine cellar)라고 부르는데 나는 이 명칭의 본디 뜻을 살리기 위해 맥주며 소주며 와인을 쟁이는 장소로 애용해 식구들의 눈총을 자주 받는다. 식구들 비난에 대한 내 답은 지극히 자연친화적이다. 미리 온도를 낮추면 냉장고 전력 사용을 줄이니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바닥에는 꼭 자갈을 깔아 밖으로 물을 빼는 배수 시설을 잊지 말라는 것과 석축의 돌 틈을 메우라는 것이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스하면 생쥐가 감자며 사과를 갉아먹으며 배불리 지내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